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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빛을] 200주년 사목회의를 재조명한다 (33)제삼천년기 한국교회 미래 사목의 방향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5-02-06 수정일 200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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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 맞게 새 모습으로 쇄신돼야”

사랑·나눔 기반한 새 권위 필요

쇄신 실천하려는 의지 있어야

200주년 사목회의는 겨레의 참된 복음화를 향한 지표

쇄신·적응 모토로 한 공의회의 한국적 적용이 바로 사목회의 의안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는 한국교회가 중흥기를 맞던 지난 1984년 5월, 역사적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방한과 한국 순교 성인 103위의 탄생에 즈음해 개최된 초유의 사목적 회의다. 마치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온 교회와 전세계에 대해 그러했듯이 사목회의는 우리 민족과 교회가 선교 제삼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기로에서 겨레의 참된 복음화를 향한 지표로서 제시됐다.

사목회의, 교회 성장에 기여

비록 그 구체적인 실천과 후속 작업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고, 적지 않은 뜻있는 이들이 사목회의가 제시한 복음화와 선교의 전망이 한국 교회 안에서 실망스러울 정도로 구현되지 못했음을 못내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그 회의의 성과는 직 간접적으로 한국교회의 성장과 성숙에 이바지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선교의 위기를 맞아 교회의 쇄신이 요청되고 이에 따라 각 교구별로 나름대로 새로운 시대적 소명을 모색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이후의 한국교회는 사목회의의 문제의식과 전망들로부터 적지 않은 시사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특별히 각 교구별로 연이어 열린 교구 시노드들은 사목회의 이후 변화된 시대 상황 속에서, 그리고 사목과 선교 환경의 급속한 변화 안에서 교회의 쇄신과 변모를 기했으며, 그 과정 안에서 사목회의의 전망과 통찰들은 나름대로 지침이 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가 새로운 시대를 맞아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새로운 사목 방향을 모색하고 참된 한국 교회가 되기 위한 전국적인 차원의 노력이었다면, 이들 교구 사목회의는 보다 구체적으로, 교구 차원에서 진행된 노력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교구 시노드들이 과연 얼마나 사목회의의 근본 정신과 전망들을 자신들의 쇄신 노력에 수용했었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많고, 전체적으로 볼 때 사목회의의 의안 내용이 충실하게 반영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옳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듯이 사목회의의 성과는 알게 모르게 우리 교회의 성장과 성숙에 이바지했으며, 직접적인 언급과 수용이 아닐지라도 그 근본 정신과 문제 의식은 이후의 한국교회의 사목 방향 모색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사목회의, 그후 20년

사목회의가 개최되던 80년대 중반 한국 사회, 교회와 새로운 천년기를 넘어선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의 역사적 조건과 환경은 매우 양상을 달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70년대를 거쳐 80년대를 지나오면서 억압적 정치 권력에 맞서 민주화 운동의 큰 축을 이루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어왔으며, 그 과정에서 천주교는 시대적 양심의 보루로서, 종교의 사회적 참여의 진수를 보여주었고, 그 결과 사회적으로 형성한 호감을 바탕으로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천주교회는 여타의 종교들이 그러했듯이 서서히 침체기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이전의 높은 교세 성장율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양적 팽창에 맞갖는 내적 성숙의 부족을 피부로 절감하기 시작했다.

세속 사회 안에서 종교 메시지는 설득력을 잃어가는 한편, 기존의 거대 종교들이 각축했던 종교 시장은 이른바 다원주의 사회의 특성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종교현상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영성적 흐름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으며, 기존 종교의 가르침과 그 실천들은 의문에 처하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는, 세계화의 부작용이 누적되면서 더욱 촉발된 제삼세계의 경제 위기에 따라 한국에서도 국가 경제 파탄의 위기에까지 몰리게 됐고, 그 결과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심화되고 중산층은 몰락하며, 저소득층은 생계의 위협에 처하게 됐다.

국가 경제의 위기는 빈곤층을 급속도로 증가시켰고, 이에 따라 복지 차원의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우리나라에서 서민층의 삶의 고통은 극도로 악화됐다. 이는 단지 경제적인 차원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삶 자체를 붕괴시켰으며, 모든 사회의 기반인 가정을 파괴해왔다.

가정의 파괴는 단지 경제적인 요인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전통 사회 안에서 궁극의 가치를 부여받던 가정과 생명의 가치는 배금주의, 상대주의적 윤리, 극도의 실용주의 등 세속적 가치가 전통적인 윤리관과 가치관을 압도함으로써 그 고유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있다.

한편 제도적인 민주화가 이미 어느 정도 성취됐지만 정치 사회적인 모든 차원에서의 민주화가 여전히 진행 중인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 사회는 지난 수년 동안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의미의 격변기를 맞았다.

이전의 모든 권위주의적인 잔재를 청산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시작됐고,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기존의 권위들이 의문에 처해지고, 새로운 권위가 우리 사회의 주류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한 가운데, 종교적 권위에 있어서도 역시 이전의 경직되고 무조건적인 위로부터의 권위에 대해 거부하려는 정신자세들이 교회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과 정보사회로의 변모는 갇혀 있던 여론의 물꼬를 완전하게 틀어버렸으며, 이제 교회는 일방향적인 권위가 아니라 쌍방향적인 사랑과 나눔을 통한 새로운 양상의 권위를 필요로 하고 있다.

교회의 전면적 쇄신 필요

교회는 이러한 시대적인 고통을 나름대로 인식하고, 쇄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분적으로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교회의 모든 영역에서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 우리는 90년대말과 2000년대 초에 집중된 각 교구의 시노드들을 통해서 이러한 인식과 노력들을 감지할 수 있다.

각 교구의 시노드 문헌들에서는 한결같이 새로운 시대를 맞은 한국교회가 새로운 복음화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지적하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교회 각 계층 구성원들의 변화된 모습을 요청하고, 나아가 교회의 구조와 운영 면에서도 시대적인 요청에 걸맞는 새 면모를 갖춰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다만 이제 문제는 이러한 의식과 인식을 어떻게 구체적인 쇄신으로 실천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쇄신을 논의하는 일과 쇄신을 실천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쇄신 노력의 도정에서, 사목회의 의안들이 추구하고 제시한 방향은 비록 20년의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침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40주년

더욱이 올해는 현대교회의 면모를 형성해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폐막된지 40주년을 맞는 해이다. 공의회 문헌과 정신은 보편교회, 그리고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발전과 성숙에 지침이 됐다.

한국 교회가 민족의 고통과 함께 하려고 한 그 적극적인 참여의 정신 역시 그 힘과 뿌리가 공의회에 기인하고 있으며, 현대 사회와 문명에 문을 열고 시대적인 요청에 귀기울인 것도 바로 공의회 정신에 따른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제 공의회 폐막 40주년을 맞아, 과연 우리 한국 천주교회 안에 공의회 정신이 얼마나 깊이 수용됐고 실천됐는지를 전면적으로 검토해볼 때이다. 누구나 공의회를 말하지만, 누구에게나 공의회가 신앙과 삶의 지표가 되어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쇄신과 적응을 모토로 한 공의회의 한국적 적용이 바로 사목회의 의안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고 쇄신될 것을 촉구한 공의회 정신에 따라 한국적 상황과 여건 속에서 참다운 한국 가톨릭교회가 되기를 추구한 것이 바로 사목회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이제 우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한국 사회와 교회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고, 한국 교회가 과연 공의회 정신을 얼마나 충실하게 실천하려고 노력해왔는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아울러, 그러한 성찰과 함께 20주년을 지낸 한국교회 선교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의 정신과 제안들이 한국 교회 안에서 얼마나 실천되어왔는지도 다시 한 번 엄정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비록 20년의 시간이 경과함으로써, 사목회의 당시와는 제반 사회적 여건과 사목환경이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해도, 폐막된지 40년이 지난 공의회의 성과들이 여전히 세계교회 안에서 구현되고 있음을 생각해볼 때, 20년이 지난 사목회의의 성과를 미래 한국교회의 사목 방향 모색에 지침으로 삼는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은 아닐 것이다.

공의회 정신의 철저한 실천과 사목회의 의안의 사목방향 모색은 두 가지 모두 한국교회가 제삼천년기 미래 사목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