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 땅에 빛을] 200주년 사목회의를 재조명한다 (31)사회의안(하)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5-01-23 수정일 200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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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사회발전 방향과 방안 모색

개발활동 핵심은 ‘인간 가치와 존엄’

사회복지, ‘정의 실현수단’으로 인식

미혼모 등 소외계층에 교회 관심 요청

사목회의가 열리던 1980년대 중반 우리 사회는 성장일변도 정책으로 인한 구조적인 왜곡과 제2차 석유파동의 후유증 속에서 격심한 물가고와 외채의 누적이라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런 가운데 집권한 신군부가 농민을 비롯한 노동자 빈민 등 소외된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물가안정과 강압적인 기업 통폐합 등을 통한 경제체질 개선을 추진함으로써 성장의 그늘에서는 가난한 이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었다.

당시 위정자들의 정책적 선택은 1986년에 사상최초로 상당규모의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경제개발과 병행해 진행됐어야 할 사회개발은 언급하는 것조차 불온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마치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요구가 「이념적인 투쟁」으로 내몰렸던 것과 마찬가지다.

사회개발 의안

이런 가운데 교회가 사목회의에서 「사회개발」 의안을 통해 사회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과 방안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뜻을 모아낸 것은 그 자체로서도 적잖은 의미를 지닌 일이었다. 교회의 이런 움직임이 때에 따라서 교회 안팎으로 상당한 파장을 낳을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국제연합(UN)에서 제기된 「사회개발」이라는 용어는 주택 보건 의료 공중위생 사회복지 교육 등 사회면에서의 개발을 뜻한다. 이는 곧 인간의 능력과 복지 향상을 도모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런 지향과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사회개발 의안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랐던 인간상과 사회의 모습에 대한 입장과 원칙을 드러냄으로써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던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서고 있다.

개발을 『「보다 나은 인간생활의 조건」 또는 「인간답지 못한 생활조건에서 보다 인간다운 조건」으로의 변화』(1항)라고 정의한 의안은 「개발활동」을 『모든 인간이 한 형제가 되는 세계, 가난한 나자로도 부자와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인간 공동사회를 건설하는 문제』(2항)라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의안은 개발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인간의 가치와 존엄」에 두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무엇보다 개발의 주제와 목적이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의안은 『정의에 대한 가치가 확립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개발은 이루어지지 못한다』(4항)며 『개발의 이름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지 못하는 모든 요소는 단죄되어야 한다』(23항)고 못박는다.

교회의 이런 개발에 대한 인식과 원칙은 경제개발지상론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정권에는 위험한 집단으로 비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또한 공권력을 통해 급속한 경제발전에 모든 것을 걸고 있던 정권에 대해 『공권력이 모든 것을 주도하거나 통제하게 될 때 각기 다른 다양성은 상실되며 전체적 일치보다는 획일을 가져오게 되며 이로 인하여 자발적, 창조적 참여는 사라지게 된다』(8항)는 지적은 당시 가난한 이들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흐름에 일침을 놓는 것이기도 했다.

나아가 의안은 『교회는 상황의 요구에 따라 모든 인간들을 위하여 개발활동을 선도적으로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13항)며 「봉사하러 파견된 교회」의 역할과 위상을 밝히고 ▲겸허한 자기 반성 ▲부단한 반성을 통한 쇄신을 개발활동을 위한 기본자세로 들었다. 이와 같은 사회와 개발에 대한 입장은 새 천년기에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개발에 대한 인식을 밑거름으로 의안은 말미에 제안사항을 첨부해 주교단 산하에 개발활동을 비롯해 교회가 하고 있는 제반 사회적 활동 등을 총체적으로 연구하고 관련 종사자들을 양성시키기 위한 (가칭) 「사회사목 연수원」 설립과 저개발국가 교회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해외개발 원조기금」 창설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모색과 노력의 결실이었을까, 교회는 1992년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사회복지주일을 나라 밖의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고 돕는 날로 정하고 이듬해인 93년부터 본격적인 해외원조에 나서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서의 위상을 다져오고 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환경문제를 고려한 「지속가능한 개발」 방안 등 개발에 대한 중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점과 인간개발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는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회복지 의안

현재 교회 안팎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10개항으로 이뤄진 「사회복지」 의안은 당시 사회복지가 교회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던 노동자나 빈민들의 「사회복지」를 외치는 일은 곧잘 정권의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기에 사회복지를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적잖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이런 사회 현실과 이를 대하는 교회의 태도는 의안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복지 의안은 1항에서 6항에 걸쳐 ▲사회복지의 일반적 인식과 성서적 인식을 비롯해 ▲초기 한국교회 선조들의 신앙과 사회복지 활동, 나아가 ▲한국 사회의 현실과 근원적 문제를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데서 사회복지 활동의 역할과 필요성을 찾고 있다. 의안은 첫 항에서 『인간들 사이에서 사시며 보잘것없는 작은 무리를 모으시고 하느님과 이웃사랑의 계명을 주시며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증거하도록』 예수가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위탁한 사명에서 사회복지의 출발점을 확인한다. 이어지는 4∼6항에 걸쳐 빈익빈부익부 현상 등이 체질화된 「이중적 구조」(4항)의 사회 현실을 분석하면서 교회에 대해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민중을 위한 교회이며 민중을 돌보며 민중의 한을 치유하며 그리스도의 보잘것없는 형제들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는가?』(6항)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에 대해 의안은 스스로 「부정적」이라는 대답을 내놓고 가난한 이들을 둘러싼 사회 현실과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없이는 하느님나라를 향한 교회의 여정이 굴곡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교회의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현대 사회와 교회를 향한 메시지를 새롭게 들려주고 있다.

특히 4∼5항에 담긴 대사회 분석에서 사회에 만연된 이중적 구조와 사회 병폐의 근원적인 문제를 ▲가치관의 혼란 ▲남북 분단 ▲힘의 오용 등에서 찾는 분석틀은 지금도 유용하게 보인다.

7항부터 이어지는 「해결을 위한 새로운 인식」 장에서는 교회 사회복지가 극복하고 지향해야 할 모습들이 제시된다. 의안은 10항 「사회복지의 우선적 대상들」에서 ▲아동을 필두로 ▲청소년 ▲노인 ▲의료복지 ▲장애자 ▲여성 ▲정신질환자 ▲만성병 환자 ▲도시 빈민과 부랑인 ▲교정사업 등 10가지를 꼽고 교회의 관심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9항에서 ▲전문가 확보 ▲자원의 효율적 동원 ▲유관단체의 조직화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점차 독자적이고 구체적인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는 사회복지의 미래를 예견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끊임없이 다가서는 그리스도상 실현을 염두에 두고 의안이 작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의안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복지가 『단순한 자선활동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인식되어져야 한다』는 관점을 피력하고 이를 위해 교회 내 각 복지단체, 개발단체들간의 유기적인 협의체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다. 이어 「개발에 따른 부작용」으로 공해문제를 비롯해 철거민문제 등을 아우르고 이에 대한 교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대책을 촉구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현재 특화된 사목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환경사목」과 「빈민사목」 등이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의안은 특별히 제안사항에서 여성복지문제를 언급하면서 개신교의 경우 관심과 대책 마련에 적극적인 데 비해 천주교가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한 상태에 있다고 지적하고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호소하고 있다. 누구도 눈길을 돌리지 않는 윤락녀, 미혼모 문제 등에 대해 소홀한 교회의 태도를 지적하고 있는 점은 매 시기 새로운 소외 계층으로 떠오르는 이들에게 다가서야 할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오늘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