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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두의 성미술 이야기] (42·끝) 아기 예수의 탄생

입력일 2004-12-26 수정일 2004-12-26 발행일 2004-12-26 제 2429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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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아기 예수님  우리 구원자 되셨네”
고요한 달빛이 어둠을 적신다. 
달빛에 홍건하게 드러난 성가족의 가난한 모습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엔다. 성탄절을 맞아서 우리들 가까이의 춥고 가난한 삶들을 생각해본다. 
카라바조. 1608~1609년. 314×211cm. 메시나 도립박물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찬송이 세상 구석구석에 메아리친다. 뒷북을 친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진작에 구세주의 출현을 알아보았더라면 CNN과 로이터를 비롯해서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이 인류 최대의 특종을 독점중계하려고 군침 흘리며 달려들었을 것이다. 아기 예수는 그러나 아무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태어났다. 예수님이 만약에 자식 복이 지지리도 없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아들로 떡하니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그랬다면 수에토니우스를 비롯해서 로마 유수의 역사가들이 앞 다투어 새로운 황금시대의 도래를 부르짖으며 입술에 꿀을 바르고 다녔을 것이다.

아기 예수는 잘 알려진 것처럼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다. 탄생기록이라고는 루가가 몇 줄 구색을 맞추었고, 마태오는 그나마 한 줄뿐인데, 『마리아가 아기를 낳자 그 아기를 예수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그만이다. 이럴 때는 마태오의 과묵한 성격이 원망스럽다. 한편, 루가는 한 줄을 더 보태서 두 줄이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 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눕혔다』

인심들이 각박했던 탓일까, 산모가 식은 땀 흘리며 끙끙대는 걸 뻔히 보면서 자리를 양보할 생각을 안하고 헛간으로 내몬 사람들이나, 에라, 까짓 것 「이빨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한겨울에 외양간 구유를 아기 침대로 대용할 작정을 한 아버지 요셉 모두 수준들이 막상막하였던 것 같다. 목수였던 요셉은 산모가 출산을 앞두고 특히 예민해진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던 것 같다. 혹시 알고도 그랬다면 어지간히 간 큰 남자였을 것이다. 그날 밤 타지에서 한뎃잠을 자면서 구유에다 아기를 낳고도 나중에 신세한탄 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마리아도 무척 무던한 성격이었나 보다.

사실, 구세주 탄생의 황금빛 상상을 다 걷어내고 성서 기록만 읽으면 예수 탄생은 조금도 성스럽지 않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신성이 반드시 황금빛 광채를 띠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말처럼 그분은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피해갈 만큼 고통과 멸시를 당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혹독한 운명은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기에」 이미 예정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대신 앓아주었고, 우리가 받을 고통을 대신 겪어주었던』(이사야 53, 3. 6) 것이다.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그림은 베들레헴의 외진 장소를 무대로 삼고 있다.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는 마리아의 품에 안겨 있다. 나무판자로 뒷벽을 바른 마구간은 너무 낡아서 황소 콧김 같은 바람이 벽 틈으로 씽씽 들어온다.

마리아는 모진 산고 끝에 무척 탈진한 것 같다.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여물통에 비스듬히 기대 누운 자세로 포대기에 싼 아기를 끌어안았다. 손끝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었을 텐데, 맥없는 엄지손가락으로 아기의 등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손길이 안쓰럽다. 한편, 아기 예수는 마리아와 뺨을 마주대고 옹알이를 한다. 앙증맞은 손을 더듬어 젖 냄새를 찾고 있나 보다.

여기서 서로의 뺨을 맞대는 행위는 원래 고대 로마 시대부터 죽은 사람과 이별을 의미했다. 뻣뻣하게 굳은 라자로를 끌어안고 뺨을 부비는 막달레나, 또는 피에타의 마리아가 무릎 위에다 십자가에서 떼어 내린 예수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뺨을 맞대는 장면은 종교미술의 역사에서 무척 흔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아기 예수와 뺨을 맞댄 마리아도 마찬가지로 훗날 다가올 수난의 어두운 예감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랬던 것처럼 핍박과 멸시의 운명을 타고 태어난 아기와 어머니 마리아에게 다가올 십자가 수난의 근심까지 덧씌우다니 종교 미술의 가혹 취미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은 아기 예수의 탄생 장면과 동방박사의 방문을 함께 다루기 좋아했다. 대개 금빛 자수가 요란한 붉은 옥좌에 마리아가 천상의 모후처럼 점잖게 앉아 있고, 아기 예수는 마리아의 무릎 위에 꼿꼿이 서 있는 자세로 축복의 손짓을 보이면, 동방박사들이 차례를 기다려 선물을 바치면서 왕 중의 왕께 머리를 조아리곤 했다. 또 뒤쪽으로는 동방박사를 시중드는 무리들이 낙타와 말과 코끼리 따위를 몰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못지않은 요란한 행차로 그림 배경을 도배하기 일쑤였다. 여기서 잠시 이런 의문이 든다. 동방박사들이 바친 보물과 금덩어리는 혹시 아기 예수의 남루한 태생을 위로하려는 수사적인 장치가 아니었을까?

카라바조의 그림은 바로크 시대에 그려졌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독특하다. 바로크 미술라고 하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역동적인 구성의 동세와 강물처럼 범람하는 빛이 화면에 흘러넘쳐야 한다. 주인공들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건 기본옵션이고, 금빛 구름과 사랑스런 아기천사들의 무리가 빠지면 아예 그림으로 쳐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금술 새긴 옥좌도 왕중왕의 눈부신 위엄도 보이지 않는다. 선물 싸들고 찾아오는 동방박사의 행렬 따위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이탈리아의 바로크 미술을 통틀어서 이처럼 어둡고 쓸쓸한 그림은 다시없을 것이다.

고요한 달빛이 어둠을 적신다. 달빛에 홍건하게 드러난 성가족의 가난한 모습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엔다. 이 그림에서 아기 예수를 찾은 이들은 동방박사들이 아니라 양치는 목자들이다. 이들도 허름하고 별 볼일 없기로는 성가족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바치는 예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경건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참된 예배는 묵은 포도주의 향기처럼 진실한 마음의 깊은 술통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닐까? 보잘 것 없는 삶을 살지라도 보잘것없는 진심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카라바조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그리면서 예수의 삶에서 기적과 일화를 모두 걷어낸다. 종교라는 이름의 달콤하고 신비스런 환상이 덮고 있던 무거운 더께를 우리의 눈꺼풀에서 긁어내고, 영문 모르고 달려온 양치기 목자의 순박한 시선으로 예수의 삶을 증언한다. 그의 붓은 구유에 깔았던 짚더미처럼 소박하고, 그의 색채는 겨울밤 창백한 달빛처럼 가난하다. 동방박사와 천사들은 이곳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성탄절을 맞아서 오늘 우리들 가까이의 춥고 가난한 삶들을 생각해본다.

지금으로부터 400년전, 이런 엉뚱한 그림을 구상한 화가도 존경스럽지만, 도대체 어떤 교회에서 이런 그림을 걸어놓고 싶어 했을까 궁금하다. 이 작품은 완성되자마자 팔려나갔다. 구입한 곳은 메시나의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 작품 값은 무려 1000 스쿠디였다. 그 당시 단일 작품 가격으로는 최고액수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파격적인 내용으로 이탈리아의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다고 한다. 거장 미켈란젤로의 원작을 다섯 점, 또는 플랑드르 바로크 대가 루벤스의 작품을 여덟 점을 너끈히 살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 연재를 마치며…

“서툴고 무딘 글에 빛나는 지면 제공해준 가톨릭신문에 감사”

노성두씨
「노성두의 성미술 이야기」는 이번 호로 지난 2년 동안의 격주 연재를 마칩니다. 서투르고 무딘 글에 빛나는 지면을 제공해주신 가톨릭신문사와 편집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기쁜 일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우가 인천 작전성당에서 예비신자교리과정을 마치고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은 것이 가장 기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