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노성두의 성미술 이야기] (41) 동방박사의 경배

입력일 2004-12-12 수정일 2004-12-12 발행일 2004-12-12 제 2427호 1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기쁨에 겨운 동방박사 옷자락도 즐거워 ‘펄럭’
메시아 출현에 대한 설레임 가득
독일 쾰른은 중앙역 앞에 있는 대성당이 볼만하다. 600년 넘게 걸쳐서 지었다는 시커먼 현무암 건축은 높이가 150m가 넘어서 쳐다보고 있으면 고개가 뒤로 꼴깍 넘어간다. 옛적 중세 시대에는 대도시에도 2층짜리 살림집이 드물었다니까, 그때 사람들의 비례 기준으로 보면 대성당 건축은 상상을 뛰어넘는 초현실적인 구조물로 보였을 것이다.

쾰른에서 유학을 하면서 대성당을 노상 지나쳐 걷곤 했는데, 시내 어느 곳을 걷더라도 대성당과의 만남을 피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도처에 임재하는 신성과의 행복한 조우라고 할까. 쾰른 대성당을 올려다 볼 때마다 유학 뒷돈을 대주시는 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났다.

쾰른 대성당의 가장 큰 보물은 동방박사의 유해이다. 대성당 제단부에 이층집 모양으로 생긴 황금궤가 놓여 있고, 큰 절기가 돌아올 때마다 중간 고미다락부분을 개봉하면 거기 왕관을 쓴 유해를 목격할 수 있었다. 진짜다, 가짜다 하는 논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 콘스탄티노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동방원정 때 골고타의 십자가와 함께 발굴해왔다가 우여곡절 끝에 밀라노를 거쳐 12세기 후반에 쾰른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쾰른은 북유럽의 외딴 도시인데도, 로마, 예루살렘, 산티아고 디 콤포스텔라와 더불어 중세 4대 순례지로 부각되면서 관광수입이 짭짤했다.

지금도 12월이 되면 중앙 광장에 나무마다 꽃불이 걸리고, 집집마다 전나무 잎관을 짜서 촛대를 세운다. 대림절을 밝히는 것이다. 대림절 촛대는 4개를 세웠다가 첫 주에는 하나, 둘째 주에는 둘, 셋째 주에는 셋, 마지막 주에는 넷을 다 밝히는데, 여기서 잎관은 어둠을 누르는 승리의 상징이고, 4개의 촛불은 인류 출현부터 메시아의 재림까지 걸리는 4000년을 암시한다고 한다. 교황 그레고리오 대제가 그렇게 설명하셨으니까 딴 생각 말고 그냥 믿어도 좋을 것 같다.

대림절은 라틴어로 「아드벤투스」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오심」이라는 뜻이다. 아기 예수가 세상에 나심을 손꼽아 기다리는 설렘과 기대가 응축되어 있는 말이다. 그러나 대림절을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아무래도 어린이들이다. 그건 순전히 대림절 선물 달력 때문이다. 대림절이 시작하면서 날짜에 맞추어 하루 한 장씩 우표딱지만한 달력 마분지를 뜯어내면 그 뒤에 앙증맞은 선물이 하나씩 들어 있어서, 아무리 아침잠이 많은 아이들도 대림절부터는 잠귀신이 싹 달아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또 아이들이 입을 모아 골목길을 쏘다니며 대림절 노래를 합창했는데, 가사는 이랬다.

『대림절, 대림절, 작은 촛불이 피었네.

촛불 하나, 촛불 둘, 촛불 셋, 촛불 넷.

어느새 아기 예수가 문 앞에 서 계시네』

동방박사들은 일찍이 별을 보고 베들레헴의 기적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별점을 치거나, 점성술에 조예가 깊었나 본데, 이들은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지 않고 헤로데 왕을 먼저 찾았다고 한다. 헤로데 왕도 메시아의 탄생을 기뻐할 것이라고 어림으로 넘겨짚고 그랬던 모양인데, 그건 단단히 잘못 짚은 행동이었다. 『헤로데 왕이 당황한 것은 물론, 예루살렘이 온통 술렁거렸다』(마태오 2, 3). 단순히 당황해서 술렁거린 것이 아니고, 불안에 떨며 허둥댔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긴급 정보를 입수한 헤로데 왕이 대사제와 율법학자들을 불러 긴급대책회의를 마친 뒤, 은밀하게 동방박사들을 속여서 못된 계획의 끄나풀로 삼으려고 했으나, 아기 예수를 알현한 동방박사들이 꿈에 천사를 만나고 나서 헤로데를 피해 딴 길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는 복음서에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오 2, 1~12)

1195년 완성된 잉게보르크 시편의 채식필사그림은 위, 아래 그림이 줄거리 순서대로 나뉜 복층구조이다. 윗그림에는 헤로데 왕을, 아래 그림에는 아기 예수를 찾은 장면이 재현되었다. 그림을 살펴보면 둘 다 오른쪽에 보좌에 앉은 주인공이 위치하고, 왼쪽 화면을 동방박사 셋이 점유하고 있는 점에서 구성의 얼개가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위 그림에서는 헤로데가 제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생뚱맞은 표정을 짓고 동방박사 역시 마뜩찮은 눈치여서 분위기가 영 썰렁하다. 그러나 아래 그림으로 내려가면 이와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넘쳐난다. 마리아의 다정한 미소와 아기 예수의 의젓한 표정,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기쁨에 겨운 정성과 헌신을 보면 굳이 성서를 모르는 사람들도 참된 왕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안내자 역할을 마친 밝은 별이 마리아의 머리 위에서 맴돌이 춤을 추는가 하면, 심지어 동방박사들의 옷자락조차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고 펄럭거리는 것 같다.

이 그림에서 동방박사는 인생의 세 단계를 망라한다. 청년, 장년, 노년으로 대변되는 차림새와 외모는 아기 예수께 무릎 꿇고 경배 드리는 이가 동방에서 온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 온 세상, 온 인류라는 보편 개념의 환유로 해석해야 한다. 12세기부터는 세 사람이 흑인, 황인, 백인의 얼굴로 등장해서 그 당시 지리학의 지식이 알고 있던 전 세계의 모든 대륙, 곧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을 대표하기도 하지만, 잉게보르크 시편 그림에서는 아직 옛 전통을 따르고 있다.

동방박사의 경배를 흔히 「삼왕의 경배」로 일컫기도 하는데, 이들이 박사 칭호를 얻은 것은 순전히 테르툴리아노의 덕분이다. 성서공부를 열심히 했던 테르툴리아노는 구약에서 눈에 확 띄는 구절을 찾아냈다고 한다.

『민족들이 너의 빛을 보고 모여 들며,

제왕들이 솟아오르는 너의 광채에 끌려오는구나』(이사야 60, 3).

『만왕이 다 그 앞에 엎드리고 만백성이 그를 섬기게 되리라』(시편 72, 11).

동방박사들에게 왕의 칭호를 처음 붙인 것이 222년인데, 미술에서는 그 뒤로도 한참동안 버섯꼭지처럼 생긴 프리기아 모자를 쓰다가 10세기부터 번듯한 왕관을 머리에 얹고 등장한다. 잉게보르크 필사본에서도 다들 왕관을 하나씩 챙겨 쓰고 있다.

동방박사가 셋이라는 사실은 3세기 교부 오리게네스의 생각이다. 성서에는 몇 명이 왔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명시적으로 씌어 있지 않지만, 아기 예수께 드린 선물이 셋이니까 세 명이 아닐까 추측한 것이다. 또 동방박사들이 이름을 하나씩 얻어 가지게 된 것은 8세기의 일이다. 6세기 원본을 다시 베낀 8세기의 필사본 파편(Excerpta latina babrari)에서 발타살, 멜키올, 카스팔 이라는 이름이 우연찮게 발견되면서 동방박사들도 마침내 성서 인명목록에 등재가 된 것이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방문한 이야기는 일화와 예언, 그리고 신화와 역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말해준다. 동방박사 이야기를 가지고 성서그림을 장식했던 잉게보르크 시편의 필사화가들도 기다림과 설렘에 예술의 창의와 상상을 묻혀서 아름다운 채색과 살붙임을 입힌 것이 아닐까.

잉게보르크 시편. 1195년. 304×204mm. 콩데 미술관, 샹티이.
1181~1203년. 퀼른 대성당 제단부. 성유물궤의 중앙 마름모꼴의 고미다락 부분에 격자창 뒤로 왕관을 쓴 동방박사의 유골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