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 수도회 탐방] 구속주회 (상) 창립과 영성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04-12-12 수정일 2004-12-12 발행일 2004-12-12 제 2427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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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도움의 성모 신심 전파하며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위해 투신
로마에서 열린 세미나에 총장신부와 한국회원들을 비롯한 세계 각국회원들이 참석해 일치와 화합을 다졌다.
1732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성 알폰소 리구오리(St.Alphonsus Maria de Liguori, 1696~1737)에 의해 창설된 구속주회(Redemptorist)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영성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고유 카리스마다.

영어의 「Redemption」을 뜻하는 「구속」(救贖)의 의미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국가간 전쟁으로 잡혀간 포로를 왕이 대가를 지불하고 찾아오는 행위를 가리킨다.

즉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함축하는 단어로써 사도 바오로는 그의 서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이뤄진 구원 사건을 표현하는데 사용했다. 구세주라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자신의 생명과 우리 인간의 비참한 상태와 교환하신 사랑의 깊음과 처절함의 의미였다.

예수는 성부의 뜻을 따라 사랑을 살고 이를 완성하신 구속자(救贖者, Redeemer)라 할 수 있는데 구속주회는 바로 그렇게 구속자로 사셨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성모님을 공경하며 그분이 행한 구속 사업을 수행하는데 최선의 삶을 추구한다.

알폰소 리구오리 성인은 구속주회 창설 뿐만 아니라 민법 교회법 학위를 지닌 법률가, 현대 윤리 신학의 창설자였으며 또 유명한 설교가로서 91년 생애동안 110권의 책을 펴낸 저술가다.

1696년 나폴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인은 당시에 받을 수 있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받으며 16세 나이에 민법 교회법 박사학위를 취득할 만큼 뛰어남을 보였다.

법률가로 활동하던 중 병원 자원봉사를 하며 『세상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1726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열성적인 사제의 삶을 살게된다.

그가 수도회 설립을 위한 또 한번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도시 외곽 지역에서 양치는 가난한 농부들을 만나서 였다. 당시 나폴리에는 신자 100명당 사제수가 1명일 만큼 많은 수의 사제가 있었음에도 이들은 복음 선포에서 철저하게 소외돼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충격을 받은 알폰소 신부는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사제들과 수사들의 모임을 조직, 1732년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 선교 수도회」를 창립한다.

성인의 성소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는 도시의 편안함을 떠나 스칼라 산 위에 수도원을 세웠고 수많은 저술들은 기본 교육을 받은 이들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쉬운 언어로 저술됐다. 그는 두려움과 공포의 하느님 감시자로서의 하느님관을 불러 일으킨 얀세니즘과 경건주의를 거슬러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소개했으며, 구원의 위대한 의미로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신자들에게는 단순한 양식으로 기도하는 법을 가르친 「기도의 박사」였다.

수도회 설립후 1762년 주교로 선출된 알폰소 신부는 1787년 세상을 떠났으며 1839년 시성됐고 1871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교회의 박사로, 또한 1950년에는 고해신부와 윤리신학자들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됐다.

교황 비오 9세는 1866년 특별히 구속주회에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전파할 것을 맡기셨는데 그런 배경으로 회원들은 전 세계 70여개국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께 드리는 9일 기도」를 통해 성모님께 기도할 것을 설교하고 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