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울평협 하상 신앙대학 강의 ⑪ 그리스도교 패러다임의 변화와 미래전망

차동엽 신부(인천미래사목연구소장)
입력일 2004-12-05 수정일 2004-12-05 발행일 2004-12-05 제 242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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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리에 귀기울여 교회의 사명을 깨달아야”
현대인들은 내적평안 위해 종교 찾아
그리스도교 ‘은총’에 눈뜨도록 도와야
차동엽 신부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가운데 21세기 문턱을 넘은지 몇 해가 지났다. 인류는 이제 삼천년기의 대장정에 올랐다. 21세기와 함께 엄청난 변화와 도전이 밀려오고 있다.

이 혼란한 시기에 세상이 춤을 춘다고 교회도 같이 춤을 출 수는 없다. 세상이 급히 가더라도 교회는 여전히 자신의 여유로움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다. 점점 가속적으로 기계화되는 인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거꾸로 인간화의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할 수가 없다.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한다. 이렇게 하늘을 보고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마태 16, 3).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여 거기에서 자신에게 요청되는 사명을 깨닫고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새로운」 시대는 교회에게 「새로운」 생존방식과 사명을 요청한다. 이는 역사를 섭리하시며 「시대의 징표」를 통해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려면 시대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이는 단순히 시대의 변화 속에서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거나 임기응변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유행에 편승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는 신앙생활의 동기 및 목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21세기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동기에서 종교를 찾는다. 첫째, 내적 평안을 위해 종교를 찾는다. 허무한 삶 속에서 느끼는 불안, 갈등, 위기감, 정체성의 실종 등을 일소하는 것이 우선적인 욕구이다. 둘째, 현대인들은 너무 고독해서 교회를 찾는다. 마음 터놓고 진정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을 찾아 종교를 기웃거린다. 이를 우리는 「유랑하는 종교심」이라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 두 가지 영성적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기 위해 어떤 방안을 가지고 있는가?

이 시대에 그리스도교가 해야 할 길은 「은총」을 재발굴하고 중재해 주는 것이다. 은총은 하느님으로부터 「거저」, 「공짜」로 주어진 영적 선물이다. 이 은총이라는 개념은 그리스도교 고유의 것이다. 그 약속은 그리스도교의 모체격인 유다교의 경전 구약성서에 나타나 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 값없이 물과 젖을 사서 마셔라』(이사 55, 1).

그렇다. 「돈 없이」, 「값없이」 누리는 구원의 선물,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이다.

신앙생활의 맛을 본 사람, 신자로서의 의무를 행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속에서 은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무덤덤하게 대하는 미사, 성서, 기도, 성사, 십계명에서 빛나는 은총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가 힘든 상황이지만 희망은 남아있다. 「은총」이라는 명약이 듣는다는 확신을 얻는다. 「은총」에 눈을 뜨도록 조금만 도와주면 의무를 얘기하지 않아도 신자들이 알아서 바르게 살고, 사회에서도 당당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제껏 놓쳐왔던 「은총」에 눈뜨는 신자가 하나 둘 늘어간다면 교회 밖의 사람들이 이를 보고 하나씩 둘씩 다시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차동엽 신부(인천미래사목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