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울평협 하상 신앙대학 강의 ⑩ 문학과 인생

김후란 시인(「문학의 집.서울」 이사장),정리=유재우 기자
입력일 2004-11-28 수정일 2004-11-28 발행일 2004-11-28 제 2425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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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 문학과 예술은 위안 줘”
김후란 시인
자연은 우리에게 무한한 생명력과 영험으로 인간생활을 받쳐주고 있기에 예로부터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어왔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생명의 유한성을 비유하는 심정은 모든 생명가치를 존중하는 미학적 감상능력에 근거하는 게 아닌가 한다. 또한 자연의 숨결을 통해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모든 생명체를 살게 해주시는 하느님의 창조사업의 한 조력자로서 자연과의 동반자 의식을 조용히 깨우치게도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적인 충족감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는 쓸쓸한 그늘이 너무 많다. 세상이 복잡하고 살기 힘들수록 정신적인 갈증을 풀어줄 어떤 위안이나 희망의 불씨가 있어야 한다.

러버크(영국시인, 1879~1965)는 이렇게 말했다. 『태양은 우리에게 빛으로 말을 하고 꽃은 우리에게 향기와 빛깔로 말을 한다. 태양이 꽃을 물들이듯이 예술은 인생을 물들인다』

미술, 음악, 영화 연극 등 모든 예술세계가 살기 힘든 생활을 풍요롭게 해준다. 그중에도 문학작품은 나와 남 사이에 이해의 다리를 놓아주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걸 깨우치게 한다. 이런 점에서 문학은 다른 어떤 물리적인 대상을 능가하는 정신적 산물로서 우리 인생에 기여하는 바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수십년 수백년 오랜 시간 시험을 거쳐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의 마음속을 생생하게 울리고 생각의 구름을 일으켜주는, 고전(古典)이 지니는 삶의 메시지는 참으로 귀하다. 그중에 으뜸자리에 있는 것은 성서이다. 카프카의 「성」, 괴테의 「파우스트」 등은 성서가 없었으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명작 소설의 상당수가 성서에 담겨져 있는 사상과 다양한 인간의 삶의 모습을 원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서의 위대성을 재인식하게 한다.

「종교를 통한 이해는 정신적 이해의 열쇠」(토인비)라는 말에 공감하며,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길을 찾는 것이며 사람과 사람이 서로 정신적 이해의 길을 트는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는 자기초월의 수단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인간의 욕구 중에는 죽음이 예정된 생명체로서의 한계성을 초월하여 보다 영속적인 삶을 희구하는 강한 욕구가 있고, 종교야말로 그러한 자기 확대 의식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구약성서에서의 「죄」는 길을 잃은 것을 뜻한다고 한다. 히브리어로 참회에 해당하는 이 말은 「신에게, 자기 자신에게 , 올바른 길로」 되돌아온다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인생길에서 끊임없이 저질러지고 참회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죄에 대한 구원의 손길이다. 그런 참회에 대한 응답과 보속을 기대하면서, 성서와 성서를 인용한 문학작품들에서 우리는 깨우치는바 있으며, 삶의 향방에 횃불로 삼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요즘 같은 경제난국에 문학이나 예술이 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힘든 때일수록 문학과 예술이 인생을 생각하게 하고 심정적 위안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한 가닥 마음의 여유를 갖자고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에겐 상처받고 좌절하는 마음의 환부를 치유해주고 용기를 불러일으켜주는 정신적 끌어올림이 절실히 요구된다. 땀 흘려 일하고 가정에 돌아와 가족이 함께 문화적 감성에 젖어드는 풍토, 그런 문화가족이 많아진 사회일 때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도 한결 부드러워지고 적절한 자의식과 이타심이 조화를 이룬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다.

김후란 시인(「문학의 집.서울」 이사장),정리=유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