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 땅에 빛을] 200주년 사목회의를 재조명한다 (25) 특수사목 의안 (2) 농촌사목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4-11-21 수정일 2004-11-21 발행일 2004-11-21 제 2424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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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농, 진정한 동반자 의식 절실
농업정책과 농민사목 모두 제자리걸음
농민회 활동·우리농 운동 그나마 위안
세계화의 물결로 인한 농업시장 개방 여파로 농촌.농민은 어느 때보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우리쌀 지키기 식량주권 수호 천주교 선언 기자회견.
「농민구원을 향한 농민사목의 방향은 ▲농민의 벗이 되어 ▲농민 안에 계신 하느님 믿음을 일깨우고 ▲농민 스스로 함께 농민을 병들게 하고 잘라놓는 온갖 잡귀와 세상의 죄와 대결하면서 ▲농촌현장에 나눔과 섬김이 커 가는 작은 생활공동체를 건설하도록 판을 벌이는 일이다」(농촌사목 의안 19항).

농촌사목 의안이 담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목을 닮은 농민사목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서럽고 한 맺힌 민중 속에 들어가 그들의 벗이 되어 하느님을 스스로 만나게 하는 참 믿음을 일깨우고, 온갖 악의 세력과 대결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시작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농촌사목을 통해 드러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농촌사목 의안은 총 50항으로 특수사목 의안 중에서도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의안이 「농민사목을 변두리 사목, 부수적인 사목을 뜻하는 특수사목으로 취급하는 태도는 시급히 지양돼야 할 것이다」(20항)라고 밝힌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50항의 의안은 농민의 삶과 삶의 조건을 진단하고 예수님의 사목에서 농민사목의 방향을 찾아보며, 농민사목의 실태와 농촌공소의 실태를 점검하고 마지막으로 농민·농촌공소의 사목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농업정책이 문제

의안은 농민의 삶과 삶의 조건을 이야기하면서 농촌의 어려움을 정부의 농업정책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해마다 늘어가는 농가부채, 대량 이농현상 등 농민 실상은 농촌의 땅 문제, 농축산물 가격문제, 억울한 거래 및 불평등한 세금 문제 등 정부의 농업정책에 따른 데 있다는 것이다. 이어 의안은 「농민은 자신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같이 할 기회도, 기구도, 통로도 없다」(9항), 「농민은 자신의 문화를 잃고, 이른바 선진적인 서양식, 일본식 흉내를 일삼는 꼭두각시가 돼 버린 것이다」(10항)라며 농촌과 농민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문화를 잃은 채 정치.문화 등 사회전반에서도 소외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의안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은 20년 당시나 현재나 별반 차이가 없다. 오히려 현재 농업과 농민이 겪는 어려움은 세계화라는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더한 상태다.

현재 농업·농촌·농민의 어려움이 의안이 지적한 것과 변함이 없다는 것은 사목회의 의안이 발표된 이후에도 농촌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정부의 농업정책 뿐 아니라 교회 농촌·농민사목도 제자리걸음을 걸었음을 드러낸다.

농민사목의 실태

의안은 이처럼 거시적인 관점에서 농민의 삶과 조건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회의 구조에 있어 가장 아래에 있는 공소실태를 점검함으로써 농촌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특히 농촌 문제가 한국교회의 뿌리였던 농촌교회의 위기를 낳고 있음을 지적한다.

「한국교회의 모태는 농촌공소였다. 우리 조상들은 가혹한 박해 속에서도, 정처 없는 피난길에서도 교우촌을 이루고 복음을 살았던 것이다. 한국 교회 200년의 반 이상은 현장교회인 농촌공소, 즉 농촌신앙생활공동체의 모습이었다」(21항).

의안은 이어 「정부의 정책이 농민.농촌.농업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처럼 교회의 사목정책 역시 농민 농촌을 거의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21항)라며 교회의 농촌사목이 활발하지 못함을 지적한다. 또 가톨릭농민회가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발행한 「한국 천주교 농촌공소 실태 조사연구 보고서」를 인용해 농촌공소의 환경조건이 열악하며 공소신자가 갈수록 노령화된 채 감소하고 있으며 본당 및 교구와의 관계도 원활하지 않음을 밝힌다.

농촌공소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의안은 농촌사목에 대한 희망적인 요소도 견지한다. 그 중 하나가 1966년에 만들어진 가톨릭농민회의 활동이다.

의안 34항은 「교회 일각에서 농민 구원을 향한 새로운 움직임들이 일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70년대 이후 이 땅의 독보적인 농민운동체로 성장해 온 가톨릭농민회는 생활현장 조직인 분회가 공소 및 마을 단위로 구성되어 각종 경제 협동활동, 부락민주화, 농민권익 실천, 건강한 농민문화 창조 활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톨릭농민회의 활동에서 농민사목 활성화의 가능성을 발견한 의안은 농촌공소 실태보고서를 토대로 「농민사목 방안·농촌공소 활성화 방안」을 제시한다.

37항은 「본당·교구·전국 차원의 농민사목 지원은 공소공동체 및 공소신자들의 주체의식·공동체 의식을 신장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며, 사목자는 농민들과 어울려서 기도 「판」, 이야기 「판」, 놀이 「판」 등 농민들의 다양한 「판」 즉 문화를 이루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어 전국차원에서 농민사목 연구소를 설치 운영함으로써 농민사목 연구, 농민 교리서 및 공소 전례서 발간, 생활공동체 운동, 사례 발굴 및 나눔, 전국 차원의 농촌공동체 연대 및 도농공동체 생활연대 등을 담당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올 7월 열린 우리농촌살리기운동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는 우리농마을(농촌공동체) 발전, 「도시 생활공동체 건설」을 우리농 운동의 향후 과제와 전망으로 내놓은 바 있다. 우리농촌살리기 운동이 시작되기 전 나온 의안이 얼마나 미래지향적인 시각을 갖고 농촌문제를 정확히 짚어내며 해결책을 제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종합적 사목방안

의안 38항부터 50항까지는 농촌 생활공동체 건설을 위한 종합적 사목방안을 총 6개 항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방안으로 의안은 (농민)교육이 예수·자기·이웃·역사와 사회 만나기를 통해 하느님을 체험케 함으로써 농민 스스로, 함께 사는 힘을 키우도록 돕는다고 설명한다.

이어 40∼43항에서는 「생활을 나누며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생활공동체 운동은 공동체적 삶을 실천하려는 마음과 공동체적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이 요구된다」며 「가능한 공소 및 자연부락부터 생활공동체를 만들어 모임과 전례를 정기적으로 가질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문화활동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45항은 「문화활동은 농민 스스로 그리고 함께 온갖 거짓 문화의 정체를 정확히 식별, 이를 극복하면서 농민의 생산적 노동문화를 창조해 감으로써 농민다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활동」이라고 밝힌다.

마지막으로 「도농공동체의 만남은 두 공동체 가족 모두가 도시·농촌문제를 하나의 과제로 인식해야 가능하다. 형제적 관계로 보고 순수하게 만나, 서로의 삶의 체험과 생각과 생활을 지속적으로 나누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49항)며 도·농 공동체의 연대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농촌을 보면 당시 사목회의 의안이 지적한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세계화의 물결로 인한 농업시장 개방 여파로 농촌·농민은 어느 때보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안이 되는 것은 가톨릭농민회,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를 통한 도·농 공동체의 활성화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계기로 시작된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은 올해 10주년 기념행사를 치르며 2단계 도약의 해를 보내고 있다.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한 농촌생산공동체는 전국에 150여개, 우리농운동을 통한 도시생활공동체는 240여개에 달하고 있으며, 매년 정기적인 행사를 통해 활발한 도.농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각 교구 특히 농촌교구에서는 농촌.농민사목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각종 행사와 심포지엄을 꾸준히 열고 있다.

하지만 과제는 남아있다. 도시생활공동체가 단순히 농산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머물 것이 아니라 농촌·농민과의 진정한 동반자로 연대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농촌 생산공동체도 생산자로 머물 것이 아니라 생명농업을 실천하는 도시소비자들의 제2의 고향이 될 수 있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아울러 농촌·농민의 현실을 연구.분석해 교회의 상황에 걸맞는 사목방향을 선도해 나갈 농민사목연구소의 설치도 고려해 봐야 한다.

이는 가톨릭농민회나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등 활동단체들의 노력 뿐 아니라 주교회의 등 교회차원에서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농민 구원을 위한 생활공동체 건설방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는 길은 말이나 이론이 아니라 공동체 삶을 몸소 사는 길 뿐이다. 시작은 반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 20)」(의안 50항)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