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 땅에 빛을] 200주년 사목회의를 재조명한다 (24) 특수사목 의안 (1) 노동사목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4-11-14 수정일 2004-11-14 발행일 2004-11-14 제 242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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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인간의 존엄성·가치관 밝혀
정부의 노조 탄압에 법과 제도 개선 강조
급격한 사회변화에 부응 외국인노동자 사목 활발
1970∼1980년대를 거치며 교회는 국가의 수출주도형 성장정책으로 희생되고 소외된 노동자들의 어려움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노동이 비천하고 억압받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인격적이고 신성한 일이라는 것을 노동자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에 앞장섰으며, 노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선교 200주년 사목회의가 열릴 당시는 이러한 교회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다. 총 11개 항으로 구성된 노동사목 의안은 노동사목의 중요성과 목표, 가톨릭노동 청·장년회 활동의 사목적 지침, 노동사목의 방향 등을 담고 있다. 의안의 내용은 20년이 지난 현재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노동사목에 대한 교회의 권고를 자세히 기술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노동은 인격적이다

창세기를 인용해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땅을 다스리는 일, 곧 노동이 인간의 의무임을 강조(1항)한 의안은 2항 「노동자」에서 노동은 인격적인 것임을 설명한다. 2항에 따르면 「노동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건 간에 노동자의 인격에 의해 그 가치를 부여받으며 노동자는 노동과정에서 전적으로 주체」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당시 산업화 사회에서 기계와 자본의 논리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노동자가 상품이 아닌 인격체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의안은 노동사목은 「이처럼 인격을 가진 노동자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사랑의 투신행위이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서 소외되어 자신의 인간적인 목소리를 억제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노동사목의 대상」(3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주체는 평신도 노동자

4항 「노동사목의 목표」는 노동사목은 평신도 노동자들을 주체로 행해져야 함을 강조한다. 의안은 「노동사목은 노동자들의 삶과 환경을 대상으로 하므로 성직자들로서는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다」며 노동사목을 평신도 사도직의 핵심적 분야로 정의 내리고 있다.

4항은 이어 ▲노동계에서 복음에 대한 증언을 하고 ▲복음에 비추어 노동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관을 밝히며 ▲노동자 스스로 권리를 증진시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노동사목의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정부의 노동조합 탄압에 대해 의안은 「교회는 노동자들의 상처받은 영혼을 구제해야 하며, 나아가 노동자들의 인간성을 훼손하는 법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범 교회적으로 대응해야 한다」(5항)고 말한다. 하지만 「교회는 계급투쟁 이론에 입각한 노동운동은 인간성을 부정할 우려가 있으므로 배척한다」며 「단지 임금만을 올려 받는 것을 유일의 목적으로 하는 노동조합주의가 노동자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6항)고 못박고 있다.

이는 정치적 이념적 색깔을 띤 노동조합에 대한 교회차원의 대응이며 동시에 교회 노동운동의 목표는 노동자들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법과 제도에 있다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총 11개 항으로 구성된 노동사목 의안의 내용은 20년이 지난 현재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노동사목에 대한 교회의 권고를 자세히 기술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사진은 외국인 노동자 초청 한마당 축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외국인노동자 사목이 활기를 띠고 있

진정한 인간회복 도와야

의안은 11항에서 노동사목의 방향을 네 가지로 밝힌다. 첫째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첫 번째 사도는 노동자들 자신임을 알고 평신도 노동자들을 양성하는 데 주력하며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은 가톨릭노동청년회와 노동장년회를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둘째로는 가톨릭노동청년회와 장년회를 위한 사목자 양성, 세 번째로는 올바른 교회의 노동관 고취를 위한 예비신자 교육, 청소년 교회 교육, 기성신자 교육 등이 노동사목의 방향으로 제시된다.

마지막으로는 교회가 노동계의 비참한 현실을 알고 노동자들이 하느님을 만나도록 도움으로써 진정한 인간회복을 하도록 복음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의안은 7, 8, 9, 10항에 걸쳐 가톨릭노동청년회, 장년회의 활동과 교회의 권고를 설명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의안은 교회가 갖는 노동의 의의와 기능을 성서를 인용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고 노동사목의 방향을 정립하는데 기여했다. 또 197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온 교회의 노동운동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앞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로 자리 매김 하겠다는 의지도 담고 있다.

하지만 의안이 발표된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로 넘어오며 한국사회는 산업화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급격히 변화했다. 노동자에 대한 개념과 인식도 바뀌었다. 1997년 IMF 구제금융으로 수많은 실업자들이 양산돼 또 다른 사목 대상이 등장했으며, 외국인노동자들이 대거 입국함으로써 외국인노동자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주목할 것은 교회의 노동사목이 지난 20년간의 급격한 사회변화에 발맞춤과 동시에 의안이 강조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데 제 역할을 했느냐 이다.

외국인노동자 사목 활발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사목이 활성화 된 것은 무엇보다도 사목 대상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소위 3D업종에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현실은 1970년대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노동자들, 특히 의안이 언급하고 있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핍박받는 노동자들의 모습과 일치한다. 저임금과 인권침해, 산업재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정부의 고용허가제 시행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노력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는 해외교포사목에 치중했던 과거와 달리 외국인노동자를 주된 사목 대상으로 인식하고 이에 따라 다양한 사목방침을 연구, 보완하고 있다. 아울러 각 교구에서도 외국인노동자 전담사제를 임명하고 상담소, 의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에는 베트남 중남미 필리핀 공동체가 구성돼 있다. 다만 외국인노동자들의 장기 체류로 인해 빚어질 외국인노동자 자녀문제, 국제결혼과 이혼으로 인한 피해여성과 영유아 문제 등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노동사목이 총 4개항을 할애해 소개 할 정도로 노동사목 분야에서 비중이 컸던 가톨릭노동청년회, 장년회는 당시에 비해서는 활동이 많이 미약해진 상태다. 하지만 가톨릭노동청년회는 최근 노동자의 개념을 확대해 사회의 어떤 계층에도 소속될 수 없는 젊은이들을 위한 사목을 시도하고 있다.

약 8만 여명으로 추산되는 재수생, 고시준비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목은 이제 시작단계이지만 교회가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사목 분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사목 대상인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아르바이트 등 비 정규직에서 일하고 있는 점도 노동사목과 연계시킬 수 있는 부분이다.

의안의 기본 정신 살려야

의안이 발표된 1980년대와 비교해 볼 때 오늘날 노동사목의 방향과 대상은 변화의 폭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바뀌었다. 특히 당시 800여 만명에 가까웠던 산업 노동자들의 숫자는 대폭 줄었으며, 소득수준의 향상, 노동조합의 거대화 등으로 의안이 언급했던 노동자가 과연 현재의 그들과 같은 의미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의안이 강조한 평신도 노동자 양성의 경우 이러한 문제와 맞물려 현재에 적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외국인노동자를 비롯, 비정규직 노동자, 진폐환자 등 사회에서 소외 받은 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사목의 대상자들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이는 사회 어느 누구보다 먼저 노동자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던 교회가 20년이 지난 현재도 의안이 언급한 것처럼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교회」로 역할 해야 하며, 교회의 역할은 사회가 바뀌고 사목대상이 바뀌어도 지속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