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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평협 하상 신앙대학 강의 ⑧ 신앙선조들의 삶과 믿음

김진소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장),정리=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4-11-14 수정일 2004-11-14 발행일 2004-11-14 제 2423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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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부모로 알고 효를 신앙에 녹여 기도”
신앙선조들의 삶과 믿음
김진소 신부
우리나라 천주교는 자발적인 연구 노력에 의해 창설되었다. 자연발생적으로 천주교가 수용되었다는 것은 조선 후기사회가 천주교를 요구하였다는 뜻이 된다. 천주교의 수용은 주자학을 대신할 수 있는 신문화를 수용하려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성리학지상주의 사회에서 성리학 이외 학문에 관심을 갖는다는 자체가 반동이었다.

우리나라 천주교는 순교를 각오한 신앙결단에서 싹이 텄다. 우리 신앙 선조들의 역사는 믿음 하나로 고난과 죽음을 넘어선 역사이다. 뒤로 물러서지 않는 믿음, 죽지 않는 사랑으로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을 섬기며 산 사람들의 역사다.

한국교회 초창기부터 신앙선조들은 효 사상을 가지고 하느님을 「부모」로 이해하였다. 효의 근본정신이나 효도의 방법을 신앙에 녹여 하느님께 대한 효와 효도의 방법으로 승화시켰다. 하느님께 대한 효는 신앙의 핵심이며 삶의 축이었다. 선조들의 믿음살이, 성사생활, 생활감정, 사고방식 등 삶 안에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믿음이 심겨 있었다. 그래서 조상들의 믿음살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려면 효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국인에게 부모의 개념은 『나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항상 함께 계신 분』이다. 인간의 부모가 이러할 진데 부모이신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한 무엇이 두렵겠는가. 이러한 믿음이 조상들이 모진 고난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평화로울 수 있었다.

순교는 효도의 길이었다.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 순교였다. 진정한 효도는 부모의 뜻을 잊지 않고, 부모의 덕행을 실천하고, 부모가 생전에 뜻한 것이나 자식들에게 남기신 뜻을 사는 것이다.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 산다는 신앙의 의식화였다. 조상들은 기도를 하느님과 마주앉아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하듯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기도를 공부, 신공이라고 했다. 신공이란 신심수련, 영신수련, 신심의 노력이라는 뜻이었다. 기도문을 바치거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거나, 교리를 공부하거나 모두 완전하신 아버지께로 가기 위해 수도하는 자세였다. 기도는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의식화 수련이었다.

천주교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을 교리로 제시하였다. 정약종은 「주교요지」에서 예수께서 강생하신 까닭은 원죄로 실추된 인간의 품위를 하느님의 품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고 하여 사람의 품위가 하느님처럼 존귀하다 하였다.

우리는 신앙의 조상들이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삶을 눈여겨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낡은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전통을 지켜주는 사람이 없다. 신앙 때문에 빈곤을 유산으로 이어받아 오면서도 전통을 꺽지 않던 구교우들이 헌교우가 되어가고 있다. 물질주의, 현실주의, 편의주의, 향락주의, 개인주의, 경제논리가 우선하는 조류 속에 아무도 예외일 수 없다. 이러한 시대 사조가 박해의 칼보다 더 무섭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있다. 우리 믿음이 뒤로 물러서지만 않는다면, 교회가 천박한 현실주의적 사고와 경제논리를 앞세워 옛것을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다.

먼저 찾아야 할 것은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이다. 한국교회에 대해 애정을 가져야 한다. 선조들이 그 험난한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유산으로 물려준 교회가 아닌가. 하느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시다는 의식을 흔들어 깨우며 살아온 조상들의 삶을 우리 삶의 불씨로 가슴에 담아야 한다.

김진소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장),정리=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