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이 땅에 빛을] 200주년 사목회의를 재조명한다 (21) 가정사목 의안 (하)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4-10-24 수정일 2004-10-24 발행일 2004-10-24 제 242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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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중심의 통합적 사목 강화돼야
가정문제 도움 주고 받기
교회-신자 모두 소극적
사회현상·환경 변화 고려
구체적 실천사항 제시를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목회의 후 20여년이 지난 현재 한국교회는 「가정 중심」의 사목 실현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최근 들어 활발히 펼쳐진 연구·실천 활동들도 가정의 정체성과 가정사목의 의미, 「크리스찬 혼인과 가정」 등은 이상적인 가정사목을 향한 근본적인 성찰과 사목방안을 제시한 사목회의 가정사목 의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눈에 띄는 변화는 의안이 사회적 현실을 보다 깊이있게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면이 부족한 반면 최근 가정사목을 향한 노력들은 급변하는 현실을 민감하게 분석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대안 모색을 위해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또 가정사목을 여러 사목 분야 중 하나의 특수한 활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 사목」의 사고 틀 안에서 모든 사목활동들이 궁극적으로 실현해야할 중심 가치임을 적극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교회 내의 이러한 움직임들이 각 가정생활 안에서 활발히 실천되기까지에는 거리가 있다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각종 분석과 진단, 연구 등을 통해 제시된 다양한 사목적 실천 방안들이 실제 신자들의 삶 속에 깊이있게 녹아날 수 있도록 사목현장에서 적극 활용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가정의 위기와 사목 실태

- 사목과 신자들의 현실생활 괴리

최근 한국 사회 안에서는 갈수록 최고치를 갱신하는 이혼율을 비롯해 저출산, 낙태 증가, 혼인제도의 의미상실 및 성개방풍조, 독거노인 및 고령화 등 가정해체 문제가 심각한 실정이다. 더욱 큰 충격은 이러한 부작용들은 비신자 가정과 신자 가정에서 큰 차이없이 나타나고 있으며, 신앙생활은 현실과 괴리를 보여 이러한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올 8월 수원교구 복음화국 선교·사목부가 마련한 「가나 혼인강좌 심화와 가정사목 방안 모색을 위한 기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생명, 가정과 관련된 여러 교회의 가르침이 이들의 삶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실생활에서 실천의지도 희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례로 낙태에 대해서는 사안별로 89.5%가 찬성하는 심각한 수준을 보였다.

주교회의 사목연구소가 올해 발표한 「생명과 가정에 관한 설문조사 보고서」에서도 본당으로부터 가정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긍정한 경우가 24.9%, 부정한 경우가 74.6%로 나타났다. 또 가정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사목자나 수도자를 찾아가 의논한다는 비율은 20.6%에 머물렀다.

아울러 가정.혼인 문제 연구 및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전문 시설과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도 크게 부족한 편이다. 상담요원 양성 및 상담소 설치, 혼인과 가정문제연구소 설립은 「가정의안」에서도 별도 제안사항으로 구체화 한 바 있으나 그동안 진행된 교회의 양적 성장과 비례해 구체화된 경우는 적다.

9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정교서 발표 이후 각 교구별로 가정사목부 등을 설립해왔지만 현재까지 가정사목 전담 사제가 있는 교구는 4개에 불과하며 여타의 교구들은 타 사목분야와 겸임하고 있다. 교구 차원의 가정연구소와 상담전문기관은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와 인천교구 가정상담센터가 있을 뿐이다.

사목적 과제와 실천

- 의식 개선

활발한 가정사목의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직?수도자, 평신도 등 교회 각 구성원들이 제각기 적극적인 주체로 활동에 나서야한다는 의식이 형성되어야한다.

의안은 『평신도는 가정성화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고유의 성소를 받은 것이며 평신도 활동의 첫 대상이 가정』(1장 5항)이라며 가정을 사목의 대상 뿐 아니라 주체로서 강조하고 있다. 시노드와 각종 세미나 등을 통해서도 사목자의 의지와 신자들의 참가노력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을 꾸준히 제시해 의식 확산에 힘써왔다.

특히 가정사목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 안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고정관념들을 적극적으로 타파해야할 필요가 있다.

가부장적인 관념에 의해 파생되는 남녀차별의 문제는 근본적인 의식 변화 자체가 더디게 진행돼왔고 또 가정 안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여성」과 「어머니」의 역할이 공조하기 어렵고, 남성 또한 사회활동에 비해 가정에서의 역할에 적극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을 만드는 사회 구조에 대해서도 충분한 성찰이 고려되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 혹은 확대가족 외에 다양한 형태를 보이는 가정 또한 존중하고 이들 가정의 복음화를 위해 적극적인 사목적 배려도 요구된다.

사회구조가 다변화됨에 따라 확대 혹은 핵가족 범주에 속하지 않는 단독가구, 비혈연가구들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맞벌이 등으로 인한 주말.월말.방학부부, 기러기 엄마 아빠 등 「생이별 가정」과 선택적으로 자녀를 낳지 않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을 비롯해 편부모.소년소녀가장.입양.이혼.재혼 가정 등이 그 예다. 농어촌 지역의 고령화된 가족형태 또한 보편화되어 있다.

이들 가정에 올바른 복음정신을 전하고 또한 교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가정의 특징에 따라 도움을 줄 수 있는 더욱 폭넓고 세심한 사목적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혼·재혼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는 이미 사목회의 의안에서도 제시한 바 있다.

혈연 중심의 가족 뿐 아니라 사랑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통해 형성된 가정도 가정사목의 대상으로 확장해 능동적이고 실제적인 사목대안을 제시해야할 것이다.

- 「사회 안의 그리스도인 가정」

가정사목은 사회 현실과 분리가 불가능하다. 사회와의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가정사목에 접근할 때는 충실하고 실제적인 대안을 형성하기 쉽지 않다. 직장과 노동, 주거, 경제활동, 입시, 지역환경, 대중매체 등 다양한 삶의 문제들은 가정사목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가정사목의 주된 내용이다.

올바른 가정사목을 위해서는 가정문제를 교회 안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현상과 환경, 가치관 등의 변화를 고려해 복음정신을 담은 구체적 실천사항으로 제시해야한다. 즉 「사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 가정」으로 사회와 문화라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실천적인 사목방안을 제시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의안에서도 가정사목을 통해 교회의 내적 복음화를 강조하고 있다. 또 사회복음화를 위한 가장 중심에는 가정이 있으며, 가정 복음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복음화에 영향을 끼치도록 해야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올바른 가정생활방식을 취할 수 있도록 생명, 윤리, 미디어교육 등을 포함한 적극적인 가톨릭적 문화교육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다.

무엇보다 현대인의 가치관 형성과 생활양식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매스 미디어의 복음화에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한다는 지적은 교회 각계에서 지속적으로 일고 있다.

- 가정 중심의 통합적 사목 노력

가정사목은 사람의 일생 동안 깊이있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줄 수 있어야하며 생명문화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고려해야한다.

특히 현재 교회가 분화해 수행하는 청소년, 여성, 노인, 사회복지 등의 여러 사목분야를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사고로 바라보고 서로 연계해 통합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방안이 필수적이다.

이미 한국교회는 『교회는 본당이 아니라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인식 아래 각 본당의 모든 사목계획을 가정에 초점을 맞추도록 노력하고 있다. 가정을 중심으로 신앙을 쇄신하고 이를 토대로 신앙공동체를 확산할 때 가정사목의 전망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각 가정이 가정사목의 주체로서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나 기도, 전례 등이 더욱 활발히 개발되고 실시되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본당-교구-전문연구기관의 네트워크 구축 및 전 한국교회 차원의 공조가 절실하다.

연구소 등에서는 현 사회현상 분석과 가정사목의 방향 제시, 신자들의 생활양식을 고려한 실용적인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연구, 개발하고 일선 본당에서는 각 프로그램들을 실현한다. 이들 연계의 중심에는 교구가 자리한다. 연구소 등의 설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 교구의 관심이 필수적이다. 또 각 교구별 가정사목 프로그램과 각종 노하우를 공유해 더욱 활성화할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더불어 가정성화를 위해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는 행복한 가정운동, ME, 포콜라레 등 가정사목 관련 단체들과도 더욱 긴밀한 연계 활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그 어느 곳에 살든 그 문화와 역사의 다양성과 복합성이 어떠하든 세계 도처의 모든 가정은 인간의 길, 참 문명의 길의 토대이며 「사랑의 문화」의 주체이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