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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두의 성미술 이야기] (38) 마리아의 승천

입력일 2004-10-24 수정일 2004-10-24 발행일 2004-10-24 제 2420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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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고운 노래속에  하늘로…
시신은 간데 없고 옷과 장미 백합만 남아
마리아의 삶을 훑어보면 참 기구하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 사는 동안 기쁨과 은총도 많았고, 슬픔과 고통은 그보다 더 많이 겪었다. 신성을 잉태하고 인류를 구원하실 분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이천 년 전 한 시골마을 이름 없는 처녀로서는 쉽사리 감당하기 힘든 운명이었을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스물 네 해나 더 살았다고 한다. 처음 천사를 만나서 아기를 점지 받았을 때가 열네 살이었고 이듬해 아기를 낳았다니까 여기에 예수님이 살았던 서른 세 해를 더하면 마리아는 일흔 살이 넘도록 수를 누린 셈이다. 물론 기록에 따라 임종 시점을 조금씩 다르게 보기도 한다.

성서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제노바의 주교 야코부스 다 보라기네가 쓴 「황금전설」에는 마리아가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나날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주교 야코부스는 13세기말, 그때까지 전해지던 수많은 성자전과 관련 문헌들을 수집하고 비교하면서 성서의 인물들과 성인들의 삶에 대한 기록들을 가감 없이 정리해두어서 교회전례력의 기초를 이루고 또 성 미술의 주제를 다루는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에게 중요한 신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마리아는 노년에 산중에 은거하면서 단식과 기도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사무치는 마음이 피어올라 먼저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의 생각이 마리아의 흉중을 사로잡는다. 또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솟으면서 마음을 흔들었다. 그 순간 마리아는 천사를 목격한다. 빛나는 광채를 뿜으며 날아온 천사는 손에 들고 있던 종려나무 가지를 마리아에게 건넨다. 임종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두 가지 부탁을 한다. 첫째, 그리운 예수의 제자들을 살아 있는 동안 두 눈으로 다시 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둘째, 못된 사탄이 당신의 영혼에 근접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천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건넨 종려나무 가지에는 어린 새순이 파랗게 나 있었는데, 잎사귀 하나하나가 마치 샛별처럼 아름답게 빛났다고 한다.

제자들이 마리아를 뵙기 위해 모인다.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마침 에페소에서 설교를 하고 있던 요한은 난데없이 흰 구름이 엉기면서 벼락이 치더니 곧 하늘로 들려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마리아의 대문 앞에 내려섰다. 마리아는 아들처럼 사랑하는 요한을 보자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근심을 털어놓는다. 유다인들이 마리아가 죽기만을 기다리면서 시신을 훔쳐다 태우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것이다. 순진한 요한이 혼자서 마리아를 안심시키느라 진땀을 흘리는데, 때마침 다른 제자들이 모두 구름을 타고 마리아의 집 앞에 도착하면서 한 시름 놓았다고 한다.

여기서 수증기나 불포화 대기가 상승기류를 타고 응결점에 도달해서 생성된 구름이란 놈이 어떻게 인간을 탑승시킬 수 있으며, 항로표지장치도 없이 무슨 수로 마리아의 집으로 달려올 수 있었는지 신통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문제야 공학도들이 해결할 문제고, 그림 그리는 화가들로서는 그날 마리아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모인 등장인물의 머릿수만 맞추면 되니까 공연한 일에 골치 썩일 필요가 없다.

루벤스는 「마리아의 승천」을 열두 차례나 그렸다. 똑같은 주제를 싫증도 안 내고 줄기차게 붙들고 있는 것도 어지간한 뚝심이지만, 빈 미술사박물관에 있는 작품은 높이가 4.58m나 되는 제단화라서 보는 사람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림 앞에 서면, 그림 속 기적을 목격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그림 속 실물대 크기의 등장인물들이 그림 바깥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마리아는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승천하시는데, 밝고 고운 노랫소리가 하늘 가득히 울려나왔다고 한다. 아기 천사들은 그림에서 회오리바람처럼 휘감아 도는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자연스러우면서 생동감 넘치는 역동적인 구성은 루벤스의 장기이다. 루벤스는 그림을 상단부와 하단부로 나누어서 마리아가 승천하는 장면과 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하고 당황하는 장면을 함께 재현한다. 마리아가 묻혔던 빈 무덤에는 웬일인지 시신은 간 데 없고 옷과 장미와 백합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마리아가 무덤에 남기신 옷은 믿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가령, 노르망디 공작이 샤르트르를 침공했을 때였다. 샤르트르의 주교가 창끝에 마리아의 옷을 걸어서 깃발을 만들자 시민들은 두려움 없이 적군과 맞싸우기 위해 돌진했고, 깃발을 본 적군병사들은 모두 눈이 멀거나 미쳐서 사시나무 떨 듯 몸을 흔들다가 뻣뻣이 굳어서 죽어갔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또 지상에 육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승천하셨는데, 이것을 두고 여러 교부들이 그 까닭을 설명한다. 가령 성 베르나르도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순교하시고 지상에 많은 성지를 만들어 우리에게 순례지를 정하셨는데, 굳이 마리아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있겠는지 되묻는다. 예수님이 다른 제자들과 약간 차등을 두는 의미에서 마리아는 하늘로 불러들이셨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아가서 성삼위일체론과 삼단논법을 무척 애용하는 성 아우구스티노는 세 가지 근거로 마리아의 육신 승천을 뒷받침한다.

첫째, 그리스도와 마리아는 한 가지 같은 몸인데 무릇 인간의 죄 많은 육신들처럼 벌레나 부패가 스며들 수 있겠느냐. 둘째, 그리스도의 보좌(寶座)가 하늘나라에 거한 것처럼 마리아의 고귀한 존재도 천상에 처소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느냐. 셋째, 마리아의 몸은 온전히 정결하시며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낳으실 때도 온전히 정결하셨으니, 그로부터 영원히 온전하고 정결해야 함은 마땅한 노릇이 아니겠느냐.

책을 뒤적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지만, 성 아우구스티노는 영성도 뛰어나고 머리도 엄청 명석한 천재였던 것 같다. 더군다나 남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마다 족집게로 정답을 가르쳐 주니 여간 고맙지 않다. 화가 루벤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굳건한 신학의 토대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라도 제단화를 그리는 붓이 이처럼 신바람을 내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페터 파울 루벤스. 1613년. 458×297cm. 빈 미술사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