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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평협 하상 신앙대학 강의 ④ 과연 하느님은 계시는가?

오창선 신부(가톨릭대학교 총장),정리=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4-10-17 수정일 2004-10-17 발행일 2004-10-17 제 241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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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하며 기다릴때 늘 찾아오시는 분”
기도는 행동하는 사랑 가능하게 해줘
기도하는 한 희망하고 갈망하는 존재
오창선 신부
물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부족한 교양이나 정보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지식을 찾는 범주적 물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계 및 자아이해 전반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이는 「초월적」 물음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에 대한 물음도 여기에 해당된다.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초월적」 물음들을 제기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대부분 그러한 물음들을 제기하지 않고서도 또는 그러한 물음에 대한 어떤 대답을 하지 않고서도 다른 일상적인 관심사들에 몰두하며 편히 살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물음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또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생의 열정과 관심 전반의 토대가 되는 근원적 물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개별 또는 부분적 관심사를 넘어서 세계를 전체로서 이해하려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인간의 욕구와 원의는 결국 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국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절대적이며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욕구는 결국 의미와 활력을 잃게 된다. 이러한 물음은 결국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중대한 물음에로 이어지게 된다.

오늘날 궁극적이고 확고부동한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의 결단의지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보다 깊이 살펴보면 세계관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계관의 위기는 마침내 신앙의 위기에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확신을 타인의 확신과 거래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종교적 신념도 숱한 확신들의 하나처럼 여겨진다.

어떤 절대적 존재자가 있다는 희망은 인간을 포함하여 유한한 모든 것을 하나의 우상으로 만들려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의 지표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어떠한 모습의 하느님이신가? 성서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느님은 인간의 역사의 운명을 함께 나누시는 생의 동반자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어디에도 하느님이 들어설 틈이 없어 보이는 이 『지극히 세속화된 세상에서 하느님은 과연 나에게 어떠한 존재일 수 있는가?』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분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하느님은 늘 「오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그 분을 찾지 않는다면 결코 만날 수 없다. 그 분의 오심은 바로 나의 다가섬, 나의 갈망과 뗄 수 없게 연결되어 있다. 진정한 의미로 갈망한다는 것은 준비하는 기다림, 「행동하는 기다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나 시적 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행동이어야 함을 가르쳐준다. 이 행동하는 사랑을 가능케 하고 또 그 순수함을 지켜주는 것은 기도에 있다.

『기도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친히 인간의 마음에 넣어 주신 열망의 표현』(쇤보른)이라 할 수 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성령이 우리를 대신해 기도해 주신다고 말하였다. 기도하는 한 우리는 희망하는 사람, 하느님을 갈망하는 사람이 된다. 왜냐하면 기도는 절대자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그리움과 희망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오창선 신부(가톨릭대학교 총장),정리=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