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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평협 하상 신앙대학 강의 ② ‘삶이란 무엇인가’

김수환 추기경
입력일 2004-09-26 수정일 2004-09-26 발행일 2004-09-26 제 241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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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영원한 생명에 부름받은 존재”
김수환 추기경
삶의 현실에는 언제나 많은 난관, 시련이 있고 비극적 결말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도 있다. 그렇다고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허무주의가 과연 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Trotzdem Ja zum Leben sagen』 2차 대전 중 나치의 유태인 대량학살의 현장 가운데 하나였던 죽음의 수용소 부헨발트에 억류돼 있던 유태인들이 부른 노래가사이며 「죽음의 수용소」 저자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이 전한 이 말은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인생은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죽음 밖에 다른 길이 없는 절대절명의 상황일지라도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와 의미는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이기에 어떤 처지에서도 그 삶에는 의미가 있을까? 인간에 대한 탐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주여행을 할 만큼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인간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며 본질적 내용이다. 철학자 칸트는 『모든 사물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인간은 존엄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결코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기에 국가 권력도 인간을 어떤 정치 목적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 존엄성과 평등은 사실상 형이상학적이면서 동시에 종교적 의미의 신앙, 즉 믿음의 문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으로 하느님을 믿고 인정할 때에만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을 참으로 깊이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인정하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인간을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을 배제하면 끝내 인간을 알 수 없게 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무력하고 과학 없는 종교는 눈먼 것』이라고 했다.

성서를 통해 보면 ①하느님이 인간을 당신 모습으로 창조하시고 절대적이요 조건 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에(창세기 참조) ②또 신구약 성경 전체가 증거하고 있듯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 같이 영원히 살도록 뜻하시고 이를 위해 즉 인간을 죄와 죄로 말미암아 초래된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시고 그를 속죄의 제물로 삼을 만큼 모든 것을 다 하시기 때문에 ③그리하여 인간 안에는 영원하신 하느님이 내재하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은 존엄하다.

하느님은 있는 그대로의 나, 죄 많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느님의 절대적이요 영구적이며 동시에 구체적인 사랑, 현재적인 사랑을 빼면 인간이 존엄할 이유도, 평등할 이유도 없다. 하느님은 어떤 큰 죄인도 끝까지 단념하시지 않고 그를 회개시키시고 당신 자녀로 구하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다. 이 사랑에 접할 때 아무리 죄 많은 사람일지라도 하느님께로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이렇게 영원한 생명에로의 부르심을 받고 있다』

이 점이 하느님 사랑과 함께 인간 존엄성의 가장 중요한 또한 숭고한 이유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초인 인간의 자유.평등.박애는 실로 하느님의 사랑에 의한 존엄성 때문이다.

그럼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나)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적이요 조건 없는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웃을 역시 같은 동기에서 사랑해야 한다. 특히 가난하고 약한 이웃, 병든 이웃, 버림받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결국 이 두 사랑은 하나의 사랑이다. 이것이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다.

김수환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