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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두의 성미술 이야기] (36) 성 게오르기우스와 악룡

입력일 2004-09-19 수정일 2004-09-19 발행일 2004-09-19 제 2416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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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랑 충만한 용기있는 순교자"
「성 게오르기우스 코덱스」 출전. 14세기 후반. 372×252cm.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문서 수집실.
테러 탓에 세상이 뒤숭숭하다. 세상살이가 불안할수록 헤라클레스처럼 화끈한 영웅이 출현해서 교통정리를 좀 말끔히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한데, 신화에 자주 나오는 영웅담들도 혹시 이런 시대적 요구에서 탄생한 것이 아닐까? 그리스도교에도 헤라클레스와 쌍벽을 이루는 호쾌무연한 영웅이 없지 않다. 그 이름은 성 게오르기우스. 서기 303년경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 때 굽힐 줄 모르는 소신 발언으로 참수형을 당한 순교성자이자 멋쟁이 기사였다. 여기서 잠시 옛날이야기 모드로 전환.

게오르기우스는 카파도키아의 귀족가문 출신으로, 창술이 뛰어난 군인이었다. 기록에는 없지만 체구도 무척 당당하고 얼굴도 관옥으로 빚은 듯 잘 생겼을 것이다. 게오르기우스는 어느 날 말을 타고 리비아의 해안 도시 실레나를 지나다가 이상한 풍경을 목격한다. 바닷가에서 아리따운 처녀가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데,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처녀의 우는 모습을 쳐다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사연이나 들어볼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처녀는 게오르기우스의 출현을 반기기는커녕 얼른 달아나라고 떠민다. 이 순간이었다. 가라, 못 간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난데없이 악룡이 바다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그리고 아가리를 쩍 벌리고 돌진하는 게 아닌가. 용은 서양미술에서 대개 못된 배역으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용꿈 꿨다면서 길운을 점치지만, 서양문화에는 묵시록의 영향 때문인지 좋은 말 듣는 용이 거의 없다.

바닷가에서 울던 처녀는 원래 실레나의 공주님이었다. 운 나쁘게 제비뽑기에서 양 한 마리와 함께 악룡의 끼니로 바쳐진 참이었다. 국왕이 딸의 희생을 애통해했지만, 악룡을 대적할 길이 없으니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로마 베드로 대성당의 문서 수집실이 소장한 채식 필사본 「성 게오르기우스 코덱스」에 실린 그림은 바로 이 순간을 재현하고 있다. 공주님이 두 손을 모으는 순간 말에 올라탄 우리의 주인공이 꼬나 쥔 창의 날끝은 이미 악룡의 아가리에 박혔다. 변변한 저항도 못하고 일격을 당한 악룡은 긴 꼬랑지를 뒤틀면서 고통에 몸부림친다. 바야흐로 영웅탄생의 순간이다. 게오르기우스의 겉옷이 신바람을 내며 펄럭인다. 잘난 주인을 태운 백마도 꼬리를 흔들어대는 것은 필사화가의 재치다. 게오르기우스의 잘 생긴 용모는 앞서 예견했던 그대로다.

여기서부터 전개되는 상황은 숱한 옛날이야기와 똑같이 진행된다. 임자 만난 악룡은 게오르기우스의 창을 정통으로 맞고 길게 드러눕고, 오늘의 주인공은 천행으로 목숨을 건진 공주님과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왕궁으로 돌아온다. 왕국의 절반을 뚝 잘라서 준다는 포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어디서 많이 읽었던 내용이다. 「황금전설」에 기록된 성 게오르기우스의 영웅담이 혹시 헤라클레스가 물뱀 히드라를 때려잡는 장면에다가 페르세우스가 바다괴물을 퇴치하고 에티오피아의 공주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장면을 보태고 여기에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가멤논이 공주 이피게니아를 전쟁 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얹어서 섞어 주물럭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슬며시 의혹이 든다.

1막이 여기서 끝나고, 2막의 줄거리는 성안에서 이어진다. 게오르기우스는 공주에게 허리띠를 풀어서 숨이 아직 덜 끊어진 악룡의 목을 매게 한다. 목줄이 달린 악룡은 순둥이 애완견처럼 공주를 졸졸 따른다. 이들이 악룡을 끌고 성안에 들어오자 사람들은 산으로 바다로 도망치기 바빴다고 한다. 악룡이 내뿜는 독 기운이 도시를 몰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오르기우스는 국왕을 만나 담판을 벌인다. 악룡의 목을 칠테니, 그 대신 국왕더러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에 입문하라는 요구였다. 국왕은 마치 방학 내내 미루어둔 숙제를 개학 전날 뚝딱 해치우는 초등학생처럼 얼른 세례를 받는다. 게오르기우스가 악룡의 목을 치자 세례를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이 하루 동안 자그마치 2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게오르기우스의 슬기로운 총명을 읽을 수 있다. 다른 영웅들 같았으면 악룡의 목을 잘라 바치고 국왕의 사위가 되어서 권력을 나눠먹고 1막에서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게오르기우스는 악룡의 목숨을 붙여두었다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수완을 발휘한다.

스토리는 3막으로 넘어간다. 약속했던 대로 산더미 같은 재물이 게오르기우스 앞에 쌓였다. 그런데 게오르기우스는 제몫의 재물을 챙기기는커녕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나랏님도 못한다는 빈민구제를 보란 듯이 실행해 보인 것이다. 잘 생겼지, 용기 있지, 싸움 잘 하지, 착하지, 이웃사랑의 정신에 충만한 데다 황금을 돌보듯 하고 비즈니스 감각마저 뛰어나니 이런 사윗감 요즘 세상에 쉽지 않다고 생각한 국왕은 게오르기우스의 빛나는 행적을 기려 교회를 큼직하게 짓고 성모 마리아께 헌정한다.

그러나 만날 인연이 있으면 헤어질 인연도 있게 마련. 게오르기우스는 어느 날 국왕을 친견하고 네 가지 긴요한 가르침을 새기게 한다. 첫째, 교회를 잘 보살필 것. 둘째, 사제들을 공경할 것. 셋째, 미사를 빼먹지 말 것. 넷째, 가난한 사람들을 항상 돌볼 것. 할 말을 마친 게오르기우스는 올 때 그랬던 것처럼 빈 몸으로 홀연히 떠나간다. 이런 점도 다른 영웅들과 다르다. 가령 헤라클레스는 테스피우스가 다스리던 왕국을 찾아가서 나라의 근심거리였던 흉폭한 사자를 목 졸라 죽인 뒤, 그 대가로 하룻밤에 공주님 쉰 명을 몽땅 임신시키지 않았던가! 그리고 열 달이 지난 뒤 배가 부른 공주님 쉰 명이 모두 한날에 도합 쉰두 명의 아들을 본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아기가 쉰둘이 된 것은 첫째와 막내 공주가 쌍둥이를 낳아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시시콜콜한 뒷사정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요컨대 게오르기우스는 헤라클레스와 달리 실레나 왕국의 공주님이 보내는 애타는 눈길을 본 척 만 척 사심 없이 제 갈 길을 떠날 줄 알았다는 사실만큼은 짚어둘 만하다. 그 후 게우르기우스가 전 세계 그리스도 교인들의 앙케트에서 「휴가를 함께 가고 싶은 남자」, 「단 둘이 데이트하고 싶은 남자」, 「무인도에 함께 남고 싶은 남자」 등등 모든 조사 분야에서 1순위를 휩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앙케트 통계수치는 신뢰도 99%에 오차 범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