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울평협 하상 신앙대학 강의 ①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정진석 대주교(서울대교구장)
입력일 2004-09-19 수정일 2004-09-19 발행일 2004-09-19 제 241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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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앞에 명배우가 되자”
정진석 대주교
출생이 인생의 시작이고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은 인생이 끝이 아님을 내포하고 있는 질문이다. 이는 「부모 이외에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원인이 따로 있다」거나 「죽은 다음에 내세가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전제로 한 물음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거의 모든 학문이 사람은 무엇이고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가를 묻고 있지만 아직 속시원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육신은 매일 새로운 세포가 생기고 죽은 세포는 도태된다. 육신뿐 아니라, 뇌세포까지도 5년 후에는 원자가 모두 다른 것으로 교체된다. 몸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원소)은 변했지만 60년전의 나는 지금도 나다. 나를 영속시키는 것에 어떤 원리가 있다. 그 원리가 영혼이다.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은 같다. 그러나 왜 나는 나이고 여러분은 여러분인가?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육체가 영혼과 만나서 자아를 이룬다. 사람은 영과 육신이 결합된 존재이기 때문에 물질인 우주만물에 대해서 영적인 존재인 하느님께 중개자 노릇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뜻이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바로 절대자의 존재, 영혼의 존재, 인생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많다. 생명도 눈에 안보이지만 생명의 현상을 보고 그것이 있음을 안다. 뉴턴은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현상을 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중력의 존재를 알게 됐다.

손재주, 글재주, 말재주 등도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드러날 때 그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신력이나 자제력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모든 종류의 힘은 안보이지만 있다. 하느님도 눈에는 안보이지만 하느님이 안 계시면 존재할 수 없는 우주만물을 보고 하느님이 계심을 안다.

신뢰와 사랑이 가장 잘 뭉쳐져 있는 곳이 가정이다. 인간행복의 기초가 가정이다. 가정이 깨지고 불행하면 다른 어떤 곳에서 잘 살고 있어도 그 사람은 불행한 것이다. 다른 것이 다 실패하더라도 가정만큼은 성공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행복의 핵심이다.

인간은 서로 도우면서 산다. 나의 정체성, 내 인격은 주위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다. 정말 내가 누구인가 할 때 내 안에서 나를 찾기는 힘들다. 나를 온전히 떠날 때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나에게서 다소 벗어나서 내가 누구인가를 볼 때에 나에 대한 결점, 장점이 더 잘 보일 것이다.

하느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 세워놓으신 원칙, 영원한 원리, 영원한 법칙이 진리이다. 이 영원한 원리를 인간이 다 알 수 없다. 인간이 인식한 영원법의 한 부분을 자연법이라고 한다.

인생의 무대 위에는 수십억명의 배우들이 어떤 사람은 지도자로, 또 어떤 이는 피지도자로 수만 가지 역할을 담당하면서 열띤 연기를 보이고 있다. 연출가가 배우들에게 각각의 배역을 맡겼는데, 모두가 주역이면 연극이 되지 않는다. 자기 배역을 연출자의 의도대로 성실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바로 명배우다. 주연, 조연, 단역 상관없이 자기의 배역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배우가 진실로 명배우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든지 하느님 앞에 명배우가 될 수 있다.

정진석 대주교(서울대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