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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두의 성미술 이야기] (32) 모세이야기

입력일 2004-07-18 수정일 2004-07-18 발행일 2004-07-18 제 2407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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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에게 십계명을 적어주시는 하느님
따끔한 금언 따스한 축복 계명에 담아
로마 바티칸의 시스티나 경당은 미켈란젤로의 천정벽화가 일품이다. 경당에 빽빽하게 운집한 관광객들이 하나같이 머리를 꼴깍 젖히고 까마득한 천장을 응시하면서 탄식인지 감탄인지 모를 신음소리를 내뱉는 광경도 볼만하다. 시스티나 경당에서는 제단부 벽화와 또 길게 뻗은 양쪽 벽을 가로지르며 그림 띠를 이루고 있는 벽화들도 놓칠 수 없는데, 그 가운데 모세의 삶을 다룬 내용이 있다. 그림 주제는 모세의 아내 시뽀라가 아들의 포경을 잘라서 모세의 발에 갖다대는 것이었는데, 도대체 앞뒤를 몰라서 무슨 맥락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성서를 들추어 그 대목을 찾아보니 이런 줄거리였다.

『모세가 길을 떠나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밤을 묵는데 야훼께서 찾아오시어 그를 죽이려고 하셨다』(출애굽기 4, 24). 그래서 시뽀라가 아들의 고래를 잡아주었다니 만사가 원만하게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아들내미는 먼 길에 지쳐서 세상없이 잠들어 있었을 텐데, 아닌 밤중에 곤욕을 당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야훼는 왜 당신이 선택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고르신 모세를 살해하려고 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생겼지만, 창세기 앞뒤를 침 발라가면서 아무리 뒤져도 뾰족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무슨 골치 아픈 사연이나 심각한 오해가 있었나 본데, 선하신 하느님과 말 안 듣는 백성들 사이를 오가며 심부름꾼 역할을 하던 모세로서도 이루 말 못할 마음고생이 많았나 보다.

해결되지 않은 물음표를 머리꼭지에 붙이고 발품을 팔아서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교회를 찾으니, 이번에는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모세 조각이 계명판을 품에 끌어안고 눈을 부라리고 앉아 있다. 그런데 모세의 이마 위에 제법 우람한 황소 뿔이 두 개 박혀 있는 게 아닌가! 모세가 기껏 호렙 산에 올라 하느님으로부터 훈계와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무거운 계명판을 받아왔는데, 철부지 백성들은 황금송아지를 섬기며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다고 한다. 그랬으니 모세의 속에서 천불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켈란젤로의 모세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것은 그런대로 납득이 갔다. 그러나 모세의 잘 생긴 이마에 웬 뿔이 솟았담?

이 문제는 뜻밖에 간단하게 풀렸다. 라틴 성서 불가타를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모세의 뿔 달린 얼굴」(cornutam Mosei faciem)이라는 표현이 보였다(출애굽기 34, 30). 율법서판을 받아들고 어린아이처럼 기쁨에 들떠서 「얼굴 살결이 환하게 빛나는 모세」의 모습을 라틴 성서에서 잘못 옮긴 것이었다. 그러나 전혀 엉뚱한 오역이라고는 할 수 없고, 가령 「두각을 나타낸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머리에 뿔이 솟았다」, 뭐 이런 식으로 오독을 하는 과정에서 훗날 화가와 조각가들이 모세의 머리에 뿔을 두 개 붙여주게 되고 그런 재현 전통이 널리 퍼지면서 모세의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졌다고 보면 된다.

모세는 여러 모로 신비로운 인물이다. 하느님을 직접 뵙고 말씀을 전해 받았다는 것도 보통 사람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서양 미술에서는 모세의 계명판 사건을 마리아의 성모영보와 동격에 두고 나란히 짝 그림으로 그리기도 한다.

모세의 십계명은 구약에서는 엄연한 법이지만, 신약에서는 은총으로도 읽힌다. 예수님도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오 5, 17)고 말씀하시면서 모세의 권위에 힘을 보태주신 적이 있었다.

모세가 계명판을 받는 장면은 미술에서 무척 흔하게 다루어졌다. 모세는 하느님으로부터 공손하게 눈을 돌리기도 하고 마주보기도 한다. 계명판에는 대개 라틴어 서수인 I~X라고 씌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아라비아 수자로 표기하면 1~10이다. 십계명을 일일이 쓰기 어려워서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계명판이 텅 비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힐데스하임의 빙엔 기도서에 등장하는 모세가 바로 아무 것도 안 씌어 있는 명판을 들고 있다(그림2). 하느님은 축복의 손짓을 들어보이시는데, 이것은 일러주거나 설명을 하는 자세로도 읽을 수 있다. 첫 번째 계명판은 깨트리고, 두 번째는 하느님이 일러주시는 대로 모세가 베껴 써서 완성했다니까, 이 장면은 두 번째 가 된다.

『모세는 거기에서 야훼와 함께 사십 주야를 지내는 동안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먹지 않았다. 그는 계약의 조문들인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다』(출애굽기 34, 28)

한편, 아트몬트의 성서에 등장하는 모세는 얌전히 돌판을 들고 있고, 하느님이 손을 내밀어 직접 글을 써주시니까 첫 번째라고 볼 수 있다(그림1).

『야훼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이야기를 다 마치시고 하느님께서 손수(digito Dei) 돌판에 쓰신 증거판 두 개를 모세에게 주셨다』(출애굽기 31, 18).

사실 문헌기록만 본다면 두 번째 계명판에서도 모세가 쓰지 않고 하느님이 직접 써주셨을 가능성이 있다. 모세도 다른 대목에서 제 입으로 그렇게 밝히고 있다.

『(야훼께서) 이 말씀을 조금도 보태지 않으시고 그대로 돌판에 새겨 나에게 주셨다』(신명기 5, 22).

그리고 넙적한 돌판 두 개에다 글을 새겨서 주셨다는데, 전해지는 그림들을 보면 돌판 대신에 두루마기 양피지를 건네주시거나 돌판을 주더라도 끌과 망치로 글자를 새기는 대신 펜이나 붓으로 글씨를 적어주시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돌로 된 판이니까 당연히 끌로 새겼을 거야』라고 넘겨짚기 쉽지만, 성서에는 그냥 「적었다」 또는 「적을 것이다」(tabulas scripta / et scribam)라고만 나와 있다. 중세 시대 화가들은 「하느님이 적으셨다」라는 표현을 두고 붓이나 펜을 필기도구로 삼으신 것이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십계명의 내용을 훑어보면 경배와 경외의 두 가지 측면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우리 모두가 지키고 삼가야 할 따끔한 금언과 따뜻한 축복도 한 자리에 모여 있다. 그런데 열 가지 계명을 기록한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기록이 서로 조금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가령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까닭에 대해서, 「야훼께서 엿새 동안…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출애굽20, 11)이라고 이유를 들었다가 다시 너희들이 본보기로 쉬어야 너희들이 부리는 종들도 쉴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 하던 일을 생각하여라』(민수기 5, 14~15)라고 말을 바꾼다. 아마 그 사이에 살림들이 펴서 집안에 종들도 부리고 살게 되었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우주론적 논리로 거창하게 나갔다가 차츰 살만하게 되었으니 옛날 올챙이 적 생각을 해서 이제는 파이만 키울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분배논리로 진화한 것이 아닐까?

아트몬트의 성서. 1140년경.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필사본 수집실. 빈.
힐데스하임의 방엔 기도서. 1190년경. 바이에른 국립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