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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두의 성미술 이야기] (31) 노아의 방주

입력일 2004-06-27 수정일 2004-06-27 발행일 2004-06-27 제 2404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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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빗줄기로
영혼의 묵은 때 씻고…
몬순 기후의 영향권에 놓인 우리나라는 해마다 장마철에 큰비가 쏟아진다. 장대비를 동반한 태풍이 몰아치면 뉴스 첫머리에 축대가 무너졌다, 간판이 날아갔다, 온통 물난리 걱정으로 시작했다가 뒤이어 수재의연금 수금현황으로 마감되는 것이 해마다 어쩌면 이렇게 수십 년 동안 하나같이 판박이인지 신기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의 물난리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노아의 대홍수 사건이다. 성서 첫머리에 나오는 창세기에서 바벨탑 이야기 바로 앞에 기록된 내용인데, 간단히 정리하면 하느님이 인간들의 무법천지가 막판에 이른 것을 보시고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시기로 결심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품행이 남달랐던 노아 하나는 살려두기로 하고 큰 배를 지어서 대비하라고 귀띔해주신 덕분에 노아 일가와 동물들이 한 쌍씩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건 그렇고 노아는 그 당시 무척 나이가 많이 들었었나 본데, 성서 기록을 보면 무려 육백 살이나 먹었다고 한다. 사회복지고 뭐고 없던 그때였으니 망정이지 요즘 같았으면 국민연금 고갈의 원인을 제공한다고 따가운 눈길꽤나 받았을 나이다.

노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서 그리고 홍수 이후를 대비해서 모든 동물들을한 쌍씩 방주에다 태운다. 몸을 가지고 호흡하는 모든 것(창세기 7,5)이라는데, 지구상의 동물 종수가 수십만에다 곤충만 해도 150만여 종이 된다니까 창세기의 기록에 약간 과장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또 하느님은 창세기 6장에서 암수 한 쌍씩 데리고 타라고 하셨다가 7장에 와서는 깨끗한 짐승은 암수 일곱 쌍씩, 그리고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두 쌍씩이라고 말을 금세 바꾸신다. 또 노아는 방주 생활을 1년 하고도 열흘이나 더 지낸 다음에 뭍으로 내려온다. 땅 위에 홍수가 난 것이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십칠 일이었고, 땅이 다 마른 뒤 배에서 내린 날이 이듬해 이월 이십칠 일이었다니까 이 정도 계산은 초등학생에게도 별로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7창세기 7,11과 8,14).

미술에서는 노아의 방주가 자주 다루어지지 않았다. 화가들이 수많은 동물들을 일일이 그리기 귀찮아서 그랬는지, 노아가 홍수 뒤에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나 포도원을 경작하다가 포도주에 취해 알몸으로 잠들어 있는 모습이 고작이었다. 뒤늦게 미술에서 광학이론과 색채이론이 중요해지면서 하느님이 화가들에게 선물하신 색채 팔레트인 무지개를 방주 위에다 걸쳐놓는 그림도 꽤 나왔다.

화가들의 첫 번째 걱정은 방주의 생김새를 어떻게 재현할까 하는 문제였다. 성서에는 방주가 삼층에다가 네모반듯하게 생겼다고 씌어 있다. 옆구리에 창문이 하나 나 있고, 갑판에 해당하는 윗부분에다 창문을 하나 뚫었다고 한다. 이 대목을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배에 지붕을 만들어 한 자 치켜 올려 덮고」라고 옮겼는데, 라틴 성서에는 「방주의 가장 바깥 면(상부갑판)에 창문을 하나 낮추어 내되 그 크기는 한 자씩으로 실행하고」(fenestram in arca facies et in cubito consummabis summitatem)라고 적혀 있다(창세기 6,16). 독일어로 된 루터 성서는 같은 대목을 「창문 하나를 지붕에 내되, 가로 세로의 길이가 한 자가 되어야 하고(ein Fenster sollst daran machen obenan, eine Elle gross)라고 옮겼는데, 라틴 성서와 내용이 거의 같다. 한편 이탈리아어 파올리네 성서는 「방주에다 지붕을 얹되 한 자 올려서 마감하여야 한다」(farrai all「arca un tetto e un cubito piu su la terminerai)라고 옮기고 있다. 라틴 성서와 독일어 성서는 방주 뚜껑에다 창문을 한 자 크기로 냈다고 하고, 우리말 성서와 이탈리아어 성서는 같은 대목을 해석하면서 지붕을 한 자 높여서 얹었다고 하니, 도무지 어느 쪽이 바른 변역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진작에 미술사학을 공부하면서 틈틈이 히브리어를 깨치지 않은 것이 부끄럽고 한탄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조금 더 읽어보면 노아가 비가 그친 뒤 창문을 열고 까마귀와 비둘기를 차례로 날려 보냈다고 하니까 어딘가 위쪽에다 창문을 뚫기는 뚫었던 것 같다(창세기 8,6).

방주의 형태도 교부들마다 다르게 상상했다. 아우구스티노는 당연히 네모반듯한 형태로 보았다. 길이 삼백 자, 너비 오십 자, 높이 삼십 자(창세기 6,15)였다니까, 한 자(cubitum)를 45cm로 치면 가로 세로 길이가 135x22.5m에다 높이가 13.5m나 된다. 웬만한 축구장 크기를 훌쩍 넘는다. 한편 오리게네스는 피라미드 형태를 상상했는데,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형태이다. 또 리에바나의 베아투스는 7층짜리 상자형 선박으로, 생 빅토르의 후고는 성냥곽 같은 장방형의 5층 구조에 맞배지붕을 얹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상식적인 범선 형태까지 보태지면서 각 시대마다 미술작품에 반영된다.

노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리스도교의 교부들은 큰 홍수를 정화의 의미로 읽었다. 물로 때를 벗기는 것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는 영혼의 묵은 때를 씻어낸다고 보았다. 테르툴리아노, 키프리아노,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가 모두 한 입으로 그렇게 말한다. 나아가서 노아가 겪었던 무서운 홍수는 세례의식의 예형이요, 그가 전나무를 켜서 지었던 방주는 구원의 나무, 곧 십자가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또 사십 주야 동안 노아가 떠돌았던 바다는 풍랑이 그칠 줄 모르는 세상의 바다요, 그 배는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지켜주는 교회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중세 시대에는 교회 공동체를 한 배에 탄 운명공동체에 빗대었고, 또 배의 구조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교회 건축을 설명하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것에다 이런 저런 상징들을 붙이기 좋아했던 옛 사람들은 하늘에서 빗줄기가 쏟아지면 그저 옷깃을 여미고 가슴을 쓸어내리기 바빴나 보다. 우리도 자연의 징조들 앞에서 그런 겸손을 좀 배우면 어떨까?

기원후 560~570년. 초기 비잔틴 시대. 306x245mm. 신들은 인간을 물로 정죄하거나 또 훗날 불로 세상을 태우기에 앞서 맛 뵈기 형벌로 예고하기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옛 신화와 설화마다 비슷한 대홍수 버전과 노아 같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가령 수메르 설화에서는 슈루파크를 다스리던 현명한 왕 지우수드라가 큰비의 재앙을 방주를 지어서 모면하고 다시 마른 땅이 드러난 뒤 소와 양을 잡아서 제사를 올린다. 이 이야기는 다시 길가메시 서사시 제 11판의 우트나피쉬팀의 소재로 계승된다. 특히 길가메시의 서사시에서, 물이 빠졌나 보려고 비둘기와 제비를 한 마리씩 차례로 날려 보냈으나 쉴 곳을 찾지 못해 되돌아 왔는데, 마지막으로 까마귀를 날려 보내자 젖어 있는 뻘에서 먹을 것을 찾아내고는 되돌아오지 않았다는 대목은, 순서와 종류가 다르다 뿐 노아 이야기와 거의 같다.
노르망디 시력서. 1430~144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