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나의 삶 나의 신앙 - 최재선 (10·끝) 가난한 이들 속 하느님

최재선(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 사무국장),,정리=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4-06-20 수정일 2004-06-20 발행일 2004-06-20 제 2403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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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동포에 나눔의 손길
민족화해의 새 도정 열어
2000년 호주에서 열린 아시아인간발전협력체(APHD)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각국 집행위원들과 함께 한 필자(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1993년은 200여년 동안 외국교회로부터 받기만 하던 한국교회가 그동안의 빚을 전세계 가난한 이들에게 갚기 시작한 역사적 해다. 기아에 허덕이던 소말리아에 미화 5만9250달러를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된 해외원조는 지난해까지 총 355개 사업에 115억4600여만원을 지원하는 성과를 남겼다. 95년 대홍수를 만난 북녘 동포들을 위해 주저없이 나눔의 손길을 내밀 수 있었던 것도 이 대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북한 접촉은 현실성이 희박한 것이었다. 홍콩 까리따스는 중국의 여러 채널을 이용해 북한 접촉을 시도했고 드디어 95년 4월 국제부장이 까리따스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지원사업에 대한 협의를 할 수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박석희 주교님은 최기식 총무신부와 나를 홍콩에 파견해 국제부장과 만나 지원가능성을 타진토록 했다. 그 해 7월 교구 대표자 회의가 북한 지원을 결정함에 따라 미화 10만달러를 국제 까리따스 본부를 경유해 학교급식용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 국제 까리따스는 한국 까리따스의 동의 아래 북한 지원사업의 실무책임기구로 홍콩 까리따스를 지명했다. 당시 국내 여건으로 한국 까리따스가 실무를 맡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홍콩 까리따스 국제부장은 재차 북한을 방문해 국제구호사업 기준에 맞는 원칙 아래서만 지원할 수 있다는 전제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로마 홍콩 한국의 삼각구도에서 이루어진 숨가쁜 협의 속에 그 해 11월 국제 까리따스 사무총장이 북한을 방문한 후 국제기구로서는 최초로 북한에 대한 식량 긴급구호가 이뤄지게 됐다. 민족화해의 새로운 도정에서 세계교회가 북한지원 창구로 국제 까리따스를 설정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교회가 보편교회의 일원으로 국제 까리따스를 통한 지원에 동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세계 교회는 이 창구를 통해 약 3000만달러를 지원했으며 북한지원사업은 국제 까리따스 역사에 가장 큰 지원사업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국제 까리따스 북한지원특별위원회의 의장을 맡은 나로서는 이 책임을 하느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마지막 공식적 봉사로 생각하고 있다.

90년대에 비약적인 발전을 해온 교회 사회복지는 성숙기에 들어서 있다. 자선주일, 사순절운동 및 해외원조주일의 공식적 헌금 외에도 수많은 신자들이 후원활동을 하고 있으며 많은 수도회에서 수도자들이 사회복지에 종사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교회 사회복지 시설과 기관은 700여개에 달하며 종사자도 8000명을 넘고 있다.

지난 33년간의 변화를 몸으로 체험해온 나로서는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개입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굳게 믿을 수밖에 없다. 기적적인 변화를 통해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 또한 은총이 아닐까 한다. 내가 그동안 끊임없이 화두로 삼아온 것은 사회사목의 교회적 신원을 규정하는 사회사목적 신학과 영성이었다.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교회 사회복지의 신원을 점검하고 성찰할 준거가 되는 사회사목의 신학과 영성을 정립하는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이 내게 부여된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새삼 가난한 이들 속에서 한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이 하느님의 섭리였음을 깨닫게 된다. 주님께서는 결점투성이인 나의 부족함에는 눈을 감으시고 대신 좋은 것으로 채워 당신의 도구로 쓰신 놀라우신 분이시다. 가난한 이들을 통하여 다가오시고 또한 그들을 통해 인도하시고 힘을 주셨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 동안 만났던 수많은 가난한 이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고 지학순 주교님을 비롯해 부족한 나를 불러주시고 신뢰해주신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최재선(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 사무국장),,정리=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