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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생명의 날 특집] 교회 생명운동 저변 확대 시급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4-05-30 수정일 2004-05-30 발행일 2004-05-30 제 2400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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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 의식 제자리…반생명 문화 오히려 확산
신자들 보다 큰 관심 가져야
낙태, 자살, 안락사, 가정폭력, 유전자 조작, 환경오염 등 반 생명적인 죽음의 문화가 100년 전보다 더욱 큰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교회의 생명운동이 신자 저변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을 준다.
5월 30일은 주교회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자 제정한 「생명의 날」이다. 특히 올해는 생명의 날이 제정된 지 꼭 10년째가 되는 해여서 더욱 의미가 있다. 사형제도폐지, 낙태.불임 반대, 가정성화 등 생명수호와 올바른 생명문화 확산을 위해 활발히 노력해 온 교회의 생명운동 10년을 결산하고 향후 활동방향을 재정립해야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10회 생명의 날을 맞는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특히 낙태, 자살, 안락사, 가정폭력, 유전자 조작, 환경오염 등 반 생명적인 죽음의 문화가 10여년 전보다 더욱 큰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교회의 생명운동이 신자 저변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을 준다.

일반인과 의식차이 없어

한국사목연구소가 지난해 일반인과 신자 천 명씩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일반인과 신자의 생명윤리의식이 별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신자의 64%가 「인공피임은 반 생명적인 행위가 아니다」라고 응답했고, 낙태도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87.6%에 달했다. 서울대교구가 시노드 준비를 위해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2.8%가 교회의 인공 피임 금지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자연피임법에 대해서는 절반 이상인 54.9%가 「현실적으로 따르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생명의 날을 제정하고 지속적으로 생명운동을 펼쳐왔지만 정작 신자들의 생명윤리 의식은 10년간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생명의 참 의미를 일깨우고 확산시키기 위해 사회의 중심에 나선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일이 과연 신자들의 폭넓은 이해와 참여를 업고 진행되어 왔는지, 생명운동의 취지가 신자를 비롯한 대중 속으로 확산되어 왔는가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교회의 생명운동 자체가 교회 지도층이나 일부 전문가와 관계자들만의 운동으로 그치고 있다는 것이 우선 지적된다.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에만 기초해 생명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다 보니 신자들의 실질적인 삶에 적용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한 신자는 『생명윤리 지침서를 구입해 가정에서 실천하려 해 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며 『현대인들의 생명에 대한 의식과 사고방식을 충분히 고려해 보다 쉽고 실천적인 방향으로 안내서를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교회의 생명운동을 총괄해 관리하는 통합 기구의 필요성도 제시되고 있다. 지난 해 3월 주교회의 「생명31운동본부」가 출범했지만 낙태반대, 출산장려 등 좁은 개념부터 가정문제, 사형제도폐지, 환경?농촌 살림 등 날로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광의적 개념의 생명운동을 아우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90년대 자생적으로 생겨난 연구소, 생명운동 활동단체, 전국 각 교구 생명운동 담당자, 농촌?환경관련 단체 등 생명운동 유관단체를 포괄한 통합기구를 중심으로 활발한 정보교류와 지원활동이 있어야만 신자들도 생명운동의 존재를 가깝게 인식하고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자들의 무관심은 가장 크고 심각한 문제다. 실제로 생명31운동본부가 지난해와 올해 차례로 가진 사제모임과 워크숍, 집행위원회 회의에서의 대표적인 논제는 생명운동의 인식 확산과 대중화였다. 신자들의 관심과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캠페인과 공연, 자료집 발간, 수필공모, 「생명 하나 더」 스티커를 배부 등을 통해 생명운동의 확산을 꾀하는 교회에 동참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중장기적 사목계획 필요

이밖에도 사회흐름에만 편승, 단발적인 이벤트나 캠페인을 개최하는데 그치지 말고, 중장기적인 사목계획을 세워 이를 통해 생명운동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고 생명윤리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생명의 존재함 없이 모든 존재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 곧 매일 매일이 생명의 날이다. 그럼에도 일년 중 한 날을 택해 생명의 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생명에 대한 인식없이 무가치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회와 교회를 구성하는 신자들이 「생명의 문화 건설」에 앞장서야 할 때다.

■ 인터뷰 / 한마음한몸운동 생명운동부 김명희 부장

“실천방안 제시할 전문기관 있어야”

『교회가 지난 10년 동안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생명 중심의 문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생명운동은 그간 선언되어지고 강조만 되어 왔을 뿐 현실적으로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이고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해 파악하고 적절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재)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명운동부 김명희(로사) 부장은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등 그 동안 낙태반대, 자연출산 등과 관련해 꾸준히 노력해 온 교회가 예언자적 역할을 했다는 것에는 의미를 두면서도 아직까지 생명운동이 일반신자들에게 파급되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부장은 『교회의 생명운동이 분야에 따라 너무 좁고 잘게 나뉘어져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사형폐지, 낙태반대, 장기?골수기증 등 다양한 생명운동의 중심점이 되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생명운동은 일반신자들의 활동적인 참여 없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부장은 이어 『교회에는 많은 생명운동 관련 단체 및 의료기관들이 산재해 있지만 이들간의 연계나 정보교류는 거의 없다』며 『명색만 있는 조직은 과감히 없애고 기능성, 가능성이 있는 조직을 살리고 통합해 전문화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생명운동 전체를 포괄할 구심점을 만들고 신자들에게 생명운동의 실질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해줄 수 있는 전문기관의 필요성을 김부장은 강조한다.

김부장은 『생명운동은 이벤트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매일매일 부닥치는 근본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에서 시작된다』며 『교회는 지난 10년간 생명운동을 펼치며 드러난 한계와 문제점을 풀어나가는 노력을 통해 신자들이 보다 쉽고 적극적으로 생명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생명 31운동’

죽음의 문화 몰아내고 생명문화 건설에 한몫

갈수록 험난해지는 생명의 바다를 헤쳐가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읽게 하는 키워드는 「생명31운동」이다.

2003년 3월 세상을 향해 본격적으로 돛을 펼친 주교회의 생명31운동본부(책임=이기헌 주교)가 5개년 계획 아래 「개인인식의 단계」였던 지난해를 필두로 「생명31운동」의 폭넓은 뿌리내림을 위해 올해 설정한 지표가 「사회인식의 해」이다.

「생명, 하나 더!」는 생명의 문화를 건설해 나가는 교회의 여정에서 올 한해 신자들이 앞장서 지고 나가야 할 캐치프레이즈다.

세계 최저 수준인 저출산 문제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반생명문화를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생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한 「생명, 하나 더!」는 먼저 생명을 대해온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의식화운동이자 죽음의 문화에 대해 올바른 자세를 갖게 하는 문화운동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생명31운동본부는 그간 차량용 스티커를 제작해 전국 각 교구와 단체에 배포하는가 하면 「생명, 하나 더!」를 주제로 한 수필 공모와 공모전 개최 등을 통해 생명에 대한 교회 가르침의 대중적 확산을 꾀해 왔다. 또한 생명운동 저변화를 위한 의식적 기반 구축을 위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구체적 사례를 담은 「생명31운동」 자료집 제작을 추진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생명, 하나 더!」는 그러나 생명을 하나 더 낳아 출산율을 높이자는 단순한 의미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입양을 통해 생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거나 물질적 나눔으로 한 생명을 살린다든지 장기기증으로 생명을 나누는 행위 등이 모두 「생명, 하나 더!」운동의 범주에 들 수 있다. 즉, 생명이 침해당하는 모든 현실에 새로운 생명의 힘을 불어넣어 생명의 문화를 파급시켜 나가자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헌 주교는 『「생명, 하나 더!」를 캐치프레이즈로 한 운동은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죽음의 문화를 몰아내고 생명문화를 건설하는 주춧돌을 놓는 문화운동』이라며 『신자들이 일상에서부터 실천을 통해 생명운동에 함께 할 때 생명문화가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