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정사목 현장을 찾아서 (4) ‘희망으로 가는 길’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4-05-09 수정일 2004-05-09 발행일 2004-05-09 제 239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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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묻어둔 아기와 화해” 
낙태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여성·가족 치유 프로그램 
서울 가정사목부 지난해 5월부터 실시 
4월 20일 서울 가톨릭회관 3층 강당에서 열린 「희망으로 가는 길」에 참여한 이들이 아기에게 쓴 편지와 초를 봉헌하고 있다.
『낙태한 비밀을 오랫동안 숨겨왔습니다. 하느님과 아기는 저를 용서할까요?』

매월 셋째주 화요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3층 강당에서는 낙태나 자연유산을 경험한 여성 및 가족들을 위한 「희망으로 가는 길」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참가자들은 20~30대 뿐 아니라 50~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이다. 시작부터 끊임없이 우는 이들도 있고 프로그램 내내 안절부절 못하며 불안해하는 이들도 보였다. 참가자들은 이 시간을 통해 아픈 가슴 속에 묻어둔 아기를 떠올리며 화해하고 하느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담당=김동춘 신부)는 지난해 5월부터 낙태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여성 및 가족을 위한 단계적 치유 프로그램인 「라헬 프로그램」을 응용한 「희망으로 가는 길」을 실시하고 있다.

낙태행위는 어떤 상황, 어떤 이유에서든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는 곧 생명의 주인인 하느님에 대한 도전이다. 최근 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자 여성들도 3명 중 1명꼴로 낙태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생명경시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다. 가정사목부 이숙희(데레사)씨는 『낙태가 단순히 교회 가르침에 반대된다고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치유를 돕고, 여성 스스로 낙태를 반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목적 배려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낙태 경험자 중 많은 이들은 고해성사를 여러번 보면서도 깊숙이 잔재한 죄의식을 떨쳐내지 못하고 끊임없는 괴로움에 시달린다. 심지어 매일같이 「아기가 원한을 품어 일상에서 나쁜 일들이 생긴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고통받는 이들도 있다. 치유 과정 없이 가슴깊이 묻어둔 고통은 세월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지속된다.

가정사목부에서는 「희망으로 가는 길」을 통해 낙태로 인해 이미 정신적.육체적.영적으로 괴로움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참회하고 하느님과 화해해 영적 치유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3시간 가량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우선 자신과 생명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치유를 향한 여정에서는 아픈 기억을 되살려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낙태를 하게 한 사람과 그 상황을 되짚어 용서의 정신을 간구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아기의 출생 혹은 사망일자를 정하고 아기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은 아기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일깨우고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 간혹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기에 대한 애정은 한결같다. 편지는 파견미사 때 봉헌돼 모두 태워진다. 미사전례는 위로와 평화를 얻는 큰 줄기가 된다.

프로그램의 가장 큰 목적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고 용서를 청함으로써 더욱 큰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변화를 추구하는 것. 프로그램에서는 하느님은 사람들이 고통에 얽매인 불행에서 벗어나길 원하신다는 것을 적극 알려준다. 또 낙태 혹은 자연유산의 상처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비뚤어졌던 인간관계를 회복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나아가 기도와 미사에 적극 참여하고 생명문화운동을 위한 사회봉사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가정사목부에서는 현재 「희망으로 가는 길」과 더불어 개인상담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매월 첫째 화요일에는 가정성화와 생명수호를 위한 미사도 봉헌한다.

특히 5월부터는 후속 기도모임도 운영하며, 앞으로 남편과 가족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할 예정이다.

※문의=(02)727-2069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