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새하늘 새땅] '비극의 땅에 희망을' 21세기 첫 독립국 동티모르를 가다 (상)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4-03-14 수정일 2004-03-14 발행일 2004-03-14 제 2389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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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imor-Leste)은 여러모로 한국과 닮았다. 1940년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1975년부터 최근까지 영토를 강점한 인도네시아에 대항해 독립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남북으로 갈린 한반도처럼 동서로 갈려 있다. 지금도 서티모르(인도네시아령(領))와 동티모르 국경에는 내전을 피해 고향을 등진 많은 이산가족들이 있다. 전쟁의 참상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이 비극의 땅에서 한국과 동티모르 청소년들이 손을 맞잡고 희망의 함성을 외쳤다. 한국살레시오회와 국제청소년지원단 단원 26명은 지난 2월 18일부터 3월 1일까지 동티모르 수도 「딜리」와 「로스팔로스」, 「바우카우」시 일대에서 이곳 청소년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펼쳤다. 본지는 이들을 동행취재해 2회에 걸쳐 보도한다.

【동티모르 딜리=이승환 기자】 2월 23일 오전. 뜨거운 햇살과 습한 기운에 벌써부터 땀이 흐른다. 지난 사흘간 숙소인 돈보스코 수련센터의 건물 페인트칠과 컴퓨터 배선 및 설치작업을 마친 봉사단은 오늘부터 사흘간 수도 딜리시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마술리둔(MASULIDUN)에서 봉사활동을 펼친다.

우리나라의 시골공소를 연상케 하는 마술리둔 공소. 이 마을 62가구 약 500여명이 성당 겸 마을회관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20여평 남짓한 공간에 긴 의자 10여 개가 전부. 소형 백열전구 하나만이 제대 위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우선 의자 빼고 청소부터 시작하자』

누군가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봉사단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뒷마당에서 야자수 잎을 꺾어 공소 구석구석의 거미줄과 먼지를 털어 내고, 전기 설치조는 준비한 형광등을 설치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페인트조도 장비를 챙겨 공소 마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지난 사흘간 줄곧 했던 작업이어서인지 롤러를 놀리는 봉사단원들의 몸짓이 제법 능숙하다.

화단 가꾸기에는 마을 아이들도 함께 했다. 제 몸 만한 큰 돌을 수레에 실어 나르고 땅을 다져 꽃을 심는 아이들, 돌 무게를 이기지 못해 비틀거리는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봉사단원들의 모습 속에서 피부색과 언어, 그리고 빈부의 차이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다.

공소 입구와 화단을 잇는 계단을 만들던 정연준(대건안드레아.23.인천 심곡본동본당)씨는 『처음에는 더위와 음식 때문에 짜증도 났는데 일을 하며 남을 돕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새삼 깨달아 가고 있다』며 『게다가 이렇게 아이들까지 나서서 함께 도와주니 마치 한 형제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오를 넘기자 볕이 더욱 강해졌다. 잠시 쉬고 있던 일행에게 한 소년이 다가왔다. 이곳 아이들 중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아떼니 까를로스(17)다. 영어가 좋아 혼자 공부했다는 까를로스는 동생들과 함께 놀 축구공을 얻는 것, 그리고 학교 다니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동티모르의 초등학교 한달 수업료는 미화로 50센트, 중학교는 5달러다. 그러고 보니 일을 돕고있는 아이들 대부분은 학교에 가 있어야 할 나이다. 50센트가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 더위를 참지 못하고 75센트 짜리 물병을 마구 비워대던 모습을 생각하니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재의 수요일이었던 2월 25일은 사흘간의 마술리둔 봉사활동을 마무리하는 날. 하루 한끼 단식을 위해 점심까지 거른 봉사단원들이 막바지 정리에 한창이다. 처음 동티모르에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봉사단원들의 얼굴도 구릿빛으로 그을렸다. 하지만 깔끔한 흰색과 초록색으로 탈바꿈한 공소 외벽을 바라보며 긴 의자를 다시 성당 안으로 옮기는 봉사단원들의 모습에서 피로를 찾아볼 수 없다.

공소 지붕 꼭대기에 매달린 십자가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으로 모든 일이 마무리됐다. 녹슨 자동차 바퀴로 만든 공소의 종이 「땡」 「땡」 소리를 내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서로 얼싸안고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두 나라 사람들을 보는 마을 사람들의 눈빛에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과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오늘 우리의 작업은 어쩌면 너무도 미약한 것일 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성소를 얻고 우리와 같은 하느님의 한 형제로 기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봉사는 이제 첫 걸음일 뿐입니다』

문득 봉사단 김상윤 신부(살레시오회)와 단원들이 함께 바치던 기도가 다시 떠올랐다(계속).

봉사단원이 마술리둔 공소에 놓을 의자 칠작업을 하고 있다.
땀과 페인트 자국으로 범벅된 봉사단원들. 하지만 동티모르 청소년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내 손으로 단장한다는 생각에 피곤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공소 지붕 십자가 페인트칠이 마무리되자 박수치고 있다.
일주일간의 봉사활동을 마친 단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 국제청소년지원단은

(사)국제청소년지원단(단장=이명천 토마스 아퀴나스)은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전세계 청소년들을 돕고자 (재)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관구장=황명덕 신부)와 이명천 교수(중앙대 광고홍보학과)가 중심이 돼 결성한 봉사단체다.

지원단은 세계 각지의 살레시오 공동체와 연계해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의 청소년들에 대한 물적.정신적 지원을 통해 현지 청소년들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번 동티모르 봉사는 지원단의 두 번째 활동이다. 지원단은 2003년 7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근교에서 사랑의 학교 짓기 사업으로 지원단 활동의 첫 삽을 뜬 바 있다.

단장 이명천 교수는 『한국전쟁 직후 국제구호기관이나 외국선교회를 통해 도움을 「거저 받은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그것을 「거저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지원단의 결성 취지』라며 『양국의 청소년들이 함께 어우러져 일하고 교류한다는 것은 곧 평화로운 미래세계를 만들어 가는 뜻깊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제청소년지원단은 올 7월 12일부터 2주간 멕시코를 방문, 봉사활동을 가질 예정이며, 함께 활동할 단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국제청소년지원단은 종교나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단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