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새하늘 새땅] 화재 아픔 딛고 새성당 짓는 춘천교구 간성본당

곽승한 기자
입력일 2004-02-29 수정일 2004-02-29 발행일 2004-02-29 제 2387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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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타버린 잿더미보며 눈물짓던 그곳에
"사랑과 나눔의 복음자리 짓는다"
『저희는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온갖 욕심과 오만으로 가득 차 주님의 뜻을 소홀히 했나이다…』(「새 성전 건립 기도문」 중에서).

동해바다 북쪽 끝 남북 분단으로 인해 소외된 지역 고성.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 드리던 이 지역 신자들의 나눔터인 간성성당이 화재로 전소되는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지난 2002년 7월 3일 새벽 경이었다. 소방차가 긴급 출동했으나 성당은 순식간에 다 타버리고 외부 골조만 앙상하게 남았다. 불이 난 곳은 사제관과 수녀원이 아닌 성당 건물이고 새벽시간이어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화재 소식을 듣고 잠자리에서 뛰쳐나온 신자들은 검게 타버린 성당을 보는 순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눈물바다를 이뤘다.

간성성당은 지난 1958년에 설립된 낡은 구조의 목조건물인데다 구조가 불편해 신축이 요구되고 있던 상황. 특히 본당 설립 50주년을 앞두고, 5개년 계획으로 교우들이 생활비를 쪼개 어렵사리 신립금을 모으는 등 새 성당 마련에 희망을 가지던 시기에 화재가 일어나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지역 산불때 복구작업 함께 나눔 실천

『이제 주님의 자비를 청하며 저희가 힘을 모아 주님을 예배할 새 성전을 세우고 사랑과 일치의 공동체를 가꾸어 나가고자 하오니 저희를 지켜주시고 이끌어주소서…』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성당 건물, 그리고 불에 그을리고 잿더미에 파묻힌 성당 집기들을 보며 망연자실 넋을 놓은 본당 신자들. 화재가 할퀴고 간 뒤의 현장은 참담하기만 했다. 특히 간성본당은 주일미사 참례자 200여명밖에 안 되는 작은 본당인데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노인 신자들이 많아 화재 현장을 수습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컸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지역 주민들이 있었다. 신자들이 슬픔에 잠겨있자 이를 지켜본 인근 삼포1리 어명헌(46) 이장을 비롯한 지역주민들이 신자들을 돕는데 적극 나선 것. 가난한 농가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쌈짓돈을 털어 기금을 마련하고 신자들을 위로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해마다 찾아오는 수해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큰 피해를 입었지만 지역 민들은 신앙의 터전을 잃은 신자들을 돕는데 마음을 다했다. 이러한 주민들의 사랑은 바로 결초보은의 마음에서 시작된 것.

지역 주민들의 결초보은

바로 지난 96년, 98년 발생한 강원도 고성군 산불로 산아래 지역 전체가 불타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때 도움의 손길을 적극 베풀었던 이들은 춘천교구와 간성본당 신자들이었다. 당시 교구에서는 불탄 마을회관을 다시 지어주고 간성본당 신자들은 긴급구호물품을 전달하고 복구작업에 동참하는 등 복음의 정신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그때 교회의 도움의 손길로 희망을 잃지 않았던 지역 주민들은 그 감사한 마음을 화재로 실의에 빠진 신자들을 돕는데 그대로 갚았던 것이다.

이에 용기를 얻은 본당 신자들도 하나로 뭉쳤다. 건립기금을 모으기 위해 직접 오징어와 명태를 말려서 판매하기로 했다. 노인 신자들은 손이 부르트도록 오징어 700축을 성당 마당에 펴서 말렸고, 매주일 새벽마다 도시본당으로 팔러 나갔다. 같은 시간 서신부는 기금 마련을 위해 알프스 리조트를 찾아 관광객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

주위의 온정도 계속 이어졌다. 피해소식을 전해들은 주변 본당 교우 및 춘천교구 신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간성성당을 찾아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랑의 손길을 전했다. 인근 56연대 군 장병들은 무료로 장비를 지원했으며, 미리내 실버타운에 거주하는 노인들도 십시일반으로 성금 3000만원을 전달했다. 간성본당은 그 와중에서도 수해 피해를 입은 부산교구와 마산교구 진영본당에 650여 만원을 쾌척하는 나눔을 실천하기도 했다.

기쁜 마음으로 찬미할 그날을

『마침내 성전이 완성되는 날 저희가 모두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지난 2월 20일. 화재가 일어난 간성성당 자리에서 의미 깊은 행사가 열렸다. 마침내 20개월여 만에 새 성당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뜨게 된 것.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 주례로 기공식이 진행되는 내내 본당 신자들의 눈에는 따뜻한 물기가 비쳤다. 「나눔은 더 큰 나눔을 낳는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느낄 수 있었던 지난 시간이었다. 장주교는 『시련과 아픔을 이겨내고 잿더미 속에서 하느님의 집을 새로 세우는 여러분들의 단결과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고 치하했다.

이제 올 12월이면 화려하진 않지만 본당 신자들의 애환과 정성이 담긴 새 성당이 우뚝 설 것이다. 하나됨을 위한 간성 공동체의 아름다운 행보는 오늘도 계속된다.

새성당 건립 첫삽을 뜨고 있는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와 관계자들.
작은 공동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새성당을 짓기 위한 기공식을 갖고 있다.
지난 2002년 7월, 화재로 순식간에 타버리고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성당 내부.

■ 간성본당 서범석 주임신부

“한마음으로 시련 이겨내”

서범석 신부
『다시는 이런 재난이 일어나서는 안되지만 화재를 통해, 그리고 다시 기공식을 하게 되기까지 사목자와 본당 신자, 지역 주민들이 하나되는 열매를 얻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를 돕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돼 기쁩니다. 언제나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본당 공동체의 아픔을 껴안으며 참 사제의 모습을 구현하고자 애쓴 서범석 주임신부. 간성본당이 2년이 채 안돼는 짧은 시간 속에서 새 성당 기공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서신부의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

서신부는 『처음에는 노인 분들이 대부분인 신자들이 아픔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했다』며 『그러나 모두들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손발을 걷어 부치고 일하는 모습에 가슴이 찡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고 말했다.

서신부는 이어 『간성 공동체 모두는 한 마음으로 새 성당 건립을 위해 노력하며 다시 한번 주위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며 『물질적인 도움도 중요하지만, 많은 이들의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 자리를 빌어 저희 본당을 위해 수고해주신 수많은 은인들의 땀과 정성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랑으로 화합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공동체로 거듭나겠습니다』

곽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