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새하늘 새땅] 113세 국내 최고령 이상묵 할머니

곽승한 기자
입력일 2004-02-15 수정일 2004-02-15 발행일 2004-02-15 제 2385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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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기를 살고 나서야 참 세상을 만나게됐지”
지난달 17일 오후 충북 제천시 성 보나벤뚜라 요양원(원장=이명숙 수녀)에서는 국내 최고령 이상묵(마리아.113) 할머니의 113번째 생일 잔치가 조촐하게 열렸다. 케이크 위 촛불이 켜지고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지자 할머니는 해맑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잔치 말미, 할머니는 『몸과 마음이 편안한 게 제일 중요한 거야. 조금만 먹고, 주위를 깨끗이 해야해』란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이날 생일 잔치는 오래 오래 사시라는 뜻도 있었지만, 그가 살아온 지난 100여년간의 삶을 통해 후손들에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방법인지」를 가르쳐 달라는 뜻이 포함돼 있었다.

깔끔한 깻잎머리 할머니

「1891년 1월 17일 충북 제천시 백운면 모정리 269번지 출생. 1906년 2월 20일 강원희씨와 혼인. 무손(無孫). 신장 142cm, 몸무게 40kg. 죽으면 남편과 합장을 해달라는 것이 소원…」. 이상묵 할머니의 신상 명세서에 써 있는 내용이다.

이할머니는 백운면 모정리 천등산 기슭에서 태어나 16살이 되던 해에 결혼했다. 자녀는 없었고 남편과 사별 후 홀로 16년간을 살아오다 97년부터 성 보나벤뚜라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평생을 천등산 부근에서 벗어나지 않고 100년을 넘게 살아왔다.

목수였던 남편과 평생 부부싸움이라고는 해 본적 없이 76년을 해후한 할머니는 100여년이 넘는 세월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왔다. 깔끔하고 청결하며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었고, 언제나 소식(小食)을 했다. 100세가 훌쩍 넘었지만 약간 귀가 어둡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불편이 있을 뿐, 건강은 60대 노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간호담당 김데레사 수녀는 『할머니는 당신의 몸도 청결하게 유지하지만, 방안에 먼지 하나도 없을 만큼 깨끗하게 살아가신다』며 『누구한테든 폐를 끼치지 않고, 만약 신세를 지게 되면 꼭 갚는 분』이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과 요양원 식구들은 할머니를 「깻잎머리 할머니」라 부른다. 매일 얼굴에 크림과 분을 바르고 흰머리를 곱게 빗어 항상 머리핀을 꽂아 붙여진 별명이다.

108세에 세례 받아

이할머니는 1998년 4월, 108세가 되던 해에 「마리아」란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100년 동안 무속신앙과 불교를 혼합한 듯한 나름대로의 신(神)을 믿어왔으나,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한 세기를 보내고서야 참 세상을 만나게 됐다』는 할머니의 말에서, 짧지만 깊고 육중한 신앙심을 엿볼 수 있다.

할머니의 하루 시작은 새벽 3시. 성모상 앞에 앉아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느 할머니들처럼 낮에는 재활운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오전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점심식사 후 오후 2시면 어김없이 묵주기도를 바치고, 또 잠자리에 들기 전 묵주기도를 바치며 하루를 정리한다.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나는 삶이다.

할머니는 요양원 내에서도 최고참(?)에 속하지만, 식구들을 늘 따뜻하게 감싸고 보살펴 주위엔 따르는 사람이 많다. 오랜 봉사의 삶과 낙천적인 성격이 몸에 배어 있다.

특히 옷가지나 음식 등 자신의 것은 거의 다 주위 노인들과 나누는 것을 즐긴다. 베푸는 일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는 삶이다. 이렇다 보니 수건 하나도 7년 전 요양원 기념품으로 나온 것을 그대로 쓰고, 옷차림도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한 세기를 살아오면서 현재 할머니에게 남은 재산목록 1호는 손목시계 하나 뿐이다.

할머니는 지난해 가을부터 흰머리에 검은머리가 나고 있다.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너무나 뒤늦게 알아버린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오늘도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친다.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는 제 삶이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이상묵 할머니가 동료할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상묵 할머니가 이명숙 원장수녀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곽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