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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의 날 특집] 꽃동네 인곡자애병원 탐방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4-02-08 수정일 2004-02-08 발행일 2004-02-08 제 238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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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힘없는 손 맞잡고 고통나눕니다"
2월 11일은 세계 병자의 날이다. 매년 사순절을 앞두고 맞이하는 이 날은 병마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해 왔던 교회의 창립정신을 일깨우고 병자들 곁에서 그들의 고통을 치유하며 자신을 내어주기까지 하신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을 되새기는 뜻깊은 날이다.

병자의 날을 맞아 충북 음성군 맹동면 꽃동네 안에 자리한 「인곡자애병원」(원장=박정숙 수녀)을 찾았다. 꽃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갈 곳 없이 내쳐진 이들이다.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은 병까지 얻어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피붙이 하나 없는 이들에게 하느님이 맺어준 또 하나의 가족이 있었다. 환자들의 손과 발이 되며 치유의 손길을 한없이 내미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속에서 병자의 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본다.

정신질환 치매 등 중증환자

토요일 오후 2시. 병동은 인기척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을씨년스럽다. 묵주기도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면 아무도 살지 않는 빈 건물이라고 여길 정도다. 병동에서 환자들을 보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부분 환자들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끔 소리를 지르며 간호사를 부르는 환자들이 있을 뿐 대부분이 그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거나 힘겹게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병실 한 켠에서 봉사자와 대화를 나누는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유일하게 말을 할 수 있는 환자였다. 심시몬(46)씨는 올해로 20년째 전신마비 상태다. 꽃동네에 들어온 지 15년, 병원에 입원한 것은 10년이 넘었다. 한 창 일할 나이에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심씨에게 도움을 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느님께 기대어 보려 노력했지만 어느 기도원, 어느 복지시설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이곳 꽃동네다. 꽃동네 입소 뒤 전신마비 증세가 악화되면서 병원에 입원했다.

병상을 가득 채운 채 투병중인 환자들도 시몬씨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병원은 이처럼 꽃동네에서 생활하는 이들 중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지난 89년 설립됐다. 꽃동네 입소자들은 대부분 정신질환이나 치매, 약물중독 등 한 두 가지 병을 갖고 있다. 이들 중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병원에 오다보니 환자들은 대개 거동도 하지 못하는 중증환자들이다.

현재 내과와 신경과, 신경정신과, 마취과, 산부인과, 소아과, 재활의학과, 치과 등 진료과와 정신과, 호스피스, 중환자병동을 운영하고 있는 병원에는 60여명의 의료진과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중환자 80여명을 돌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 부족한 인원은 전국 각지에서 꽃동네를 찾는 자원봉사자들이 채우고 있다.

꽃동네 인곡자애병원 중환자병동에서 투병중인 한 어린이를 자원봉사자 여상준(프란치스코.왼쪽)씨와 간호사가 간호하고 있다.
병원이 꽃동네 안에 있고 환자들 대부분이 꽃동네에서 생활하던 이들이어서 병원은 외부와 차단된 폐쇄적 이미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증환자들과 바깥 세상을 잇는 고리는 15년간 한결 같이 환자의 손과 발이 돼주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다. 2박3일 봉사하러 왔다 아예 장기봉사자로 병원에 눌러앉은 이들도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고경인(카타리나. 20.청주 신봉동본당)씨가 그렇다.

『할머니들을 보니까 그냥 집에 갈 수가 없었어요. 이젠 할머니들이 저보고 여기서 같이 살자고 하시고 며느리 삼겠다고 하세요』

중환자병동 봉사자 여상준(프란치스코)씨는 벌써 10분 째 한 할머니의 병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여씨를 붙잡은 할머니가 꼭 쥔 손을 놓아주질 않는다. 힘없이 주름만 가득한 손. 떼어놓을 수 있지만 여씨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할머니, 나 이제 다른 할머니한테 가야해요. 할머니 이러시면 안나 할머니가 삐쳐요』

여씨가 핑계를 대보지만 할머니는 막무가내다. 할머니의 얼굴에 핀 희미한 미소에 차마 손을 놓지 못하는 여씨의 얼굴에도 미소가 스민다.

봉사자 발길 뜸해져 상처받기도

지난 해 꽃동네는 어느 때 보다도 힘겨운 한해를 보냈다. 병원을 찾던 자원봉사자도 눈에 띄게 줄었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병원 의료진과 직원들의 마음고생도 심했다.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이들은 다름 아닌 환자들. 둘도 없는 친구였던 봉사자들이 모습을 감추자 몸은 아파도 얼굴만은 평온했던 환자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버려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첫 번째로 놀랐고, 두 번째는 버려진 사람들만큼이나 아니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분들의 얼굴에 힘들거나 귀찮다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이 가족들을 보살필 수 있다는 자체에 행복해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꽃동네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했던 한 의사의 글이 병원 현관을 나서는 데 눈에 들어온다. 병원에서 만난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을 잠시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그들은 모두 행복한 모습이었다.

◆ 15년봉사 박고열.김정자 부부

"더불어 함께 살며 사랑 배우고 있죠"

박고열·김정자 부부
『이곳이 낙원입니다. 힘들다고 생각해 본적은 한번도 없어요』

병원 방사선사 박고열(요한.70)씨와 주방에서 일하는 김정자(데레사.64)씨 부부는 병원이 문을 연 1989년부터 지금까지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들이 길게는 2년 짧게는 2박 3일의 봉사를 마치면 병원을 떠나게 마련. 15년 동안 돈 한 푼 받지 않고 환자들을 위해 봉사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부부가 꽃동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쉰 살이 되면 남을 위해 살아가는 길을 택하자」는 결혼 때의 약속 때문. 그리고 박씨가 54살 때 인곡자애병원 개관식에 참여하면서 남을 위해 살아가는 길이 정해졌다.

방사선실로 들어오는 환자들은 대개 들것에 실려온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몇 달이 지나면 이제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고, 몇 달 후면 목발을 짚고 걸어 나간다. 몸을 자꾸 뒤척여 엑스레이 조차 찍지 못하게 하고 욕설을 퍼 붇던 환자들이 목발을 짚고 말끔하게 병원 문을 나설 때 박씨는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김정자씨는 병원에서 「죽 사모님」으로 통한다. 호스로 음식물을 먹어야 하는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을 위해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정성껏 죽을 만드는 김씨의 모습을 보고 병원직원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서울에 살던 노부부는 아예 집을 충북 진천으로 옮겨 매일 출퇴근한다.

『저는 지금 자원봉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누가 누구에게 봉사를 한다는 것입니까. 환자들과 더불어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 곳에 봉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배우러 왔습니다』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