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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주일 특집 - 나눔은 곧 삶이어야 합니다] 노숙자 위해 무료급식 봉사 김봉현·박처성씨 부부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3-12-14 수정일 2003-12-14 발행일 2003-12-14 제 2377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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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밥 나누니 겨울이 따뜻해요”
매주 월·토요일 서울역에서 13년째 사랑나눔
천주교 책자 보급 등 하느님 전하는 일도 앞장
김봉현·박처성씨 부부는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이면 서울역에서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노숙자들을 위해 무료급식 봉사를 한다.
빵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은 나눔을 망설이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격려가 된다. 그리고 나누기 위해 나설 용기를 준다. 『빈 곳간은 늘 주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믿음으로 가진 것을 나누며 사회의 빛이 되고 있는 이웃들이 있다.

『요한씨, 그 사람 다시 올까요?』 『이냐시오? 글쎄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걱정인데…』

600여명을 먹일 음식을 가득 실어 음식냄새가 빠질 틈도 없을 것 같은 차를 몰아 서울역을 향하는 김봉현(사도 요한.72.서울 역촌동본당).박처성(마르가리타.69)씨 부부는 가는 길에서도 지하도에서 만났던 노숙자들 걱정이 떨어지지 않는다.

토요일이어서 아침부터 바삐 서둘렀건만 늘 뭔가 부족한 것이 없나 돌아보게 되는 마음을 누를 수 없는 게 두 부부의 모습이다. 십여년을 넘게 해오는 일이라 몸에 익을 대로 익었을 법하지만 이런 마음이 이는 걸 막을 수 없는 건 혹시 가난한 이웃들이 지닌 상처를 덧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다.

『버려진 이들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크고 지우기 힘든 상처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저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사랑으로 보듬어 안는 것뿐이지요』

김씨 부부가 이런 마음으로 노숙자 무료 급식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1년, 누구도 거리의 부랑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을 때였다. 부부가 운영해오던 청소년보호시설에 들어온 연말선물을 함께 나눌 데를 찾다 서울역 노숙자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눈에 아른거리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지울 수 없어 하루 이틀 찾게 된 것이 일주일 내내 서울역을 또 다른 일터로 삼게 된 까닭이다. 김씨 부부가 서울역에서 밥을 나눠준다는 소문이 퍼지자 5, 60명 안팎이던 노숙자는 1년이 지날 즈음엔 200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처음 무료급식을 시작했을 때는 부부도 상처를 받을 때가 적지 않았다. 선의를 지니고 다가섰건만 사랑의 손길을 처음 대해본 이들은 오히려 경계의 눈초리로 이들을 배척하기 일쑤였다.

『저희를 통해 드러나는 주님의 사랑만이 이들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상처를 받아들일 수 있었지요』

「사랑이 많은 사람은 상처도 많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노숙자들의 아픔을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 안기 시작하자 이들에게서 들려오는 욕마저도 사랑의 소리로 여겨졌다.

그동안 음식을 실어 나르던 차도 승용차에서 봉고차로, 다시 화물차로 바뀌었고, 노부부의 주름도 더 깊고 굵어졌다. IMF 후부터는 노숙자들을 위해 나선 단체가 많아 부부는 이들 단체가 나오지 않는 월요일과 토요일만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천주교를 소개하는 책자를 보급하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등 하느님을 전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러나 600여명으로 불어난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의 무료급식에 드는 비용은 보통 60만원 안팎, 한 달이면 보통 500만원이 넘지만 후원금은 예년의 30% 수준이어서 이제는 이 일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9월에는 무료급식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전기료까지 밀려 독촉전화를 받았지만 무료급식은 중단하지 않고 있다.

김씨 부부는 급식비용을 아끼려고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팔다 남은 채소나 먹거리를 거둬오기도 하고 노숙자들이 입을 옷가지를 준다는 데는 거리를 마다 않고 찾아다녔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노부부가 무료급식을 그만 두지 않는 것은 따뜻한 이웃들 때문. 힘든 살림에도 후원을 잊지 않는 사람, 후원금이 든 봉투나 먹거리가 든 자루를 몰래 두고 가는 사람, 10년이 넘게 꼬박 자원봉사를 해주는 여든이 넘은 할머니 등 많은 이들이 노부부의 힘의 근원이다.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주님만을 믿는다』는 노부부는 이 일을 통해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5000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떠올리며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주님을 만나고 있는 지 모른다.

※후원문의=(02)358-5777 요한의 집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