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교회 토착화를 향해] (20) 한국교회 전망과 과제 (상)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12-14 수정일 2003-12-14 발행일 2003-12-14 제 237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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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집권·권위주의 성격 탈피
민주적 방식의 교회 운영 돼야
민족. 사회 맞는 창조적 토착화 절실
자유·평등 실현, 정의 구현이 목표
한국교회 토착화 중요성과 현실

지난 1998년 4월 18일부터 5월 14일까지 바티칸에서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아시아 특별총회가 개최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9년 11월 6일자로 후속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를 발표했다.

교황은 이 후속 권고를 통해 복음화를 위해 아시아 교회가 어떻게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나갈 것인지 그 지침을 제시했다. 특별히 아시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의 지난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미래 교회를 위한 토착화의 도전을 성찰하고 토착화의 핵심 분야와 과제들을 살펴보았다.

「아시아 교회」는 『아시아의 민족들에게 그들의 문화 형태와 사고 방식에 따라 그리스도의 신비를 소개하는 것이 아시아의 지역 교회들을 위하여 긴급히 요청되고 있다』며 『이러한 신앙의 토착화는 예수님의 아시아적 얼굴을 재발견하며 아시아의 문화들이 예수님 신비와 그분 교회의 보편적인 구원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 것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또 『교회는 토착화를 통해 교회 자신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표지가 되고 선교의 유효한 도구』가 되며 특별히 『그리스도교가 여전히 너무 빈번하게 외래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아시아의 다원 윤리적, 다원 종교적, 다원 문화적 상황에서 그것은 오늘날 특별한 긴급성을 띠고 있다』고 말해 토착화의 절실함을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아시아 교회는 제삼천년기 보편교회의 전망 안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작금 그리스도교계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회가 제삼천년기 보편교회의 중심을 이룰 것이라고 예견하는 이들이 많다. 이같은 기대는 지난 수십년 동안 이른바 제삼세계의 교회들이 보여준 왕성한 신앙의 활력과 성장하는 교세, 다각적이고 다양한 신학적 연구 등에 비추어 볼 때 현실적인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지난 20~30년 동안에 보여준 놀라운 성장과 신앙의 활력으로 인해 아시아 교회는 물론 세계 교회의 복음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교회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교회는 제삼천년기 보편교회의 숙원인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와 관련해서 중차대한 역사적인 소명을 안고 있으며 그것은 곧 아시아 선교의 사명이다. 사진은 아시아 주교 시노드 장면.

한국교회 토착화의 방향 - 선교의 교회

한국교회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직접적인 선교활동 없이 한국인 구도자들이 복음의 진리를 자발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시작됐다. 이들은 서구교회에서 정립된 신앙의 진리를 한국의 전통 문화와 사상에 적응시켜 한국인에게 적합하게 이해된 메시지로 수용함으로써 온전히 진실하고 정통적인 그리스도교인 동시에 완전히 한국적인 그리스도교를 이룩했다. 한국교회 초창기부터 착수된 토착화 작업은 토착화에 대한 오늘날의 이론과 성찰로 볼 때에도 놀라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이러한 독창적인 면모가 서양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거의 동시에 사라지게 됐고 이후 한국교회는 서구 교회의 축소판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됐다. 물론 이후에도,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토착화를 위한 노력들이 간헐적으로 이뤄져 왔으며 근자에 들어서는 상당한 토착화의 성과도 축적됐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교회의 토착화는 미진한 상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다른 아시아 국가의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교회」의 모습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세계교회의 기대는 무엇보다 선교와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고 하겠다. 한국교회는 제삼천년기 보편교회의 숙원인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와 관련해서 중차대한 역사적인 소명을 안고 있으며 그것은 곧 아시아 선교의 사명이다. 한국교회는 앞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적으로 세계의 중심이 될 태평양 지역에 위치하면서 교회 안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예견되는 제3교회에 속해있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 등 그리스도교 교회가 미약한 위치에 있음을 고려할 때 한국교회가 아시아 선교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중국의 복음화, 그리고 아직도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북한의 선교와 관련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교황청은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교회의 특별한 사명을 지적해왔다.

이처럼 한국교회가 아시아 복음화에 있어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생각해 볼 때 한국교회의 토착화는 서방교회가 수행할 수 없는 각별한 토착화의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선교는 이전 서구 중심의 신학이나 신앙, 전례 만으로는 그 성과를 얻는데 있어서 한계를 가지는 바 보편교회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아시아 사회와 문화의 고유한 면모를 고려한 토착화된 언어와 가르침으로 아시아 선교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모든 교회 생활 영역에서 서구 교회가 이루지 못한 토착화의 결실을 바탕으로 아시아 복음화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토착화는 민족과 사회 상황에 비추어 창조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사진은 우리소리 관현악단 연주 장면.

시대 징표에 부합하는 토착화

토착화 작업을 복고적인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던 시기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 단순히 갓 쓰고 미사 하는 식의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서 오늘날 한국과 한국 민족, 사회의 상황에 비추어 창조적으로 추진되는 토착화가 절실하다. 이는 곧 시대의 징표를 파악하고 그에 비추어 자신을 깊이 성찰하며 복음의 메시지를 오늘날 사회와 문화, 사람 안에서 「토착화」시키려는 노력과 다름 아니다.

작금의 세계도 역시 지난 세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과학과 기계기술 문명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물론 그 정도와 변화의 속도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속하게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 사람들은 이러한 과학과 기계기술 문명이 지닌 한계와 문제를 더욱 명확하게 깨달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울러 오늘날의 세계는 한 지역이나 계층에 폐쇄되지 않고 지구촌 전체가 하나의 생활 현장으로 등장했으며 한 지역이나 한 사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긴밀한 연계를 지니게 됐다. 이에 따라 서로 상이한 문화와 문물들이 융합과 갈등을 동시에 빚으며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토착화 과업은 이러한 세계 현실 속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와 문화, 복음적 가르침에 비추어 진리를 분별하고 그것을 고유의 문화와 정신 속에서 구현하고 실천할 수 있는 혜안을 지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원 사회 속에서의 조화와 통합

오늘날의 세계는 종교, 문화, 사회적인 모든 면에서 다원적이다. 우선 종교적인 차원에서만 보아도 한국 사회는 종교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종교들이 공존해있다. 이러한 다종교적 사회 안에서 자칫 그리스도교적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혹은 설득력이 없는 교리 가르침만을 되풀이할 수 있다.

또 한국교회가 서구 교회의 전통적인 논리, 분석적 사고에 치중할 때 동아시아 내지 한국의 정신 세계와 사상에 관련된 종교 및 문화 전통은 단절의 위험을 겪게 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 신앙의 토착화에 있어서, 신앙의 문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데 있어서 논리, 분석적인 접근방법과 동양의 직관, 종합적 파악 방법이 함께 적용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토착화된 신앙의 개발을 위해서는 동아시아 내지 한국의 정신세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진솔한 만남, 그리고 그 정신세계의 풍요한 자산을 신앙 세계 안으로 수용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강조하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교회는 한국의 역사와 현실을 규정하는 모든 요소를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하며 공정하게 평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민족 공동체와 하느님 나라 건설

교회의 토착화가 자칫 과거 지향적이거나 민족주의적 혼합의 성격을 띠어서는 안될 것이다. 토착화 작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민족의 현실이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소외된 현실이라는 점은 전제된다. 모든 이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살아가는, 정의가 구현된 세계에 대한 요청과 갈망은 토착화의 목표이기도 하다. 교회는 이러한 요청과 갈망 안에서 시대적 징표를 읽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문화의 복음화를 성취해나간다. 이러한 이상적인 세계는 바로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이다. 토착화는 이 하느님 나라를 보다 깊고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기여하는 일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다만 로마 교회의 지점이 아니라는, 과도한 로마 중심성에서 벗어나는 자세가 요구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것은 한국 교회의 정체성을 다지는 것이기도 하며 구체적으로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벗어나, 민주적 방식에 따라 교회가 운영되고 평신도들의 정당한 위치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들이 이뤄질 때 한국교회의 그리스도 신앙의 질적인 발전과 성숙이 도모될 수 있을 것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