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세계교회사 100대 사건 -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99) 2000년 대희년 개막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12-07 수정일 2003-12-07 발행일 2003-12-07 제 237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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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일치 향한 새 천년기 열어
교회의 과거 잘못 과감히 용서 청해
사형제 폐지·부채탕감 운동도 전개
1999년 12월 24일 자정,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육중한 청동 「성문」(the Holy Door)을 활짝 열어젖히며 역사적인 2천년 대희년의 문을 열었다. 예수 강생 2000년, 세상의 죄를 보속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2000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천년기의 막을 연 대희년의 개막은 실로 교회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세계 교회의 대희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기 위해 1994년 11월 10일자로 교황교서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를 반포해 대희년의 의미와 중요성을 일러주고 대희년을 위한 영적 준비를 갖출 것을 권고하고 대희년을 맞는 직접적인 준비를 단계별로 권고했다.

대희년을 기념하는 2000년에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다채로운 기념행사들이 마련됐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세계 교회는 한해 동안 희년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와 운동들을 펼쳤다.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용서 청원은 전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왔고 함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면서도 갈라져 있던 다른 그리스도교들과의 일치운동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사형제도 폐지와 극빈국에 대한 부채탕감운동, 그리고 거의 일주일에 두세번씩 지내는 다양한 대희년 관련 행사들은 새 천년기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쇄신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우선 교황은 사순 제1주일인 2000년 3월 12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인류와 하느님 앞에서 과거 2000년 가톨릭 교회의 역사 안에서 교회의 구성원들이 잘못한 일에 대해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다.

교황은 이날 미사에서 교회 분열, 유다인과 타종교인에 대한 박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원주민들에 대한 폭력 등 지난 2000년 동안 교회의 구성원들이 범한 과오들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예식을 거행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용서의 날」을 정하고 공개적으로 교회 구성원들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청한 것은 가톨릭 교회 2000년 역사상 처음인 것으로 보이며 가히 새 천년을 여는 획기적이고 겸허한 자세인 것으로 평가된다.

교황은 이미 지난 94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제삼천년기」에서 교회는 『자기 자녀들이 참회를 통하여 과거의 과오와 불충한 사례들, 항구치 못한 자세와 구태의연한 행동에서부터 자신을 정화하도록 격려하지 않고는 새로운 천년기의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33항)고 천명한 바 있다.

교황은 또 2000년 대희년이야말로 교회가 용서를 청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때임을 여러 차례에 걸쳐 지적한 바 있다. 교황의 고백은 결국 새 천년기로 들어서는 가톨릭 교회가 참된 하느님의 백성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한 바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교황의 용서 청원은 즉각 전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왔고 지역의 주교회의와 교회들에서 과거사 반성이 잇따랐으며 한국교회 역시 그해 12월 초 이에 응답했다.

전세계적인 반생명적 경향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먼저 사형제도 폐지의 촉구로 집중됐다. 교회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확신과 하느님의 창조질서 보존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가장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제도의 하나인 사형제도를 폐지하거나 적어도 대희년 기간 동안만이라도 집행을 유예하자는 운동을 통해 실제로 각국에서 집행될 예정이었던 여러 건의 사형 집행을 연기하도록 했다.

교회 일치에 있어서 대희년의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지난 1천년이 교회의 분열로 얼룩져 있었다면 제삼천년기는 모든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이룩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바탕으로 교황청에서는 1월 18일부터 시작된 일치주간을 맞아 전세계 23개 교파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를 바쳤다. 연중 거의 매주 두세건씩 치러진 각종 국제적인 대희년 행사들은 각 지역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치러지면서 지역에 맞는 다양한 사목적 대응 방안들이 모색됐고 교회 구성원 모든 계층의 문제들이 토론되고 고민됐다.

1999년 12월 24일 자정,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육중한 청동 「성문」(the Holy Door)을 활짝 열어젖히며 역사적인 2천년 대희년의 문을 열었다.

한국 교회의 대희년

대희년의 바람은 한국교회에도 불었다. 1998년 유례없는 국가적 위기를 겪은 한국교회는 이러한 행사들을 통해 나름대로 이전의 구태를 벗고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쇄신하고 새 시대에 걸맞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새날 새삶」 운동을 전개했다. 대희년의 정신을 삶 속에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된 이 운동은 1998년 10월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대희년 실천운동으로 선포됐다.

대희년 기간 중에는 크게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6월25일 춘천교구), 「전국 청소년 축제」(7월 25~27일 대구대교구), 「전국 생명 환경 신앙대회」(9월 24일 안동교구), 「전국 가정대회」(10월 14~15일 청주교구) 등 모두 4개의 전국 규모 행사가 열렸고 그 외에 「전국 평신도대회」(10월 26일~11월 5일)가 있었다. 아울러 대림 제1주일인 12월 3일에는 역사적인 과거사 반성 문건 「쇄신과 화해」를 발표하고 각 교구 주교좌 성당에서 참회 예식을 통해 역사와 민족 앞에 교회 구성원들이 소홀했던 점과 잘못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