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인권주일 특집] 사형제 폐지 운동 현황과 과제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3-12-07 수정일 2003-12-07 발행일 2003-12-07 제 2376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소수의 관심사’…폭넓은 참여 필요
대정부 설득.강연.문화행사 등 활동 다양화
공감대 확산…‘보복의 악순환’고리 끊어야
사형제도는 수천년에 걸친 그리스도인들의 여정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로, 가장 완고하게 버티고선 장애물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은 사형제도 폐지를 촉구하기 위해 펼쳐진 다양한 행사들.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운 지상의 교회를 통해 하느님나라를 향한 이정표를 늘 새롭게 해왔다.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의 성전과 함께 항상 민감하게 시대의 징표를 바라보며 마음의 성전을 지어가야 할 소명도 부여받아 왔다. 이같은 소명을 통해 하느님나라의 영역을 넓혀온 그리스도인들의 여정이 곧 교회의 역사가 되고 인류 구원을 향한 발걸음이 되어왔다.

사형제도는 수천년에 걸친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여정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로, 가장 완고하게 버티고선 장애물이라 할 수 있다. 더욱 크고 본질적인 문제는 하느님께서 지은 질서에 대한 인간의 무지로 인해 사형제도가 수 천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지탱해오고 있으며, 이런 현실에는 신자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잘못된 인식

아직도 많은 이들 사이에는 사형제도가 범죄를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있다. 사형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거나 억제한다는 이런 주장은 사형제도의 존속을 찬성하는 가장 광범위한 이유가 되어왔다.

그러나 현실의 통계자료와 각종 연구 결과는 이같은 논거를 뒤엎고 있다.

국민대 이재승 교수(법학과) 는 『많은 범죄가 충동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범행시 대부분이 사형의 두려움보다는 도피 등의 방법으로 범죄 행위를 감추려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형제도가 아무런 효과를 가질 수 없다』고 밝힌다.

오히려 1989년 국제 엠네스티는 보고서에서 『사형제도가 범죄 억제 효과를 가진다는 어떠한 명백한 증거도 없음이 여러 연구 결과에서 드러났으며, 아울러 그러한 모든 연구들에 내재해 있는 방법적 어려움들에서 보듯이, 사형제도를 공공정책화하기 위한 토대로써 범죄 억제 가설에 의존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엔은 지난 1988년과 2002년에 실시한 「사형제도와 살인율의 상관 관계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형제도가 무기징역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고 선언하고 『사형제도가 종신형과 같이 그 위협도가 떨어진다고 간주되는 다른 형벌에 비해 보다 큰 살인 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자세』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사형제도를 폐지했을 때 범죄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살인에 대한 사형을 폐지하기 직전인 1975년을 기점으로 인구 10만명당 살인율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1975년 당시 3.09명이던 것이 1980년에는 2.41명, 그리고 사형을 폐지한지 25년이 지난 2001년에는 1.78명으로 줄어들어, 1975년에 비해 42%나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폐지위한 우리 사회 발걸음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우리 사회의 행보는 수십년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그간 사형폐지운동이 소수 지식인 계층이나 인권운동가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해있던 사형폐지운동은 2000년 대희년을 계기로 범종교적인 운동으로 확산됨으로써 범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하나의 뚜렷한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를 전후해 가톨릭교회를 필두로 한 종교계는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연합」을 구성해 사형폐지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찾는가 하면 시민사회단체들과 사형제도 폐지를 지지하는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활성화돼 우리 사회의 생명수호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지평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과거의 성명서 발표 수준에 머물던 사형폐지운동이 순회 강연, 연극제, 음악회 등 각종 문화행사와 각 종단 원로의 사형수 방문, 국회 및 행정부를 대상으로 한 다각적인 활동 등으로 다양화되고 확산됨으로써 「생명문화의 건설」이 종교인뿐 아니라 의식있는 이들의 주요 의제로 자리잡아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형제 폐지 추세

국제 앰네스티에 따르면 2003년 4월 현재 모든 범죄에 대해 완전히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는 76개국에 이른다. 또 전쟁범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에 대해 폐지한 15개국과 과거 10년간 단 한건의 사형집행이 없었고 법률상으로는 사형이 존치하지만 정책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사실상 폐지한 나라」도 21개국에 이르러 사형 폐지국은 총 112개국에 달한다.

지난 10년간 매년 평균 3개국이 사형을 폐지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사형이 존치하고 있는 83개국에서도 사형제도가 사라질 날은 시간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사형제를 종신제로

사형제도 폐지는 생명을 수호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소명을 부여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일치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생명의 권리는 최우선적이며 근본적인 권리로서 다른 모든 인권의 필수 조건이다…인간은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발전의 모든 순간에서 그리고 건강하든 병들었든 성하든 불구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든 상황에서 생명권의 주체』(평신도 그리스도인 38항)라고 강조한 바 있다.

현대사회에서 인류는 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과 다양한 방법을 갖추고 있다. 이는 곧 사형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보유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 사회의 미성숙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 등 다양하고 발달된 교정수단과 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과거에 얽매여 대체형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다면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땅 속에다 묻어두고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무지한 종이나 다름없다.

신자들부터 사형제도가 비그리스도교적이며 비인도적인 방법이라는 인식을 명확히 하고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범에 따라 죽음과 보복의 문화를 생명과 상생의 문화로 바꾸어 나가는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 일본 ‘사형폐지’ 시민대회 다녀온 이영우 신부 인터뷰

“일상적 운동으로 정착… 여론 환기위한 노력 풍성”

이영우 신부
『일상의 삶에서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내어 주는 주님의 사랑이 뿌리내릴 때 생명문화가 넘치는 세상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입니다』

11월 24일 일본 동경 치요다구 구민회관에서 열린 「사형폐지를 기원하는 시민대회」에 한국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대표로 참석하고 돌아온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는 신자들의 일상에 뿌리내린 풀뿌리 사형폐지운동을 역설했다.

한국을 비롯한 일본 대만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대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용서와 화해를 이끌어내고 있는 선진교회와 사회의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밝힌 이신부는 이 대회를 통해 아시아지역 사형폐지운동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사형이 확정되는 순간 사형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소수자요 소외된 이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고 강조한 이신부는 『약자의 생명권을 존중하고 함께 지켜 나가는 일을 자신의 몫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사회의 생명력과 건강함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신부는 이를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일이 사형폐지운동을 비롯한 생명운동이 시민들 사이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일이라고 꼽았다.

『시민운동으로 굳건히 뿌리를 내린 일본의 사형폐지운동의 힘이 바로 오늘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일본사회를 비추는 희망의 빛이 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의 지도층 등 일부가 중심이 돼 이뤄지고 있는 한국사회 사형폐지운동의 현실을 돌아보며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는 이신부는 소외된 이들 가운데로 더욱 깊이 들어가는 운동을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교정 여건이 우리보다 낫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낮에는 직장일을 하고, 밤에는 자신들이 손수 비용을 부담해가며 토론과 사회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는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적인 운동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사형제도를 둘러싼 의식과 실천이 괴리되고 있는 현실을 새롭게 돌아보게 됐다는 이신부는 무엇보다 신자들이 생활 속에서 동참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는 일에 교회의 관심과 투자가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형수를 사회의 피해자로 받아들이고 회개의 길로 이끌어야 할 형제로 보듬어 안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이신부는 『사형제도 폐지운동이 오늘을 살아가는 신자들의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