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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토착화를 향해] (19) 아시아 각국의 토착화 현황 (4) 일본 교회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11-30 수정일 2003-11-30 발행일 2003-11-30 제 2375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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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체가 하나의 종교’ 선교 어려움 커
그리스도교 수용 힘든 사고방식.문화 구조
 교세신장.복음전파 위한 토착화 노력 가속
당면 과제

일본 가톨릭교회의 역사는 1549년 8월 15일 규슈의 가고시마에 상륙한 예수회 소속 선교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이후 2년 3개월에 걸쳐 히라도, 분고, 교토와 야마구치 등지에서 활동하며 약 700여명의 일본인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을 심어주고 중국 선교를 위해 일본을 떠났다.

일본 교회는 1587년 기리시탄 금지령이 선포될 때 신자수 20만명에 선교사가 일본인 수사를 합해 113명, 200여개의 교회를 가질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금교령으로 박해를 받기 시작한 일본 교회는 오랜 동안의 박해와 지하교회의 역사를 거치면서 신자들을 잃었다. 그리고 1865년 이른바 「안세이 5개국 조약」의 체결과 개항장에서 거류 외국인들의 그리스도교 신앙 활동이 인정된 후 비로소 박해의 시기를 마무리하고 근현대 교회로 나서게 된다.

교황청이 일본 대목구를 설정하고 그 사목 책임을 파리외방전교회에 맡긴 것이 일본의 개항전인 1846년이다. 그로부터 30년 후 일본대목구는 북일본과 남일본대목구로 분리됐고 1888년 남일본 대목구는 다시 중부와 남부 대목구로 분리됐고 그 다음 해에 헌법상의 신앙 자유 규정에 따라 공인된 교회가 됐다.

1891년 일본에 교계제도가 설정돼 한 개의 대교구와 3개의 교구로 분할됐는데 1904년 이후 지목구가 계속 생기면서 새로운 전교회들이 일본에 진출해 선교활동을 계속해나갔다. 그리고 일본의 정치적 성장과 일본 교회의 발전이 일정 궤도에 들어섬에 따라 교황청은 1919년 교황사절을 일본에 상주시키는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발전과는 달리 일본 교회의 선교는 미미했다. 1880년 일본에는 2만3000여명의 신자가 있었으나 다섯 교구가 생겨난 1905년에는 5만8000여명, 쇼와 천왕이 즉위하는 1926년에는 6만7000여명에 불과했다. 결국 약 45년 동안 4만5000여명의 신자가 늘어났을 뿐이다.

미미한 교세

이후 신자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태평양 전쟁 후였다. 앞서 1936년 9만6000여명의 신자가 1940년에 11만9000여명으로 증가했고 전쟁 때 교세가 위축돼 1946년 10만8000여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 이후 그리스도교는 천황 절대주의 체제, 군부의 전횡과 신도의 횡포에서 해방되고 언론, 종교, 사상의 자유를 다지려는 점령군의 정책과 자유 민주의 압력으로 1947년 제정된 일본 신헌법에는 완전한 신앙의 자유가 규정됐다.

전후 매우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어렵던 그 시기에 세례 받는 사람들의 수는 기적적으로 증가했다. 예컨대 1952년에는 새로 세례 받은 성인의 수가 1만2178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후 매년 그 수는 감소하기 시작했고 1959년 1만명 이하로 떨어져 9980명이 됐고 이러한 하향세는 1970년대까지 이어져 4000명에 이르렀다. 그 때부터 현재까지 유아 세례자를 포함해 전체 가톨릭 인구는 약 43만명 전후에 머물러 있다.

일본 교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문화의 다양성을 받아들여 선교를 활성화하려고 하던 1960년대 후반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가톨릭과 개신교 양측에서 두 명의 신자가 토착화의 불가능성, 선교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들은 선교를 반대한다기보다는 일본 사람들의 정서와 그들의 문화적인 구조가 서양식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주장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은 실제로 일본 교회의 역사와 미미한 교세 성장 등을 통해 볼 때 적지 않은 시사점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로마보다 더 로마적

일본의 크고 작은 종교 교단들 가운데에서 소수를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교회는 일본의 교회가 되기에는 여전히 길이 멀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로마교회보다도 더 로마적』이라는 비판의 말은 일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50년대에 일본 교회는 「문화적 적응」(cultural adaptation)의 시대적인 요청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진행되던 당시 「토착화」라는 용어가 일종의 문화적 적응을 지칭하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아시아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1960년대 후반에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문화적 적응은 단지 겉모습의 변화만을 지칭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었다. 복음은 참으로 그 지역의 문화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동안 「이식」(impla ntation)이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즉 동양의 땅 위에 서양식 건물을 짓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땅을 파고 그 지역의 토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타난 것이 그리스도교의 「일본화」(Japanizing)라는 용어이다. 이는 그리스도교가 일본의 흙냄새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노우에 요지가 집필한 「일본과 예수의 얼굴」은 이러한 사고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작품이다.

한편으로 「일본화」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오늘날 사람들은 먼저 「일본」이 과연 어떤 모습인지를 규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예컨대 헤이안 시대나 나라, 가마쿠라 시대의 불교는 현대 일본인들에게 멀어져 있으며 따라서 고전적인 의미에서 일본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 이래로 근대화의 길을 걸어온 일본은 따라서 고유 문화 안에서 이루는 현대화가 필요하며 결국 「내일을 위한 교회」를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지 특별히 「일본적 교회」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주교들은 지난 1998년 개최된 세계 주교대의원회의 아시아 특별총회에서 교회가 지나치게 서구 지향적이어서 아시아 교회의 발전이 더디다고 비판했다.

그리스도교 개종의 어려움

일본이 메이지 시대에 문호를 개방한 이후 서양문화와 접촉하고 있지만 오랜 전통을 지닌 유교와 불교의 동양 문화로 형성된 일본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쿠다카와 류노수케나 엔도 슈사쿠 등의 일본 작가들은 이러한 주제를 다루고 일본의 그리스도교 개종의 어려움에 대해 강조했다.

엔도 슈사쿠는 「침묵」에서 일본을 일러 『이 나라는 늪지대요. 어떤 묘목도 그 늪지대에 심으면 뿌리가 썩기 시작하오. 우리들은 이 늪지대에 그리스도라는 묘목을 심었소』라며 일본인의 그리스도교 개종의 불가능을 말한다.

그후 5년 후인 1970년에 나온 「일본인과 유다인」은 비교 문화 연구에 바탕을 두고 일본 자체가 하나의 종교라고 주장하면서 일본 사람들은 「일본」이라고 불리우는 종교에 젖어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일본이라는 종교의 신도를 개종시키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일본에서 그리스도교의 토착화 문제는 대단히 지난한 문제이며 일본인들이 지닌 정서와 사고방식, 문화적 구조가 서양식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는데 큰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만큼 토착화, 문화적 강생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며 일본 교회의 최대의 과제라는 것이다.

아시아인과의 만남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2001년 3월 교황청 정기방문을 한 일본 주교들에게, 물질적 풍요와 소비 중심적인 풍조가 만연함에 따라 영성적인 불안이 증가하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교회는 긍정적인 대답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이 문제들의 해결을 통해 『교회의 전체적인 신비적이고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전통과 조화를 이루며 예수님께서 아시아인과 만날 수 있도록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주교들의 사목활동의 목적은 신앙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의 믿음과 신뢰를 증가시키는 것임을 기억하라고 요청했다.

한편 이에 앞서 일본 주교들은 1998년 개최된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시노드) 아시아 특별총회에 참석해, 교회가 지나치게 서구 지향적이기에 아시아 교회의 발전이 더디다고 비판했다.

좀처럼 교세 신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일본은 그러나 여러 가지 사회 사업 활동들을 통해서 일본 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아울러 선교가 어려운 사회, 문화적 상황 안에서도 나름대로의 토착화 노력을 통해 신학과 교회 생활, 복음을 일본 땅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