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세계교회사 100대 사건 -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97)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11-23 수정일 2003-11-23 발행일 2003-11-23 제 237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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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C 냉전 녹인 평화의 사도
131개국 찾아 용서 화해 사랑 촉구
고르바초프 만나 ‘냉전 청산’ 길 터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양대 전쟁으로 얼룩졌다. 그 중 하나인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져 대량 살상 무기를 서로에게 겨눈 채 지구촌 곳곳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가운데 군비경쟁에 열을 올렸다.

이른바 냉전(Cold War)의 시대였다. 냉전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평론가 W. 리프먼이 저술한 「냉전」(The Cold War, 1947)이라는 논문에서 비롯됐고 미국의 재정 전문가이며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버나드 바루크가 의회토론에서 처음 이 용어를 사용했다.

한반도의 분단을 포함해 인류를 양분했던 비극적인 대립 체제로서의 냉전은 이후 상대 진영을 초토화할 수 있는 핵무기 개발 경쟁, 그리고 자칫 지금까지의 전쟁과는 양상이 다른 핵 전쟁의 위기까지 감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동서 냉전은 동유럽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의 붕괴와 구 소련의 몰락이 대결과 분열의 시대를 끝냄으로써 종말을 고하게 됐다.

비 이탈리아계 교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처럼 동서가 서로 갈려 서로를 노려보던 시기에 교황으로 선출됐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5년 전인 1978년 10월 16일, 시스틴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서거한 뒤 세계는 그 뒤를 이을 교황을 열렬히 기다려왔기에 전통적으로 새로운 교황의 탄생을 알리는 흰색 연기를 본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이어 커다란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제264대 교황으로 선출된 카롤 보이티야, 그는 이탈리아 출신이 아니었다. 더욱이 공산국가 폴란드 출신으로 크라코프 대교구를 맡고 있던 추기경이었다.

1523년 네덜란드 출신의 하드리아노 6세 교황 이래 무려 455년만에 탄생한 비 이탈리아계 교황, 그것도 공산국가 출신의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데 대해 사람들은 다시금 하느님의 섭리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잠시 후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새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는 찬미 받으소서』라고 외쳤다. 잠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이윽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102차례 해외순례

서로 분열돼 증오와 미움의 고리에 얽혀 있던 세상은 이제 새 교황의 탄생을 통해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새삼 감탄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와 희망은 「평화의 사도」로서 세상을 순례하며 용서와 화해, 사랑을 구현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발걸음으로 현실화된다.

교황은 즉위 이듬해인 1979년부터 본격적인 해외 순방에 나선다. 그해 1월 중남미의 멕시코와 도미니코 공화국 방문을 시작으로 올해 9월 슬로바키아 방문에 이르기까지 25년 동안 무려 102회에 걸쳐 131개국을 방문했다.

교황의 해외 순방은 대개 사목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은 그 지역의 모든 갈등과 분쟁을 완화하고 사람들의 가슴에 숨겨진 평화에 대한 열망을 바탕으로 화해와 용서를 이끌어내곤 했다.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났던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평화를 호소했고 1991년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면서 인종학살이 자행되자 이를 비난하고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1999년 코소보 전쟁 때에는 유고에 특사를 파견했고 지난 봄 이라크 전쟁때에도 비극적인 전쟁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도 교황은 1989년 12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역사적인 만남을 통해 냉전의 시대를 청산하는 초석을 놓았다. 이어 1990년 4월에는 또 다른 공산국가인 체코슬로바키아를 방문했다. 1998년에는 쿠바를 방문해 닫힌 문을 세계로 열어 젖혔다.

그에 앞서 1997년에는 4월과 5월에 레바논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을 잇달아 방문했고 대희년에는 성지를 방문해 중동 평화의 회복을 위한 또 다른 전기를 마련했다.

중국·러시아 방문 염원

교황은 이처럼 평화를 위한 세계 순방 중에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1981년 5월 저격범의 흉탄에 쓰러졌고 1992년에는 담석 제거 수술, 1994년에는 숙소에서 넘어져 순방 일정을 연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제 교황은 고령에 파킨슨병과 관절염 등으로 고통을 겪는 등 육체적으로 쇠약한 모습을 숨길 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교황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여전히 초인적인 의지로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평화의 메시지와 복음을 전해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간절히 방문하기를 원하는 곳이 두 곳 있다. 하나는 중국이다. 중국 순방은 교황의 가장 열렬한 희망이다. 제삼천년기 세계 교회의 중심은 아시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아시아 복음화에 가장 큰 과제이다.

중국과 함께 러시아 방문은 교황의 또 다른 염원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전의 여러 대통령들이 교황의 방문을 요청했지만 정교회와의 관계가 큰 걸림돌이 되어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황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지만 정작 교황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5년간 102차례 131개국을 순례하며 용서와 화해, 사랑과 평화를 촉구해왔다. 사진은 1984년 한국을 찾은 교황이 사제서품식을 주례하고 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