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세계교회사 100대 사건 -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95) 메데인 문헌(Medellin Documets)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11-09 수정일 2003-11-09 발행일 2003-11-09 제 2372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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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개선위해 정치참여를”
라틴아메리카 사회개혁 지침 제시
해방신학과 기초공동체 출범 촉진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영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 현실적인 문제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복음을 가난한 사람들과 만나 그들에게 전해주었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몸소 보여주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 경제적 현실 속에서 나온 메데인 문헌은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 교회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혁신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메데인 회의가 적어도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보다도 더욱 뜻깊은 성과를 남겼다고 평가한다.

라틴아메리카 주교총회

메데인 문헌(Medellin Documents)은 1968년 8월 24일부터 9월 6일까지 콜롬비아의 보고타와 메데인에서 개최된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의 결과를 담은 문서를 말한다.

1955년 창설된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는 10년마다 총회를 개최하는데, 특히 1966년 초 본격적인 회합들을 추진하면서 당시로서는 놀라운 문헌들을 발표했다. 메데인 회의를 준비하는 분과 위원회도 이때 설치됐다.

메데인 문헌은 1968년 개최된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 결과 문서를 말한다. 사진은 1992년 도미니카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주교 모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주교들은 「침묵의 교회」로 불릴 만큼 발언에 소극적이었다. 의제들이 라틴 아메리카가 처해 있는 상황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교들은 공의회가 제시한 「세상 안의 교회」와 「교회의 쇄신」이라는 관점을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경제, 사회 현실에 맞게 적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메데인 회의가 시작되자 이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적용하는 정도를 넘어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적 현실에서 출발해 공의회 가르침을 해석하고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에 비추어 공의회를 바라봄으로써 놀라운 진전을 이뤘다.

이는 공의회가 폐막되고 메데인 회의가 시작될 때까지 3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경험에 따른 것이다. 즉 이 시기는 해방 신학이 태동한 시기였다.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의 개념은 이제 종교적, 신학적, 영성적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메데인 회의는 준비 과정과 회의에서부터 문헌 작성에 이르기까지 성직자와 주교들 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와 대표들이 폭넓게 참여했다. 회의 결과를 담은 문헌은, 보수적인 콜롬비아 주교단이 채택을 거부할 정도로 충격적이고 진보적이었다.

전부 16개의 장으로 나눠진 메데인 문헌 중에서 「정의」를 다룬 제1장은 불의한 사회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양심의 의무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 참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교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을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는 불의』라고 규정했다.

「불의한 구조」를 지닌 라틴 아메리카 사회의 상황을 성찰하면서 「노예 상태에서 만민을 해방시키는 하느님」을 고백하고 따라서 진정한 해방을 얻기 위한 인간의 회개는 구조의 변혁을 요구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통해 세상 안에서 정의를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러한 성찰에 바탕을 두고 라틴 아메리카 사회의 개혁을 위한 지침들이 제시된다. 특히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체제와 마르크스주의적 체제 모두를 지양한 「제3의 길」을 모색한다.

메데인 문헌은 인간이 처한 현실 상황에 입각해 복음과 인간 구원의 총체적 발전을 바라본다. 인간 구원과 진보는 깊이 연결돼 있으며 교회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세상을 변혁하는 일에 투신해야 한다는 것을 증언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헌은 또 라틴 아메리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종속」으로 평가하고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활동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해방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기에 종속을 거부한 인간의 발전을 「해방」으로 부른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능동적으로 진보를 성취하는 복음적인 사명을 갖고 있으며 해방을 향한 투신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문헌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주제는 가난과 폭력의 문제이다. 문헌은 이전까지 교회의 가르침에서 비교적 모호했던 가난의 개념을 분석하고, 교회는 재화가 결여된 이 세상의 불의를 단죄하고 주님께 자기 자신을 개방하는 태도로 영적 가난을 설교하며, 교회 스스로 물질적 가난 속으로 뛰어든다고 말한다.

문헌은 폭력과 관련해 「제도화된 폭력」 또는 「구조적 불의」를 지적하며 이러한 폭력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의 「정당한 반란」을 인정한다. 폭력적 혁명은 불의에 대한 부적절한 해결책이지만 예외적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서술은 오늘날 가톨릭 사회교서의 맥락과 일치한다.

공의회가 선진국들에서 출발했다면 메데인 회의는 가난한 나라 자신들에서부터 시작해 문제를 보았으며, 메데인 회의가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공의회보다 더욱 특별한 성과를 남겼다. 공의회가 교회 쇄신을 위한 노선을 제시했다면 메데인 회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교회가 올바르게 현존하기 위해서 교회가 쇄신돼야 할 규범들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메데인 회의는 해방이라는 말을 인간화와 연결시키며 복음화의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고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해방의 실천에 교회의 권위를 실어주었다. 무엇보다 메데인 문헌은 이미 싹트고 있던 해방신학을 정식으로 출범시키고 기초 공동체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