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세계교회사 100대 사건 -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94) 한국교회 103위 성인 시성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11-02 수정일 2003-11-02 발행일 2003-11-02 제 2371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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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한국교회’ 자리매김
유래없는 대규모에 현지서 거행
교회의 중심이동 예시해준 사건
『이날은 200년의 역사에 단 한 분의 성인도 모시지 못한 초라한 교회가 전세계 가톨릭 교회 사상 최초로 한꺼번에 103위 성인을 모시게 된 풍성한 교회로, 복자들의 후손이 성인들의 후손으로 그리고 한국 속의 교회가 세계 속의 교회로 격상되고 새롭게 태어난 영광과 축복의 날이었다』(가톨릭신문 1984년 5월 13일자).

한국교회 최대 경사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00여만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한국의 순교 복자 103위에 대한 시성식을 거행했다.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대회」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성인 시성식은 아시아의 한 변방에 위치한, 숱한 순교의 피를 자양분으로 200년 교회 역사의 텃밭을 일군 조선 교회, 그리고 현대사의 고난과 역경을 분단의 현실 속에서 상징적으로 품고 있는 한국 교회의 최대 경사였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날로 쇠퇴해가는 서구 교회로부터 보편교회의 중심이 아시아를 포함한 제3세계의 교회로 옮아가고 있음을 미리 보여준 세계 교회사의 사건이기도 했다.

103위 성인이 탄생한 당시 한국 사회는 79년 박정희 대통령의 피살, 12·12 사태에 이어 광주의 비극으로 시작된 80년대의 암울한 독재의 시대를 거슬러 가던 시절이었다. 70년대 사회 정의 실현에 눈뜨고 민족과 사회를 위한 봉사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던 한국교회는 80년 광주를 겪으면서 민주화 투쟁의 시대적 징표를 읽기 시작했다.

82년 미 문화원 방화사건을 기화로 교회와 정부가 긴장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됐고, 80년대 중반 이후 교회와 정부의 갈등이 본격화됐으며, 87년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의 폭로로 범국민적 항쟁이 불붙어 6·29 선언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예언자로서의 사명에 충실했다.

민주화를 향한 그러한 일련의 정치사회적 흐름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고 실천했던 한국교회는 그 와중에 대규모의 행사들을 속속 개최함으로써 성장과 성숙의 모습을 교회 안팎에 드러냈다.

81년 10월 18일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에는 80만명의 신자들이 참석했고 이어 「이 땅에 빛을」이라는 주제로 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아 이뤄진 일련의 사업들은 한국 교회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뤘다.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방한, 유례 없는 규모에 바티칸에서 이뤄지던 시성식 관례를 깨고 현지에서 거행된 103위 성인 시성식은 한국 가톨릭 교회가 대규모 종교 집회로 내외에 저력을 과시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한국교회는 또 교황이 함께 자리한 가운데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회의를 열고 4년 동안 준비해온 12개 의안을 확정했다.

200주년에 이어 1989년 10월에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제44차 세계성체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교황의 두 번째 방한이 이뤄진 서울 성체대회를 통해 한국교회는 명실공히 자신의 성장한 모습을 세계 교회에 드러냈다.

세계교회의 구성원으로서 한국교회의 면모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80년대 들어서 해외선교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대규모 종교 집회를 통해 다져진 자부심과 긍지, 대사회적 지명도는 폭발적인 신자 증가율로 이어졌다. 연평균 7.54%를 기록한 80년대 신자 증가율은 휴전 이후 50년대의 폭발적인 교세 증가에 비견되는 높은 성장률이었다.

한편 103위 시성으로 한국교회에 성인이 탄생한 것은 한국교회와 신자들의 순교 신심에 결정적인 토대를 놓았다. 한국교회는 태생부터가 순교자의 교회였다.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그렇게 혹독한 박해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른 한국교회의 잠재력과 저력은 바로 순교 정신이었다. 따라서 한국교회 영성의 기본적인 토양은 순교의 영성일 수밖에 없다.

이후 한국교회는 순교자의 삶과 정신, 믿음을 본받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해왔다. 아울러 한국교회는 103위 시성이 이뤄진 직후부터 제2의 시복시성 운동을 추진해 이제 그 성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의 순교 복자 103위에 대한 시성식을 거행했다.

세계 복음화의 주역

103위 시성으로 세계 교회 안에 자신의 모습을 알린 한국 교회는 이제 새 천년기를 맞아 보편교회 안에서 자신감 넘치게 자신의 소명과 역할을 이해하고 수행하기 시작했다. 제삼천년기 보편교회의 기대와 전망은 아시아 교회로 쏠리고 있다. 유럽 교회는 이제 활기를 잃고 신자 수마저 줄어들고 있다.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교회들은 넘치는 활력과 풍성한 성소자수, 높은 신자 증가율 등으로 세계교회의 기대를 안고 있다. 특히 심오한 정신 문화의 요람인 아시아 대륙의 교회는 세계 복음화의 여정에서 그 중차대한 몫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 교회는 아시아에서도 신앙적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더욱이 순교 정신으로 무장하고 단순하지만 뜨거운 신앙의 열기를 간직한 한국교회는 가히 제삼천년기 세계 복음화의 주역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한편 103위 성인 탄생의 환회와 열정이 한국 교회 안에서 퇴색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우려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과연 한국교회의 신자들이 103위 성인을 비롯한 한국 순교자들의 숭고한 정신과 굳건한 신앙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삶 속에서 실천하며 모든 교회 생활과 신앙 생활의 바탕으로 뿌리를 내리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