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교회 토착화를 향해] (16) 아시아 각국의 토착화 현황 (1) 인도 교회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10-26 수정일 2003-10-26 발행일 2003-10-26 제 237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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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 우선’ 교회 모습 구현에 총력
신비적 수도 모델 아슈람통해 비그리스도교 영성 요소 유입
건전한 요가 신학 정립도 과제
위대한 종교와 문화의 요람인 아시아 지역의 교회에 있어서 토착화의 노력은 선교 뿐만 아니라 참된 「아시아 교회」가 되기 위한 여정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아시아 교회의 토착화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고 적지 않은 나라의 교회에서 토착화의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 아시아 각국 교회들의 토착화 과정과 현황, 그리고 과제를 살펴보는 일은 한국교회의 토착화 노력에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비서구 지역교회들의 토착화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의해 공식적으로 준비됐다. 이후 비서구 지역 교회들은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교회 생활과 신학을 그들 자신의 역사적이고 문화적 상황 안으로 뿌리내리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비서구 지역 교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비서구 세계의 사회정치적이고 종교문화적인 맥락에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는가는 지난한 과제로 탐구돼 왔다.

한국교회가 속해 있는 아시아는 고대의 찬란한 문화와 위대한 종교들의 요람이다. 아시아가 지닌 유산을 보전하고 복음화의 토양으로 삼는 일은 아시아 교회들의 중요한 과업이며 아울러 이는 아시아 교회 토착화의 중요성과 정당성을 의미한다.

지난 1998년 4월 19일부터 5월 14일까지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아시아 특별총회는 아시아 교회의 더 깊은 토착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아시아 주교들은 세 가지 통찰에 대해 언급했다. 즉 교회가 가난한 자들의 대변자가 되어야 하고 다른 종교들과의 대화가 효과적인 복음화의 도정이며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들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삼중적 대화」의 중요성은 아시아 교회 토착화와 복음화에 있어서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강조됐다. 인도 교회의 토착화 과정은 이러한 삼중적 대화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인도의 현실

인도는 중국 다음으로 거대한 인구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종족 사회로 구성돼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종교의 나라로서 수많은 부족 종교를 제외하고도 세계 대종교들의 발상지이다. 힌두교가 전체 인구의 80%가 넘고 그리스도교는 불과 2%를 조금 넘는다. 그런 가운데 절대 빈곤에 처해 있는 사람이 인구의 절반을 넘는다.

이처럼 매우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전통의 집합체인 인도는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고난과 위기를 지나왔다. 그러면서도 5천년의 긴 역사와 기구한 운명을 넘어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유지돼온 인도의 내적 힘은 바로 「관용」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에서 가난은 토착화를 논할 때 가장 진지하게 고려돼야 할 요소이다. 토착화가 인도인들의 고통의 경험, 그리고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복음의 실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토착화는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인도 교회가 진정한 인도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에서 토착화가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 뉴델리 대교구장 앨런 데 라스틱 대주교가 지난 1999년 12월 30일 뉴델리에서 열린 기도 모임에서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를 바치고 있다. 인도 교회의 토착화는 인도인 고유의 종교 세계의 신앙과 상징에 의해 영감을 받고 표현되지 않고는 성취도리 수 없다.
캘커타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빵을 달라며 손을 내밀고 있다.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절대 빈곤의 처지에 있는 인도 교회의 토착화는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인도 교회의 토착화 역사

성 토마스에 의해 52년경에 그리스도교가 전해진 인도는 인도 특유의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종교간 화합과 서로간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 안에서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4세기경 페르시아(현재의 이란과 이라크)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주해옴으로써 인도 교회는 시리아 교회로 변화됐고 인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인도의 민족적 문화적 전통에서 멀어지게 됐다.

16세기 포르투갈의 군사적 정복과 함께 선교사들이 인도교회를 서구화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인들은 인도가 포르투갈 교회가 될 것을 강조했고 이 지역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관습의 「정화」를 요구했으며 이때 형성된 경향은 아직도 교회 안에 보편화돼 있다.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인도 교회는 전례 토착화 작업에 착수했다. 60년대에 전례의 자국어 번역이 이뤄졌고 전국 전례회의가 제시한 12개의 전례 토착화안이 통과됐다. 일부에서는 이 안에 대해 그리스도교를 힌두교로 만든다는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후 전례위원회를 중심으로 다각적인 전례 토착화 노력이 이어졌는데, 위원회는 69년에 준성사, 축일, 미사에 대한 세 가지 안을 제시했고 72년 주교회의 총회에서는 인도인의 성찬 기도를 실험적으로 사용하도록 승인함으로써 세 가지 전례문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 이어진 이같은 노력은 유감스럽게도 75년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금지령으로 중단됐다. 그에 따라 오늘날 인도 교회의 토착화 노력은 활기를 잃었고 전례는 대개 라틴 또는 시리아식 전례가 됐다.

토착화와 영성

인도의 신비주의적 수도생활 모델인 아슈람(Ashram)을 통해 비그리스도교 영성의 요소가 그리스도교 안으로 들어왔다. 가톨릭 아슈람은 힌두교와 그리스도교의 명상과 예배 방식 통합, 인도인의 영성, 토속적 신학교육, 종교간 대화, 예술의 토착화, 사회정의 구현 등 토착화를 주요 관심사로 하고 있다.

인도의 전통적 수련법인 요가는 영성훈련으로 그리스도교 안에서 토착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인 요가는 힌두 요가를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요가 훈련을 통해 몸과 정신을 절제하고 명상에 이르기 위한 것으로 여러 수도자 양성 수련소에서 영성 기초 훈련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신학적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내재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영성 훈련의 방법으로서 건전한 요가 신학을 정립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춤은 인도에서 종교적 기원을 갖고 있어 인도 교회는 춤을 복음 주제들과 가치들의 토착화에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리스도교의 주제들이 지역 주민들의 춤을 통해 소개됐고 그 전통 춤은 그들이 받아들인 새로운 신앙을 표현하고 경험하는 수단이자 매개이다. 춤은 복음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큰 힘을 갖고 있다.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사람이 되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삶으로써 「가난한 자의 희망」인 예수님의 복음을 인도인의 영혼과 의식 안에 「토착화」했다. 이에 따라 마더 데레사는 카슽, 신앙, 계급, 그리고 심지어는 공산주의자들까지도 끌어안은 인도인의「 어머니」가 됐다.

예술의 토착화

예술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은 17세기 이전부터 꾸준하게 이어져왔으나, 16세기 서방 세계의 선교가 왕성해지면서 서구적 개념의 종교 예술과 건축 양식이 지배적이 됐다.

미술 부문에서 그리스도교가 미친 영향이 그리스도인, 비그리스도인 예술가들의 작품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60년대까지 인도에서 저명한 화가들은 거의 모두 예수님의 상을 그렸다. 그런데 힌두교 상징들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주제들을 형상화했을 때, 그 속의 복음 메시지에 혼란이 있을 수 있다.

반면 힌두교인들은 그로 인해 자기네 상징들이 훼손됐고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활동이 개종을 겨냥한다고 의심한다. 현재 예술의 토착화는 선교 지향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교육과 가난한 이들의 어려움을 전달하는데 초점을 둬야 한다는 방향으로 보아진다.

건축에 있어서는 식민지 시대의 제국주의적인 웅장한 형태에서 생태학적 방향으로 나아가 자연과 성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조화의 미를 추구하고 있다. 아울러 초월적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신에 대한 이해와 인도를 포함한 동양 종교의 내재적 신 개념 사이의 조화를 위한 새로운 교회론과 영성이 요청된다.

인도 토착화의 전망

이러한 토착화의 현황들은 대부분 엘리트 문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들이다. 인도교회의 토착화는 이제 가난한 사람들의 「파스카」 여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인식한다. 인도 교회가 진정으로 인도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자기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억눌린 자들과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한 예수님의 토착화 모습을 볼 때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울러 인도교회의 토착화는 인도인들 전통적인 종교 세계의 신앙과 상징에 의해 영감을 받고 표현돼야 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인도 문화의 핵심은 종교적인 것으로서 민중 신학에서 해방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이를 활용해야 한다.

인도 교회의 토착화 노력에 있어서 인간의 고뇌와 고통의 경험에서 오는 종교간 대화를 추구하고 각 종교가 소유한 해방의 메시지를 연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신학의 토착화를 위해 인도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힌두교인, 이슬람교도들이 해방 실천을 위해 협력하는 기초 공동체이다.

결국 인도교회는 외부로부터의 원리주의 종교들의 위협을 이겨내고 내적으로 선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토착화에 힘을 기울여야 하며 이 토착화는 가난한 사람들과의 영원한 계약, 그리고 진정한 종교간 대화의 길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