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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토착화를 향해] (15) 신학 토착화의 전개와 과제 (5) 환경.여성.통일 신학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10-12 수정일 2003-10-12 발행일 2003-10-12 제 2368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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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질서보전운동위한 환경신학자 양성 시급
여성론적 관점 포함된 총체적 신학 필요
남북 진정한 화해는 주님이 부여한 소명
신학이 지역, 민족의 처지와 상황을 성찰하는 것은 토착화 노력의 일환이다. 한국 교회 안에서는 한국 사회와 민족이 처한 현실에 대해 사목적 실천과 함께 그러한 실천적 행동의 바탕과 원동력이 되는 신학적 성찰이 이뤄져왔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가 어느 산업 국가 못지 않게 빠른 속도로 진행된 한국 사회 안에서 교회는 창조질서를 보전해야 한다는 신앙인의 의무로서 환경운동에 나섰다.

또한 사회적으로 여성의 권리와 존엄성이 자각되면서 교회 안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에 눈뜬 여성 신자들의 여성운동이 전개됐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민족 분단의 비극적인 현실과 그에 따른 북한 교회의 문제로 인해 통일, 민족화해를 위한 노력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시대적인 요청을 받는다.

이러한 실천적 노력들과 함께 교회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활동들을 준비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신학적인 성찰들을 하게 된다.

환경신학

한국 교회가 환경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기부터이다. 특히 89년 12월 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90년 평화의 날 담화문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 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는 평화」가 발표됨에 따라 전세계 교회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게 됐고 한국 교회 역시 본격적인 교회 환경운동에 나서게 됐다.

교황의 담화문은 환경운동이 신앙의 의무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임을 일깨웠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 95년 10월 환경신학과가 증설됐다. 그 이념을 보면 환경신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인간과 신의 관계를 생태론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측면에서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파괴된 우주적 연대성과 조화를 복구하고, 자연과 인간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켜, 다원적 환경문제에 대한 바른 인식과 책임감을 갖고 개인 및 공동체의 결단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과 대책을 연구』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교회 안에서 환경운동이 활성화되어 가면서 일반 사회운동과 구별되는 창조질서 보전 운동으로서의 교회 환경운동의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서 환경과 생태론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절실하다는 인식이 갈수록 늘어났다.

그것은 곧 교회가 환경 위기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지구적인 차원의 환경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참된 대안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환경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등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모색이었다.

이미 교황은 90년 담화문에서 인간이 『창조주의 계획에 등을 돌릴 때 인간은 다른 피조물의 질서에 피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지적함으로써 인간이 질서를 보전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 의무는 신앙에서 비롯됨을 밝혔다.

한국 교회는 바로 이러한 신앙적인 소명에서 환경운동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 기회를 통해 자각하고 다양하게 교회 환경운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교회 안에는 환경신학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소수에 그치고 있어 환경신학 연구자들의 양성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여성신학

한국 교회 안에서 여성 운동은 학문의 영역과 사목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다. 여성신학은 여성 해방을 목표로 여성론과 신학이 상호 보완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여성학적 연구라고 정의한다. 여성론이 성차별주의와 남성중심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비판을 과제로 한다면 여성신학은 여성이 가부장적인 문화 전통과 지배질서의 사회 체제 속에서 억압과 고통을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신학과 교회 전통에서 성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여성신학은 특히 평등주의적 관점에 서서 남성중심적, 가부장적인 신학 일반에 대해 여성론적 관점을 갖고 신학의 제 분야를 새로운 안목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여성신학은 70년대 개신교에서 먼저 일어났는데 가톨릭 교회는 80년대 후반 메리놀회 수녀들의 노력으로 일부 신자들에게 여성신학이 소개됐다. 하지만 그나마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있다가 90년대 후반부터 여성운동이 교회 안에서도 활발해지면서 일부 가톨릭 여성 단체들의 평신도 여성들과 여자 수도회 장상연합회의 수도자들이 함께 연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주교회의에 여성위원회가 설치되고 여성의 교회 참여, 남녀의 동등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 등 여성 신자들의 자각과 교회의 인식 변화로 여성신학과 관련한 연구 활동 역시 활성화되고 있다.

1993년 평신도 여성들이 모여 설립한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 공동체」는 교회 최초로 천주교 여성신자 실태와 의식조사를 실시해 보고서를 내고 이를 바탕으로 주교회의 산하에 여성사목위원회 설치, 본당 의사 결정 구조인 사목회에 여성 비례대표제 도입, 교회 전례 안에서의 남녀 평등, 남녀 평등 사상 및 사회의식 교육 등 여성 사목 대안을 제시했다.

한국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산하에는 「여성분과위원회」가 설치되고 교회내 여성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이론적 정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한국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산하에 「가톨릭 여성신학회」가 결성됐다. 교회내 전문직 여성들을 교회 인력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톨릭 여성연구원」도 같은 해에 시작됐다. 2000년에는 교회내 11개 여성 단체들이 「가톨릭여성단체연대」를 창립했다.

여성의 체험을 바탕으로 전통 신학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으로 나서는 여성신학은 지속적으로 충분한 방법론을 계발하고 여성론적 관점이 신학 자체에 포함돼 변혁을 일으키는 총체적인 신학으로 통합되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통일신학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사회-사회정의 의안은 25항에서 민족 분단을 일러 『본디 한 생명체인 국토와 민족이 갈라져 서로 싸우는 반생명 현상』이며 『만유를 통일하시고 일치시키는 하느님은 지금도 갈라진 국토와 민족을 하나되게 하기 위하여 역사하신다』고 천명했다. 민족 분단의 현실과 민족화해를 위한 한국 교회의 소명은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이다. 통일신학은 민족 분단의 현실과 평화적인 민족 통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교회의 활동과 그 형태, 통일의 당위성과 소명에 대해 신학적으로 반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서 통일 문제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이뤄지는 것은 통일을 위한 교회의 노력과 함께 이어져왔다. 교회의 통일을 위한 노력이 구체화, 본격화된 것은 80년대 중반부터이다.

한국교회는 60년대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을 제정해 북한 교회를 위한 기도운동을 시작했으나 이후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주교회의 북한선교부가 출범하고 이듬해 10월 북한선교위원회로 이름이 바뀌면서 북한 선교, 통일 문제에 대한 진일보한 자세가 나타난다. 그러다가 80년대말 문규현 신부의 방북,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중심으로 한 교회내 일각에서 사회의 통일 운동을 촉발했고 이후 90년대 들어와서 민족화해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후 주교회의는 91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바꿨고 95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의 발족에 이어 식량난을 겪는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한 다각적인 운동이 이후 민족화해운동의 핵심적인 분야가 됐다.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 천주교회는 북한의 관계자들과 수시로 접촉하게 됐고 북한 방문이 이어졌다. 97년에는 주교회의에 민족화해 주교특위가 설치됐다.

이처럼 나름대로 통일과 민족화해를 위한 사목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이 가속화됐지만 정작 남북 분단의 시대적인 의미, 교회적이고 신앙적인 의미를 성찰하는 통일신학의 연구 노력은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화해를 이루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특별히 한민족에게 부여한 화해와 일치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임을 깊이 성찰하는 것이 통일신학의 과제이며 그럼으로써 오늘날 남북 관계, 통일과 민족화해를 둘러싸고 드러나는 많은 견해와 입장 차이를 줄이고 진정한 화해를 위한 바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