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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주일 특집] 군-민간 본당 자매결연의 현실과 과제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3-10-05 수정일 2003-10-05 발행일 2003-10-05 제 236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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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결연, 한때 35건까지 맺어졌다 지금은 30건 미만
“군 사목.후원 인식 새롭게 다져야”
인적 재정적 지원은 군사목에 활기 불어
다양한 교류로 청년 신자 양성 함께해야
서부전선 최전방 애기봉을 끼고 있는 군종교구 해군 청룡본당(해병대 2사단, 주임=김동환 신부) 신자들은 언제부턴가 두 달에 한번꼴로 돌아오는 주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습관이 생겼다. 인천교구 서운동본당 성가대원들이 성당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본당에 성가대가 생기면서 일어난 이런 조그만 변화는 그러나 결코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외부의 손님(?)들이 찾아올 즈음이면 주일미사에 나오는 50여명의 신자들뿐 아니라 200명이 넘는 비신자 병사들의 얼굴에서도 평소와는 다른 생기가 돌기 때문이다.

청룡본당 김동환 신부는 『병사들이 이런 만남을 통해 가족이 자신을 잊지 않고 있음을 간접체험하는 것 같다』며 『일시적인 만남이지만 이를 통해 군생활에 새로운 힘을 얻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밝혔다.

변화의 씨앗

지난 2000년 군종교구가 군사목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군 본당과 민간본당간의 자매결연사업이 보이지 않지만 적지 않은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셈이다.

군-민간 본당간 자매결연의 시발점이 된 청룡본당은 서울대교구 중계동본당과의 결연을 시작으로 이후 서울 목동본당, 인천 서운동본당 등과 다양한 연계를 맺으면서 군사목에 활력을 얻고 있다. 서운동본당과 같은 인적 지원은 물론 다른 본당으로부터의 재정적 지원은 이제 군사목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매결연은 이후 논산훈련소 연무대본당과 서울 명동본당간의 자매결연 체결로 본격화해 2000년 한해 동안만 서울대교구 내 30여개 본당과 자매결연을 맺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 자매결연은 군선교를 비롯한 군사목 전체의 활성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영세자의 급격한 증가로 열매를 맺어 명동본당에서 정기적으로 「군 선교기금」을 지원받는 연무대본당의 경우 이에 힘입어 매년 1만명 이상의 영세자를 배출하는 등 유래없는 기록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한때 35개 안팎에 이르던 군-민간 본당간의 자매결연은 2003년 현재 30개 본당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등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현실의 가장 큰 원인으로 군사목과 이를 지원하는 군종후원회 활동에 대한 인식 미비를 꼽는 목소리가 높다.

한 군종신부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속지주의적 사목 양식에 익숙해져 있어서 자신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군사목에 대해서는 인식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군사목이 침체에 빠져들고 있는 선교를 위한 새로운 디딤돌이라는 인식을 가져주길』 당부했다.

타종교 사례

실제 개신교의 경우 군을 새로운 도약을 위한 디딤돌로 여기고 종파를 초월한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어 우리와는 대조를 이룬다.

지난 1972년 일찌감치 초교파적으로「전군신자화후원회」를 조직해 군선교에 나서기 시작한 개신교는 성장률이 침체를 보이던 1980년대 들어서는 단순한 물질 후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전문적인 군선교기관으로의 변모를 꾀해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로 발전시키는 등 군선교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특히 98년에는 산하에 「비전2020 실천운동본부」를 둬 2020년까지 전국민의 75%인 3700만명을 개신교 신자화하겠다는 전략에 전교회적 역량을 쏟다시피 하고 있다.

또 「비전2020 실천운동」 차원에서 민과 군이 함께 하는 지역 결의대회를 수시로 여는가 하면 전.후반기 군선교 전략회의, 민.군연합 한국교회 성가음악회, 한국교회 군선교대상 시상식 등 다채로운 행사를 열어 군선교가 21세기 기독교운동의 대안임을 일반신자들에게 심어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의 경우 자매결연을 통해 군선교에 일으켰던 바람마저 잦아들고 있는 실정이어서 뜻있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저수지’ 역할

군종교구 사무처장 이유수 신부는 『청년신자를 양성해 출신교구로 돌려보냄으로써 지역교구를 풍요롭게 하는 저수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군종교구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며 『일반신자들이 군사목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만남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재정 지원을 비롯해 미사참례 등 신앙활동 지원, 전례공간 제공, 식사 및 간식 제공 등 몇몇 분야로 단순화되어 있는 결연활동의 범위와 방식을 다양화할 필요성이 있다. 연합성가대를 구성해 지역을 순회하며 군부대를 방문하고 지역교회와 함께 교리교육을 시키는 개신교의 활동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육군 동해본당 주임 김정환 신부는 『신앙은 물론 만남 자체에 갈증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신자들의 방문은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한다』며 『신자들간의 지속적인 만남의 장을 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김신부는 ▲지속적인 종교서적 보급 ▲부활.성탄 등 전례시기별 연계활동 ▲사목위원 교환방문, 정기미사 등 민-군 신자간 정례행사 ▲민간신자 병영체험 등 교류활동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런 모색과 함께 결연을 물질적 나눔이라는 소극적인 차원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신자들간의 다양한 인적 교류로 이어감으로써 사제의 이동으로 연결의 끈이 느슨해질 수 있는 현실적 한계를 극복할 때 사목환경의 변화에 관계없이 선교를 펼쳐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같은 결연이 서울대교구 등 경제력이 있는 교구만이 아닌 군 본당이 있는 인접 교구로 확대해 나눔이 지속될 때 지역교회의 활성화에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군종교구장 이기헌 주교

“군 사목의 중요성은 해마다 더해 가는데 관심은 갈수록 미미”

『군은 청년사목의 보고일 뿐 아니라 교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청년세대를 키워낼 도량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인식은 아직 미흡한 상황입니다』

군종교구장 이기헌 주교가 군선교 일선을 오가며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과 갈증은 한국교회가 군사목을 시작한 지 반세기가 넘었음에도 군사목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아직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마음을 모으더라도 이를 현실에 옮기는 방법이 적절치 않으면 그만한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게 이주교의 생각이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선교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이에 맞갖은 사목 대안과 방식을 내오지 못할 때 그 뜻이 바래고 마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개신교가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는 「비전2020 운동」을 바라보며 자주 아쉬움을 표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종파별 이해에 따라 쉽게 하나가 될 것 같지 않은 개신교회가 군 선교에서만큼은 하나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만큼 군 선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군사목의 중요성이 더해가고 군사목 영역이 광범위해지는 것도 군사목을 책임진 이주교로서는 고민을 더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지난 2000년 군사목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일이 지역교구 민간본당과의 자매결연사업이었다. 민간과 군본당이 역량을 공유함으로써 시너지효과를 거두자는 뜻에서였다. 이를 통해 이주교는 매년 2만명 가까운 사병들에게 세례를 주는 초유의 역사를 기록하며 군 선교는 물론 한국교회의 선교 대안을 창출했다는 평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근래 들어 군사목에서 실감하고 있는 또 다른 벽은 일선 군종신부들만의 것은 아니다. 자매결연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군사목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목을 돕는 군종후원회 활동을 사회복지 시설이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쯤으로 여기는 인식이 군 선교를 가로막는 장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반신자들의 인식이 이렇다 보니 군사목은 도우면 좋고 안 도와도 그만인 사목으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군은 교회의 미래와 직결돼 있습니다. 청년들이 군에서 서로에게 봉사하는 법을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산체험을 나눌 때 교회의 미래도 그만큼 튼튼한 뿌리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주교는 일방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며 함께 커가는 교회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장으로 신자들을 초대하고 있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