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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사 100대 사건 -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89)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09-07 수정일 2003-09-07 발행일 2003-09-07 제 236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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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순교사 세계교회가 인정
교회 창설이래 최대경사
순교신심 다양하게 확산
교황 비오 11세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류가 대규모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뒤 가톨릭 교회는 참된 평화와 공동체,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된다. 전쟁이 끝난 얼마 뒤인 1922년 교황으로 선출된 비오 11세(1922~1939)는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교황직의 목표로 간주했고 이에 따라 1925년 12월 11일 회칙 「과스 프리마스」(Quas primas)를 통해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제정한다.

바로 그 해 교황은 아시아 대륙의 한 켠에서 피로써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스스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였던 조선의 순교자 79명을 복자로 선포한다. 이는 일제 식민 치하에서 민족과 교회의 미래를 확신할 수 없었던 조선교회에 있어서 교회 창설 이래 가장 큰 경사였다. 그리고 훗날 24위의 복자가 새로 탄생함으로써 한국 교회는 103위의 성인을 갖는 영광을 누리는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조선에 복자를 탄생시킨 비오 11세 교황은 토마스 아퀴나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드 살 등의 성인들을 기념하는 회칙을 발표함으로써 가톨릭의 일치를 재확인하려 했다. 아울러 가니시오, 십자가의 성 요한, 벨라르미노, 대알베르토 등의 성인을 교회 학자로 발표함으로써 지난 세기 교회에 필요한 가르침을 제시하려고 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비오 11세는 많은 이들을 시성했다. 그러한 시기에 한국 순교자 79위가 시복됐다.

파리외방전교회서 추진

당시 한국 천주교회의 시복 시성운동은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 의해서 시작되고 추진됐다.

조선 제3대 교구장이었던 페레올 고 주교는 1845년 현석문 가롤로와 이재의 토마스가 수집해서 정리한 기해박해(1839년) 순교자 73명의 행적과 자신이 직접 수집한 병오박해(1846년) 순교자 9명의 행적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이듬해 홍콩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로 보냈다.

1847년 최양업 부제는 이 「기해·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을 라틴어로 번역해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로 보냈으며 그해 10월 15일 루케 주교가 교황청 예부성성에 시복시성을 위해 접수하게 된다.

교황청은 이렇게 제출된 자료들을 검토하고 난 뒤 매우 엄밀하게 작성된 자료들에 대해 감탄하고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절차들을 면제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교황 비오 9세는 1857년 9월 82명의 기해, 병오박해 순교자들 모두에 대해 조선교구의 시복조사를 접수하고 허락하는 법령을 반포했다. 이로써 김대건 신부, 정하상, 현석문, 유진길 등 천주에 대한 신앙을 죽음으로 증거한 순교자들이 가경자로 선포됐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절차를 마치고 82명 중에서 79명이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됐다.

한편 한국 교회는 병인박해(1866년) 당시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도 역시 추진했다. 1895년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는 병인박해 당시의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해서 「치명일기」를 펴냈다.

서문에서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뜨거운 마음을 표시한 뮈텔 주교는 다시금 이 문헌을 토대로 26명의 순교자들을 선정해 1918년 교황청 예부성성에 이들의 행적을 담은 문헌을 접수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50년 뒤인 1968년 이들 중 24명이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됐다.

50년뒤 24위도 시복

한국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복음의 수용, 그리고 그 복음의 씨앗을 키우기 위해 그 험한 박해 속에서도 목숨을 바쳐야 했던 순교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79위 순교자들의 시복은 이처럼 엄청난 피의 순교로 구원의 소식을 전했던 한국 교회의 면모가 전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됐다는 점에서 기념할 만한 일이다. 시복은 또 내적으로는 순교자들에 대한 신자들의 신심이 확산되고 한국 교회 안에서 다양하게 순교 성인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됐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79위 시복식을 계기로 한국 교회에서는 복자들이 가장 많이 순교한 9월 26일을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로 정하고 9월을 「복자 성월」로 지내기 시작했다. 후일 복자 성월은 1984년 한국 순교 복자 103명 전원이 시성됨에 따라서 「순교자 성월」로 명칭이 바뀌었고 9월 26일에 기념되던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도 날짜와 명칭이 변경돼 현재는 9월 20일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로 기념되고 있다.

제2의 시복시성 추진

오늘날 한국교회는 다시금 한국 교회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말 시복시성 사안을 관할하는 교황청 시성성은 시복시성을 통합 추진하는 한국 주교회의에서 요청한 한국 순교자 124위의 시복시성 통합 추진 건을 승인함으로써 한국교회 제2의 시복시성 추진이 본격화됐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