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친환경공동체 그 현장을 가다] (3) 친환경 우수마을 ‘원주 용소막’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3-08-24 수정일 2003-08-24 발행일 2003-08-24 제 236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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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진정 살고싶은 마을 가꾸기
귀향 지경식씨 친환경농법 도입에
주민들도 동참 농약없는 마을 일궈
성당이 자리잡고 있는 용소막 마을 전경.
「진정 터잡고 살고 싶은 곳, 친환경우수마을 용소막마을」

중앙고속도로 신림 IC를 빠져 나와 10여분.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암2리 「용소막 마을」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입 간판이었다. 언뜻 눈에 비친 풍경은 다른 농촌마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데 왜 「진정 터잡고 살고 싶은 곳, 친환경 우수마을」이 되었을까.

마을 초입에 들어서 있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용소막성당에 제일 먼저 들렀다. 성모승천대축일을 맞아 본당 새 단장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제 볍씨가 여물 때여서 오리는 논에서 다 빼냈고요. 오늘은 마을 주민 전체가 성당 품앗이하는 날입니다』

옹기종기 모여 잠시 쉬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70∼80대 노인들. 이중 제일 젊어 이장을 하고 있다는 지경식(프란치스코.50)씨가 말문을 열었다.

제초제를 쓰면 금새 깨끗해질 법도 한데, 허리 굽히기도 힘겨워 보이는 노인들이 성당 뒷마당과 교육관 일대의 잡초를 손으로 뽑고 있었다.

『우리 마을은 제초제 뿐 아니라 모든 농사에 농약 안 쳐요. 성당제초작업도 마찬가지죠』

만나는 주민마다 농약 이야기만 꺼내면 손사래를 친다. 신림농협에서 농약을 제일 안 사가는 곳이 용암2리라며 한 주민은 농담처럼 귀띔한다.

용소막마을은 2001년 강원도 친환경우수마을, 2002년 강원도 새 농촌건설 우수마을로 선정되는 등 강원도 지역에서 친환경 농법을 솔선해 펼치고 있는 대표 마을이다. 또 내년으로 설립 100주년을 맞는 용소막성당이 있어 주민들의 90% 이상이 신자로 이뤄진 교우촌이기도 하다.

주민 90% 이상이 신자

111가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용소막 오리쌀, 용소막 마늘, 용소막 간장, 용소막 된장, 용소막 메주, 용소막 신선초 등 용소막 고유의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주민들이 환경을 생각하는 것은 비단 농사에 그치지 않는다. 친환경농법 견학차 마을을 방문하는 도시 초등학생들과 함께 마을 앞을 흐르는 냇가 정화작업, 농사용 폐비닐 수거작업 등도 펼친다.

용소막마을 전체가 이렇게 친환경공동체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외지에서 직장을 다니던 지경식씨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듬해였다. 지씨는 농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친환경농법 뿐이라며 직접 오리농법 쌀재배를 시작했다.

지씨가 홀로 시작한 오리쌀 농법이 빛을 발한 것은 불과 일년 뒤였다. 농약을 치지 않고 김을 매는 번거로움도 없이 수확한 오리 쌀이 농약을 친 일반 쌀에 비해 30% 이상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을 본 마을 주민들이 지씨의 오리 쌀에 차차 관심을 갖게 됐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오리쌀 작목반을 만들고 이듬해 곧바로 오리쌀 농법을 시작했다. 3년뒤, 마을에서는 농약냄새가 사라지고 하천을 비롯한 생태계도 되살아났다. 농약 병이 뒹굴 던 마을 앞 하천은 아이들이 맘껏 놀아도 문제가 없을 만큼 깨끗한 물이 흘렀다.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용소막마을은 지난해 새 농촌건설 우수마을로 지정돼 5억원이라는 지원금을 강원도로부터 받았다. 주민들은 이 지원금을 더욱 친환경적인 마을을 꾸미는데 사용하자고 결정했다. 화학비료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가축의 배설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논에 뿌릴 수 있는 대형저장 탱크를 마련했다. 오리쌀 전용 정미소도 마을 회관 옆에 두고 정미기도 새로 들여왔다.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무공해 콩 용소막 메주를 생산.저장하는 창고도 성당 옆에 지었다.

도시소비자들이 생산자농민과 만나 직접 친환경농업 현장을 체험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마을 경로당을 개?보수해 민박집으로 꾸몄다. 방문객들은 5000여 평에 달하는 논, 밭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직접 재배할 수 있고 또 마을 주민과 직접 만나 농산물 재배현장을 둘러보고 직접 농산물을 구입할 수도 있다.

현재 용소막마을에는 친 환경 농업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방문하는 도시인들이 해마다 수백 명에 달한다. 논 52㏊와 밭 82㏊에서 생산되는 오리 쌀과 우렁이 쌀, 콩, 신선초 등은 전량 인터넷 주문과 직거래를 통해 판매된다. 따로 납품하는 곳이 없음에도 알음알음 소문이 나 올해 생산될 예정인 오리 쌀은 이미 주문이 마감 된 상태다.

학생.도시인 방문 줄이어

마을이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평범한 농촌에서 친환경 마을의 대표 주자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주민들의 단합과 일치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주민들의 하나된 힘은 용소막성당이라는 신앙공동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00년 동안 이어온 깊은 신앙을 가슴깊이 간직한 채 살아온 주민들이었기에 성당은 마을 주민들을 한 식구로 맺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친환경 마을을 세우자는 젊은 이장의 제안에 모든 주민이 동참할 수 있었던 것. 또 하느님이 주신 천혜의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 또한 오늘날 친환경 마을이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됐다.

용소막성당을 방문하는 성지순례객들이 많았기 때문에 용소막 마을의 친환경 농산물들이 빛을 볼 수 있었다. 현재도 매주일 성당 앞마당에는 이곳을 방문한 도시 신자들을 위한 친환경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열리고 있다.

성당앞 공터에서 무공해 농산물을 공동 재배하고 있는 주민들.
마을 입구에는 농약병과 폐유 수거통을 마련했다.
성당앞에는 쓰레기 집하장을 만들어 놓았다.
오리쌀 농법에 쓰이는 오리는 마을에서 공동 관리한다

◆ 친환경마을 일군 지경식 이장

“믿고 사준 신자들 도움이 컸지요”

지경식 이장
『자신이 먹을 작물에는 농약을 안 치고, 내다 팔 것에는 농약을 치더라고요』

20년 도시생활을 접고 99년 고향마을로 돌아 온 지씨가 처음 본 것은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농약을 뿌려 대는 농민들이었다.

『내가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못합니다. 농약 범벅인 음식물을 사람이 먹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환경살림이고 생명존중이지요』

평생 농약 농사를 짓던 노인들에게 친환경농법이니 자연을 살려야 한다느니 하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새벽마다 온 마을을 돌며 어른들에게 아침인사를 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하천을 청소하고 농약병을 줍는 지씨의 모습에 하나 둘 지씨의 생각에 동참했다.

『용소막성당을 찾는 신자들이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농촌마을에 관심을 갖고 조금 비싸지만 먹을거리를 믿고 사주는 이들이 있어 친환경농법으로 농사 짓는 번거로움도 거뜬히 감수할 수 있습니다』

지씨는 용소막마을뿐 아니라 인근 4개 마을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직거래 할 수 있는 판매장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죠. 맑은 물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들판에는 메뚜기가, 논에는 오리가, 밤에는 반딧불이가 하늘을 수놓는 무공해 농촌을 만들어야죠. 그게 정말 사람 사는 곳 아니겠어요』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