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교회 토착화를 향해] (13) 신학 토착화의 전개와 과제 (3) 공동체관의 토착화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08-10 수정일 2003-08-10 발행일 2003-08-10 제 2360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동고동락’ ‘함께’…형제적 공동체 모습 구현
2차 바티칸공의회 공동체관은 ‘친교의 교회론’
획일성 탈피, 지역 특수성.주민들 소망 고려해야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며 특별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에 바탕을 두고 모인 백성」으로 정의했다. 친교의 교회론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개념이다.

오늘날 공동체 신학에 대한 성찰은 가장 시급한 요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불리운 이들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이고 구조적인 형태를 갖고 있다. 곧 교회의 일치는 신앙 고백과 성사, 교계 제도의 친교를 통해 건설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친교의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들을 기울여왔으며 한국적 상황과 한국의 문화, 전통에 바탕을 둔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성찰하기 위한 시도들을 나름대로 추진해왔다.

한국교회는 어떠한 공동체 모습을 형성해나갈 것인가,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지,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어떻게 가꿔나갈 것인지 등등 토착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이러한 과제들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여러 종교와 전통의 공동체관

구약에서의 공동체관은 제도적이기보다는 구원론적인 성격의 야훼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로서 이러한 야훼 신앙에 입각한 평등과 해방의 공동체는 역사 속에서 위타성과 개방성으로 발전한다. 또 계약 공동체적 성격을 지니고 하느님 「모상」에서 공동체 원리의 기반을 발견한다.

신약에서의 공동체관은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편적 호응을 얻기에는 어렵지만 뚜렷한 지향이라는 점에서 길잡이가 된다. 어떤 차별도 없는 평등 공동체는 구성원간의 연대적 일치, 섬김과 사랑의 공동체는 공동체의 봉사, 성령 은사적 공동체는 복음 전파와 전례에 성원 모두의 참여를 부각시킨다.

동방교회의 공동체관은 「화해」를 교회의 구조적 원리로 파악하고 복수성에서 일치를 추구하여 탈조직화를 지향하는 유기체적 공동체를 통해 신약성서적 이상 공동체를 추구하는 현대적인 모색이다. 특히 교회의 비움, 성사를 통한 나눔과 일치, 즉각적 참여의 실현 등은 이상 공동체를 향한 적절한 구조적 구현방법이다.

도교(한국 신선 사상)의 공동체관은 하늘의 법도를 체현해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루려는 노력으로 우주적 이상과 순리적 방법론을 조화롭게 겸비했다는 면이 있다. 불교는 공동체 이상보다 이상에 이르기 위한 방법적인 면에 비중을 크게 두고 있으며 남과 「함께 사는 삶」에 기여하는 수행론이다.

유교의 경우에는 대동사회라는 뚜렷한 공동체 이상과 그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인, 효, 서를 제시한다. 특히 세종 시대의 대동사회를 꿈꾸면서도 구체적인 접근안을 제시한 이율곡의 제안은 선구적이고 탁월한 공동체론으로 좀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무속에서는 유교의 이상향인 「대동」을 꿈꾸며 구체적 접근법으로 대동굿, 대동제를 실행한 사실에서 공동체 구현을 위한 요소들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공동체 삶의 중요한 요소인 한풀이, 십시일반, 상호 부조, 두레 등은 친교와 봉사의 토착화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를 제시한다.

아시아 신학을 살펴보면 아시아인의 심성 안에 있는 동고동락이나 「함께」의 정신이 우리 공동체 운동의 기반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아시아, 한국의 이러한 잠재적 에너지를 최대로 활용하는 공동체 운동을 펼쳐야 한다. 특히 열린 자세로 이웃 종교와 연대해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는 일부 아시아 국가의 공동체 운동은 다원종교 상황의 우리나라에 큰 시사를 준다.

현대 가톨릭 교회의 공동체관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공동체관의 주요 흐름은 한마디로 「친교의 교회론」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친교성」은 성서 안에 그 원천을 두고 있으며 초대 교회와 동방 교회의 존재 원리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공의회 문헌들의 여러 곳에서 가장 비중 있게 강조된 중심 개념이고 오늘날 교회론에 대한 신학적 성찰에서 그 핵심을 차지한다. 아울러 그것은 공의회 이후 교회의 모든 쇄신 노력을 촉진하는 힘이다.

하지만 교회의 친교성이 교회 역사 안에서 언제나 중심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세 이래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의 교회관은 가시적 사회성과 제도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20세기 초 성서와 전례, 초대교회로의 회귀를 통해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가시적인 제도적 측면과 영적인 신비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됐고 이 두 요소를 통합하는 개념이 친교의 개념이었다.

친교를 나누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의 제도성과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성을 동시에 나타내며, 영적 생활의 내적 친교를 바탕으로 신앙 고백과 계명, 신앙 생활의 외적 친교를 드러내는 「성사」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이렇게 친교의 교회는 삼위일체의 신적 친교에 참여하는 것이고 이웃과의 형제적 친교를 나누고 교회내 직책 및 기능의 다양성 안에서 교계적 친교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친교적 사랑이 교회 구성원들의 친교로 증언될 때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일치하며 갈라진 형제들과 일치하기 위한 실천적 바탕이 마련된다.

한국교회 공동체 토착화 노력

한국교회가 지난 1984년 한국교회 창설 200주년을 맞아 개최한 사목회의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삶 속에서 구현돼야 할 하느님 나라와 교회상을 모색한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 회의는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공동체 토착화의 진수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공동체 문제와 관련되는 성직자, 농촌사목, 교회운영및 사회정의 의안들 안에는 한국 교회 대다수의 성원들이 요청하고 염원하는 바람직하고 토착화된 공동체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의안은 우선 형제적 공동체의 이상을 모색한다.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그리고 이웃종교인들에게도 개방적이며 모든 이를 포용하는 형제적 공동체의 이상을 제시하고 있다.

성직자의안은 특히 공동체 토착화와 관련해 성직자의 역할과 비중을 강조한다. 성직자는 형제적 공동체를 이룩하는데 이바지해야 하며 사목직 수행에서는 될 수 있는대로 작은 공동체를 활성화하도록 촉구된다.

성직자는 봉사자로서 사목활동을 하며 본당은 사목위원회, 교구는 사목협의회와 함께 형제적 관심과 배려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성직자는 집단 이기주의적 자세를 버리고 이웃 공동체와도 협력하며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다.

농촌사목의안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 속에서 나눔, 친교, 섬김의 작은 생활 공동체를 제시한다. 한국교회적 공동체 모델을 형성하려는 시도를 강조하면서 여기서 시도된 작은 현장 생활 공동체를 통해 나눔과 섬김의 하느님 나라의 참 모습이 한국 사회 안에서 드러난다고 믿는다.

다음은 교계제도와 보조 원리를 존중하고 교회 운영을 내실화해 전례, 대화, 애덕을 실천하는 교회적 공동체의 모색이다. 여기서 한국 교회 공동체의 올바른 운영을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지적한다.

올바른 운영 원칙

첫째, 가톨릭 교회의 교회 운영의 기본적 구조 원리는 교계 제도와 보조 원리이다. 교계제도는 하느님이 정한 제도이다. 그리고 보조 원리는 교회의 상위 권위는 하위 권위가 스스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한 그를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신자들의 일치와 구원이 위험할 때에만 그 일에 직접 개입한다는 것이다. 보편교회와 지역교회, 교황 수위권과 주교단, 교구와 본당, 나아가 본당과 공소의 관계는 이 원리로 규정된다.

둘째, 교회 운영 쇄신에 관한 입장으로서 교회 운영의 내실을 다지고 다양한 현대 사회에서 하느님 나라 건설에 필요한 새로운 기능과 기술을 도입하며 의사 결정에 고도의 통찰력과 종합력, 책임성 있는 지도력이 요청된다고 강조한다.

셋째, 한국교회의 실질적 구심점인 본당의 중요성과 문제점도 지적된다. 미사 전례와 교계제도 중심의 운영은 제도적이고 형식적인 면에 치우치고 성직자의 권위 의식, 평신도의 소극적 태도, 사목위원회의 구성과 기능 등의 문제점이 지적된다.

여기서 기초 공동체의 중요성도 강조되는데,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30~50명의 기초 공동체가 전례와 대화, 애덕을 실천하는 교회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의로운 공동체의 이상을 제시한다.

사회정의의안은 인간 사회와 자연 환경 속에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드러나는 정의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제시한다. 기존의 오염된 인간 상호간의 관계, 인간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 환경의 체계적 개혁과 개선이 불가피함을 역설한다. 구체적으로 노동 문제의 해결, 전통 문화와 외래 문화의 조화, 인간의 자기 발전과 인간화를 위한 노력, 문화의 올바른 개발과 발전, 성차별 극복, 자연 환경의 보호, 민족의 통일 등을 지적한다.

자발적.적극적 참여 필요

한국교회의 토착화된 공동체의 모습은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그 지역 주민들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가치관과 한국인의 가치관을 조화시키며 생활하고 체험하는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 이러한 이상적인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와 그 결과를 실현하려는 현실적인 노력, 그리고 그에 따른 교회 모든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