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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토착화를 향해] (11) 신학 토착화의 전개와 과제 - 신관(神觀)의 토착화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07-06 수정일 2003-07-06 발행일 2003-07-06 제 2355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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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통해 계시된 구원진리
한국인 심성맞게 주지시켜야
현실 상황과 민족 공동 체험의 복음적 의미 고려해야
복잡한 다원종교사회  토착화작업 어려움 더해
토착화의 과업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영역은 신학의 토착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신관, 공동체관, 인간관에 관련된 신학 토착화의 논의들을 검토하고, 토착화의 바탕으로써 한국의 전통 종교들과의 종교간 대화의 노력들을 살펴본다. 아울러 여성, 통일, 생태학 등의 분야에서 나타난 새로운 신학의 성찰들을 점검해봄으로써 신학 토착화의 전개 과정과 현황, 과제들을 모색해본다.

토착화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방법 등은 세계 지역교회나 교회 지도자, 신학자들 사이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가 토착화의 필요성과 긴급성에 대해 강조한데 따라 여러 지역 교회들 안에서는 「위로부터의 토착화」의 입장이 이어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일반 신자들 사이의 자발적인 신앙 양식을 토착화의 정상적 과정으로 보려는 「밑으로부터의 토착화」 역시 추진돼왔다.

신관 토착화의 기본 방향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16세기 이래 가톨릭 교회의 타종교에 대한 독선적 배타주의를 지양하고 문화와 신앙, 종교와 복음 사이의 새로운 관계의 형성을 지향하는 획기적 전환을 이루었다. 계시된 말씀을 환경과 조건에 적응시켜 선포하는 것은 복음 선포의 원칙이다.

아시아 지역 교회들 역시 공의회의 지침에 따라 신앙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아시아의 풍요로운 문화 속에서 복음의 삶과 메시지가 보다 다양한 형태를 갖추도록 토착화한 신학을 전개하고 그들의 힘이 미치는 한에서 모든 노력을 다하리라는 결의를 표명했다.

토착화는 인간 문화가 그리스도교에 수용됨으로써 그 문화의 참된 가치의 내적인 변모가 이뤄지는 것과 여러 가지 인간 문화 안에 그리스도교가 삽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 신학의 과제는 복음의 보편성을 한민족의 삶의 자리 곧 한국의 현실 속에서 이뤄지는 한민족의 해방의 실천 속에서 구체화시키는 것이다.

신학 토착화를 위한 기본 입장은 무엇보다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래 천명되는 교회의 공식 입장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우선 그리스도교 신학은 역사적인 신앙 공동체로서의 그리스도교회를 통해 전해지는 복음의 진리를 올바르게 이해할 과제를 지닌다. 한국 신학 역시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느님의 구원 진리를 한국인들에게 주지시켜야 할 과제를 지닌다.

한국인들의 종교 심성, 사고 방식, 정감, 언어 구조, 무학 유형에 상응하는 양식으로 복음 진리를 언어화함으로써 한국의 토양 안으로 보다 깊이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신학이 한민족의 삶의 자리에서 이뤄지는 한 한국의 현실 상황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민족의 공동 체험의 복음적인 의미를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교회의 기본 입장, 그리고 구원이 이뤄지는 장으로서의 한국의 현실 상황이라는 두 차원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신학의 토착화 작업은 교회의 일반적 입장, 한국의 역사적 현실 상황이 모두 주체적으로 중시되고 상보적 관계를 맺을 때 올바로 전개될 수 있다.

이러한 기본 입장을 바탕으로 신관 토착화를 위한 기본 방향은 첫째, 종교학이나 비교종교학과는 달리 한국 종교의 여러 신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신관을 바탕으로 성찰하고 둘째, 교리간의 만남이 아니라 복음의 구원 진리를 역사의 요청에 응답하게 하며 셋째, 그리스도 신앙의 하느님을 「여기서 지금」이라는 역사적 현재 안에 언어화하는 것이다.

신관 토착화의 과제

한국과 동아시아 종교 전통 안에서, 신관의 토착화 작업과 관련해, 한국 내지 동아시아에서의 그리스도 신앙의 심화 및 활성화를 위해 수용할 수 있을 만한 가치를 지닌 요소들이 발견된다.

우선 우리 민족이 예부터 숭앙해온 전통적인 하느님 관념 안에서 그리스도교적인 하느님의 면모가 감지된다. 단군 신화에 나타난 환인과 환웅의 관계를 가나안 토착민의 지고신 「엘」(El)과 그의 아들 「바알」(Baal)의 관계에 대비시켜 우리 민족이 고대로부터 믿어온 하느님과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이 동일한 분임이 제시될 수 있다.

참 하느님 야훼의 선민이라는 자의식을 가졌던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 토착민이 숭배하던 제신의 부신 「엘」을 「야훼」와 동일시 해 「야훼-엘」을 유일한 참 하느님이라고 믿게 된다.

여기서 단군 신화의 환인이 구약성서의 「엘」과 대비될 수 있다는 것이 신관의 토착화를 추구하는 학자들의 견해이다. 환웅이나 바알은 아버지 환인과 엘의 뜻에 따라 세상, 인간과 직접 관계를 맺는 신적 존재이다.

무교를 위시해 한국에서 토착화된 유?불?도교 신관 안에서도 신관의 토착화를 위한 유용한 함의들이 발견된다. 그리스도교 신관에서는 인간과 세계의 창조주로서 하느님의 세계 초월성이 강조된다. 그런데 하느님의 초월성은 한국과 동아시아 전통의 종교들 안에서도 인정된다.

무속에서 만신의 으뜸으로서의 천신은 초월적 존재로 나타나며 인간, 세상과 직접 관계를 맺지 않아도 우주 만물을 주재하는 인격신으로 숭상된다. 원시 유교에서 천(天)-상제(上帝)는 유일하게 지고한 존재를 의미하고 만물과 인간을 초월해 모든 세계를 주재하는 지고신으로서 상벌을 주관하고 감정과 의지를 드러내는 인격적 주재자로 일컬어져왔다.

하지만 한국과 동아시아 종교들은 신을 인간, 세계와 구별하면서도 양자 사이의 연속성과 불이성(不二性)을 드러낸다. 하느님, 천신, 천-상제, 태극, 도, 진여, 일심, 일원 등 여러 명칭으로 궁극적 실재를 나타내는 가운데 그 본질을 내재적 초월성으로 파악한다. 또 인격성을 하느님의 본질로 규정하는 그리스도교와 달리 한국과 동아시아 종교 전통에서는 하느님을 비인격적 실재성으로 파악한다.

이처럼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신관과 한국-동아시아 종교의 신관 사이에는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인격성과 비인격성을 바탕으로 동일시할 수 없는 상위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 역사 신학의 관점에서 나타나는 삼위일체적 신관과 이러한 종교 전통의 신관 사이에는 그 취지와 내용 면에서 구별되는 가운데에서도 공통적인 요소와 취지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현대 한국의 신흥 종교들에서 나타나는 신관을 볼 때에도 내재적 비인격성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신인 합일 사상을 수반하는데 천도교의 「시천주」, 「인즉천」, 「인내천」사상, 증산교의 「인존」사상, 원불교의 「일원상」사상, 그리고 통일교의 「개성 진리체」개념 등이 신과 인간의 합일을 강조한다.

이들 신관은 조화와 융합이라는 동양인의 사유 형식이 바탕을 이루며 특히 전통적 하느님 사상과 토착화된 오랜 종교 사상이 혼융되는 혼합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전통 사상에 다양한 신흥종교

신학의 토착화 작업은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에서 만나는 개념과 그리스도교 신학 표현 안에 나타나는 개념들을 비교해 등가(等價) 개념을 찾는다거나 후자를 전자로 수정 보완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 또는 동아시아 종교 문화 및 역사적 현실과 구별되는 서구에서 형성된 그리스도교 신앙 진리를 우리 민족의 현실 상황 안으로 뿌리내리기 위한 취지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 신앙과 신학, 신관의 토착화 작업이 갖는 어려움과 복잡성은 다원 종교 사회라는 점에서 특별히 그 강도가 더 높아진다. 그리스도교 대륙인 서구나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아랍 문화권, 힌두교나 불교가 우세한 동남 아시아 문화권과는 달리 그리스도교가 한 두 가지 특정한 종교와 맺는 상관 관계가 관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한민족 고유의 전통 종교 사상과 문화, 유교와 불교, 도교, 그리고 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통일교 등 다양한 신흥 종교들을 포함한 많은 종교 문화 전체와 그 신관과의 만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신앙과 신학, 신관의 토착화 작업이 갖는 어려움과 복잡성은 다원 종교 사회라는 점에서 특별히 그 강도가 더 높아진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