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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살리자] (7) ‘고아 아닌 고아’ 버려지는 아이들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3-06-29 수정일 2003-06-29 발행일 2003-06-29 제 235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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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가정에 아이들만 질식
가정해체 예방 위해 적극 나서야
버려진 아이 제도적 보호도 시급
7살 윤수와 4살 윤정(가명)이 남매는 두달 전 서울 강북구의 한 보육시설에 맡겨졌다. 미싱일로 생계를 꾸려가던 엄마는 1년이 넘게 빚독촉에 시달리다가 결국 『돈 벌면 데리러 올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아이들을 뒤로 했다. 신용대출을 받아 사업을 했던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어머니와도 이혼하고 매일 술로 지내는 통에 아이들 양육은 관심 밖이다.

결혼 후 다툼이 잦았던 최모(남.35) 여모(여.33)씨 부부는 여씨와 시부모 사이에 갈등까지 겹치자 합의이혼을 결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 두 사람은 서로 아이를 맡지 않겠다고 주장해 결국 법정까지 갔다. 「교육상 엄마가 맡는 것이 좋다」는 최씨의 의견과 「경제적 여건이 안된다」는 여씨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다. 법원은 최씨를 양육자로 결정했지만 최씨는 수시로 아이를 여씨 집앞에 두고 가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부부간에 갈등이 생겨도 「아이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은 옛말이다. 이젠 가정의 해체를 막는 마지막 보루는 더이상 자녀가 아니다. 위의 사례는 아주 일반적일 정도로 심지어 법원의 양육자 결정을 무시한 채 아이를 보육원에 버리는 비정한 부모도 종종 발견된다.

부모의 이혼, 경제적인 어려움, 가정폭력, 미혼모의 출산 등으로 버려지는 아이들. 「고아 아닌 고아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버려지는 아이들 즉 「요보호 아동 수」가 2002년말 집계 1만2000여명으로 IMF 위기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수양부모협회 및 각종 보육시설에는 매일같이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느냐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해에 10여만쌍이 이혼하는 현실에서 해마다 적어도 10여만명의 이혼가정 자녀들이 상처를 받고 또 그 일부는 버려진다. 하지만 실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가정해체와 학대 등으로 버려져 가정위탁 등 보호를 필요로 하는 지는 정확한 통계조차 나와 있지 않다.

아이들이 버려졌다는 것은 결국 가정해체의 극단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자녀를 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이혼. 또한 빈곤, 실직, 아동학대 등을 들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43곳의 아동복지시설에 3500여명의 아동이 생활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80%이상이 부모나 친척 등 연고자가 있으면서도 버려진 아이들이다.

2002년 한국아동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서울아동복지센터 이정희 소장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동복지센터에 맡겨진 아동 중 부모가 사망한 경우는 전체의 3.2%에 불과하고 이혼과 부모가출 등의 사유는 70.6%를 차지했다. 시설보호 아동의 2/3 이상이 부모가 책임지지 않아 떠맡겨진 경우라는 것이다.

또 최근 신용불량자 300만 시대라는 수치가 보여주듯이 카드빚에 쫓겨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이혼, 가출해 버려진 아동들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서울 시립아동복지센터 상담실장 이규동씨는 『카드빚 때문에 버림받고 시설배치를 기다리는 아동들이 센터 전체 보호 아동의 30%에 달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사회의 편견에 시달리며 겪는 고통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피해 어린이들은 50% 이상이 우울증 등 정서장애, 학습장애 등에 시달리며 사회 적응을 못한다고 한다.

실제 일시보호시설에 맡겨진 아동들의 70% 이상이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을 비롯해 설사 구토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부모와 헤어질 때의 충격으로 부모 자신의 이름 나이 등을 잊어버리는 사례도 발견된다. 더구나 보호아동의 90%가 초등학생 이하로 조사돼 인성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받은 정서적 충격으로 인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는데 어려움이 있다.

고통받고 상처받는 이들에게 어떤 위로를 줄 것인가. 이 아이들이 신앙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특히 비뚤어진 인성 및 심성을 갖게 된 이들의 2세도 올바르게 자라날 수 없어 사회적 악순환은 지속된다.

전문가들은 양육 포기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혼 시 가정법원에 자녀부양에 대한 협의사항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법적 장치도 보완돼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프랑스 호주 등지에서는 이혼 부담금 제도를 실시, 일정액의 부담금을 내고 이를 재원으로 국가가 위탁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도록 중재하고 있다.

특히 가정위탁제도와 그룹홈 같은 대안가정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버려진 아동들이 일시보호소를 거쳐 어느 정도 안정되면 이후 가정위탁이나 그룹홈을 통해 최대한 정상적으로 자라도록 도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가정위탁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친가정으로의 복귀다. 부모로부터 일탈된 아동들이 시설에 방치되거나 소년소녀가장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친부모에게 돌아갈 때까지 일정기간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룹홈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가정적인 환경에서 돌보는 공동생활가정이다. 우리나라에 아동그룹홈은 전국 200여개가 있으나 18곳만이 인가받은 시설이다. 아동복지법은 아동?청소년 그룹홈의 경우 기존에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만이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일반 시민이나 사회단체가 나서기 어렵다. 따라서 다수의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교회가 적극 나설 수 있는 부분이다.

또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학대받는 이들의 회복을 위한 쉼터 마련에도 투자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동보호시설은 물론, 전문 상담기관 등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이혼 후 생활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상담 및 법률 의료 직업 등 다방면의 가족지원서비스를 비롯해 부모교육 자녀집단상담 치료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교회 내 신자들을 중심으로 소그룹 및 가족간의 자매결연, 양부모와 의남매 맺어주기 등도 권할 만한 사항이다.

지난 2000년 성목요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 성직자?신자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부부는 부모가 되면서 하느님에게서 새로운 책임의 은혜를 받는다. 어린이에 대한 배려, 즉 수태된 첫 순간부터 유아기와 아동기를 통해서 어린이들의 사정을 배려하는 일은 인간이 타인과 맺는 관계를 저울질할 수 있는 초보적이고 근본되는 시금석이 된다』며 자녀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가정의 해체는 결국 「양육 사각지대의 아이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갈 곳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가정해체를 막는 것이 관건이다. 현재 교회 내에서는 가정이 건강하게 형성.유지되도록 혼인교리 및 부모교육 등에 적극적인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버려지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현실 여건상 교회 자체의 시설 등의 마련보다 정부시책과 연계해 지원을 추진하는 방향이 적극 고려돼야 한다.

■ 서울 동부아동상담소장 김보애 수녀

“결혼 전후 교육강화로 역할 책임의식 키워야”

김보애 수녀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정이 해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요즘 부모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기본이 서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 동부아동상담소 소장 김보애 수녀(샬트르 성바오로회)는 『한번 해체된 가정은 다시 복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버려진 아이들이 치료 등을 받은 후에도 돌아갈 곳이 없어 심성 인성이 비뚤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결혼 전 젊은이들 대상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기혼자들도 부모역할훈련 등을 자주 받을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수녀는 『물질 중심 사고를 비롯해 실리주의 이기주의로 인해 모성과 부성을 넘어서 아이들을 버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가정이 해체되고 결국 자녀들을 버리기까지 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그 저변에 경제적인 원인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경제권을

동부아동상담소에 위탁된 아동들의 거의 100%가 어머니의 가출로 상처받은 아이들이다. 15년이 넘게 아동복지 실무를 담당해온 김수녀에 따르면 대부분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등을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부갈등과 학대가 생겨나고 그 결과 이혼 별거 혹은 어머니의 가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 오는 것이 아니라 가정해체로 인해 수용되는 아이들이 더욱 늘고 있다』고 말하는 김수녀는 『일차적으로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 인프라 구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어머니의 가출을 예방하려면 경제문제를 우선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김수녀는 정부의 지원금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에게 직접 지급되도록 하는 등 「엄마 살리기 운동, 가출막기 운동」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권한다. 아울러 아이와 어머니가 함께 보호될 수 있는 모자 쉼터의 활성화 등으로 자녀를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가정위탁 그룹홈 활성

또한 김보애 수녀는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서는 가정위탁과 그룹홈 등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교회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고, 신자들이 가정위탁이나 그룹홈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상처받은 아이들도 누구나 잘 크려는 의지를 보이며 관심받고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이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을 해준다면 건강하고 성숙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