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긴급진단] 급락하는 신자증가율 무엇이 문제인가 (중) 복음화 전선, 무엇이 문제인가

차동엽 신부
입력일 2003-06-29 수정일 2003-06-29 발행일 2003-06-29 제 2354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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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교 교세변화 추이에 주목해야
‘자연 중심의 세계관’ 확산 속에서 명상 요가 등 신영성운동 참여 급증
숲을 보자

지난 호에서 근래 교세통계의 변화상 복음화 전선에 심각한 이상 징후를 엿볼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면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함께 보아야 한다. 가톨릭 교회 뿐 아니라 타종교의 교세변화 추이에 주의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먼저 참고적으로 밝히자면, 각 종교기관에서 자체 집계한 수치와 통계청의 조사 수치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들어가야 한다. 이 글에서는 객관성을 담보받기 위하여 통계청의 조사를 따르기로 한다.

통계청의 발표를 따르면 불교인구는 85년 19.9%, 95년 23.31%, 1999년 현재 26.3%로 집계되었고, 개신교는 85년 16.05%, 95년 19.79%, 1999년 현재 18.6%로, 천주교는 85년 4.61%, 95년 6.7%, 1999년 현재 7.0%로 나타났다.

여기서 우리는 85년에서 95년 사이의 신자 증가율은 천주교 45.3%, 개신교 23.3%, 불교 17.1% 순이었으나 95년에서 99년 사이의 신자 증가율은 불교 12.8%, 천주교 4.4%, 개신교 -2.9% 순으로 순위가 바뀌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80년대 최고의 성장률을 과시하던 천주교가 90년대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불교의 성장세에 밀리고 있고, 개신교는 실제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무언가 의미심장한 변수가 등장했음을 시사하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사회학자 노길명 교수에 의하면 이 기간 단전호흡, 기공, 요가, 명상 등 「신영성운동」의 참여자는 급증하여 이미 2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 사실도 숲을 보는데 있어서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필자의 소견으로 이러한 추세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큰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약세와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불교와 뉴에이지류의 신영성운동은 강세를 계속 누릴 것이라는 얘기다.

왜 이런 현상이 전개되는가

근래에 전개되고 있는 저 이상기류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먼저, 이 난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좀 번거롭지만 인류문명의 변화의 물결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앨빈 토플러는 유목민이 정착하여 농경을 하게 된 시기를 「제 1의 물결」이라 하고, 산업혁명에 따라 시장경제를 전제로 한 사회가 성립된 시기를 「제 2의 물결」이라 하며,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를 「제 3의 물결」이라 하였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의 오늘날 까지 우리 한국 사회는 「제 2의 물결」에서 「제 3의 물결」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제 2의 물결 시대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이에 반하여 제 3의 물결은 「자연중심의 세계관」을 확산시키고 있다. 산업혁명이후 제 2의 물결 시대에 자연은 지배, 개발의 대상으로서 난도질당하다 시피했다.

그러나 자연의 훼손이 가져다준 환경재앙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굴뚝산업」으로 상징되는 제 2의 물결이 밀려가고 첨단 IT산업을 주축으로 하는 제 3의 물결이 밀려들면서 자연이 더 이상 인간의 정복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그와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의존해야할 존재로 재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연을 신성시하는 풍조가 두루 퍼져가고 있다. 이제,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전통사회에서 신을 훼손하는 것이나 현대사회에서 인권을 침범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처럼 「자연 중심의 세계관」이 우위를 점하는 시대에는 사람들이 종교를 찾을 때 천주교, 개신교와 같은 「계시 종교」보다는 힌두교, 불교, 도교 등의 자연종교 및 이런 성향의 유사종교에 더 큰 호감을 갖게 된다. 바로 이점이 불교와 신영성 운동이 최근에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몇 년전 한국 갤럽 조사(1998년) 결과는 이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거기서 종교가 없는 한국인들이 호감을 갖는 종교는 불교(31%), 천주교(15.4%), 기독교(10.4%)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80년대 초중반기에는 여러 여론조사에서는 천주교(및 사제)가 인기순위 1위를 놓치지 않았었다. 10년 사이에 순위가 바뀐 것이다.

물론 이는 70, 80년대에는 「천주교=민주화투쟁의 선봉」이라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각인되었었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독재정권의 퇴진과 함께 점점 그 이미지가 희석된 데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 중심의 세계관」이 뒷받침하지 않았다면 똑같은 정치-사회 여건 속에서 불교만 저렇게 약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통계가 있다. 1999년 갤럽 조사에서 한국인이 종교를 믿는 이유가 마음의 평안(66.8%), 영원한 삶(12%), 현세축복(12%), 삶의 의미(6.9%) 순으로 나타났고, 80%의 한국인이 불교, 천주교, 기독교의 교리는 결국 같거나 비슷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천주교에 불리한 방향으로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면 교파, 교리, 진리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음의 평화를 위한 길이라면 굳이 특정종교에 머무르려 하지 않고 무엇이건 마다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명상, 좌선, 요가, 기수련 등에 기웃거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이 사실은 왜 쉬는 신자와 이탈 신자가 늘어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이 밖에도 뉴에이지 상품이 범람하는 매스컴과 인터넷 문화, 젊은이들 사이의 이혼율 급증 등의 측면에서도 문제요인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나 지면 관계상 생략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영향을 받은 세대들에게 천주교는 별로 매력 없고 부담스럽기만 한 종교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는 점만 언급해 둔다.

종합해 보자. 한마디로 오늘의 대세는 천주교와 개신교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단순히 선교전략의 차원에서만 대응해 봐야 별로 성과를 보기 어려운 형국이다. 전체 판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 십년간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인물로 꼽히던 김수환 추기경이 요즈음 6∼7위로 밀려나 있고, 베트남 승려 틱낫한의 책이 100쇄 이상을 넘도록 날개돋힌 듯이 팔리는 이 흐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차동엽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