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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살리자] (8) 고령화 사회 현실과 대안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3-07-20 수정일 2003-07-20 발행일 2003-07-20 제 235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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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떠맡는 ‘공적부양체계’ 필요
노인문제 심각성 인식 부족, 예산도 미비
소외감 해소 등 정신적 측면 사목 시급
서울 상계동에서 홀로 살고 있는 ㅈ할머니는 오늘도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있을 새벽 4시께 눈을 떴다. 번화가가 있는 곳까지는 예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 걸음으로 3, 4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데다 조금이라도 늦을라치면 오가는 사람들의 눈치로 번거로울 뿐 아니라 근래 들어 재활용품을 주우러 나오는 이들이 적잖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즘은 해가 일찍 뜨는 데다 날씨가 춥지 않아 다행이다. 겨울이면 1시간만 돌아다니다 와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조그만 손수레로 모아온 재활용품은 한 달 단위로 고물상에 넘기게 된다. 그래봐야 좀체 20만원을 넘기기 힘든 수입이다.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데 사는 날까지는 어떻게라도 살아야지요』

이렇게 말하는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회한 가득한 표정이 스친다. 할머니도 가족이 없는 건 아니다. 외롭게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족 생각이 나지 않는 게 아니지만 자신을 짐으로 여기는 자식들 앞에서 초라해지기 싫어 혼자 지낸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노인 현실과 문제점

ㅈ할머니처럼 가족이 있어도 찾아갈 수 없고 힘든 노년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게 오늘의 현실이다.

지난 2000년에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7%를 넘어 유엔이 규정한 「고령화사회」에 돌입한 후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로 향해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일반화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이런 현실은 통계상으로도 잘 나타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노인 단독세대 비율이 1978년에는 19.8% 수준이었으나 지난 1998년에는 53%로 두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의 조사결과에서도 자녀가 있으나 같이 살지 않는 노인이 53.1%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 7월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이면 노인인구가 14.4%로 고령사회가 되고 2026년이면 20%로 초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선진국이 고령화사회 진입에서 고령사회가 되기까지 길게는 100여년, 짧아야 20여년 걸린 것에 비해 한국은 19년만에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초고령사회가 되는데는 7년밖에 안 걸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사회가 고령화되는데 비해 사회적 관심과 대비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직 노인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노인복지예산이 전체예산의 0.35%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는 노인에 대한 우리나라 공적 부양체계의 열악함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오늘날 일반화되고 있는 핵가족화 및 가족해체 문제와 결합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력을 비롯해 사회적 위치를 지니지 못한 노인들로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가 힘든 게 또 다른 현실이다. 이로 인해 노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문제는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현상도 노인문제의 다른 면이다. 노년에 배우자와 결별하고 새로운 연인을 찾는 「황혼 이혼」이 급증하는 것도 이런 문제 가운데 하나다.

영국의 경우 20년 이상의 결혼생활을 청산한 뒤 재혼하는 사례가 급증해 10년 전 18%에 불과했던 노인들의 재혼율이 현재 28%에 이르고 있다. 또 미국 연방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이혼한 노인의 수가 33%이상 늘어나는 등 비슷한 추세를 보여 황혼 이혼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와 함께 노인학대의 급증도 노인문제의 아픈 단면을 보여준다.

까리따스 노인학대상담센터가 전국 11개 노인상담전화를 통해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전화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는 모두 680건(중복 신고자 포함)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8건에 비해 200% 이상 증가했다. 신체적 학대의 경우 피해자가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심하게 구타당하는 사례도 많아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노인문제 전문가들은 고령화사회에 따라 노인문제가 가족문제 뿐 아니라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날 것에 대비해 이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한다. 이들은 노인문제에 대한 효율적 접근을 위해 가정-지역사회-국가가 연계된 종합적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노인을 위한 사회적 기반은 열악하다. 2001년 현재 135개 시설에 수용가능한 노인수는 약 1만명으로 전체노인인구의 0.35%에 불과한 실정이 이같은 현실을 대변해준다. 이는 4∼7%에 이르는 OECD 다른 국가들에 비해 10∼20분의1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 국가 차원의 노인복지 수준은 교통수당 지급, 무료경로식당 운영, 경로당 난방비 지원 등 생계보호와 모이는 장소 제공 등 단순한 하드웨어적인 것에 머물고 있다. 노인들에 대한 국가의 시각이 이렇다 보니 사회참여 기회 제공이나 여가선용 프로그램 확충 등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 여가프로그램을 비롯해 사회복지?보건?의료 등에 대한 투자는 거의 종교계를 비롯한 민간에 맡겨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적잖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교회의 사목적 대안

독거노인의 증가와 이웃간 대화 단절의 심화로 지역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교회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필요성을 더해갈 것이다.

이런 현실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노인을 위한 각종 정책을 노인들의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방향으로 재정립하는 게 시급하다.

이와 함께 고령화 진행 속도에 맞춰 노인들의 사회적 측면은 물론 정신적 측면에 관심을 갖고 사목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인사목의 한 지표라 할 노인대학 현황을 살펴보면 서울대교구의 경우 100여개 본당에서 운영하고 있다. 또 독거노인 생활비 지원, 도시락 배달, 말벗되어주기 등 과거에 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인사목에 나서고 있으나 사회적 변화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본당을 비롯한 노인 주간보호센터, 양로원 등 시설 중심의 서비스 제공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재가노인 등 다양한 노인층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등 다각도의 사목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노인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더 이상 노인문제를 개인이나 가족 차원의 문제로만 남겨 두지 말고 사회 전체가 책임지는 「공적 부양체계」가 다져질 수 있도록 대사회적인 역할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예방차원의 서비스를 위해 교회의 역할이 더 증대되고 있다. 준비 없이 노년을 맞은 노인세대의 고독감과 역할 상실에서 오는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힘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인들이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지닐 수 있도록 노인들에 대한 정신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서울대교구 노인사목 담당 최성균 신부는 『노인사목의 핵심은 이들에 대한 꾸준한 사랑과 관심』이라고 강조하고 『본당이나 지구에서 노인문제에 얼마만큼 관심과 의지를 갖느냐에 따라 노인문제 해결의 성패가 좌우된다』며 교회가 고령화사회에 대한 준비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한다.

따라서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사목에서 탈피해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지역 여건에 맞는 차별화된 노인사목을 모색해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 시대 교회에 주어진 또 하나의 시대적 소명이다.

■ 서울대교구 노인사목 담당 최성균 신부

“회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

최성균 신부
『노인문제에 제대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노인대학이나 복지시설을 통한 복지측면의 접근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종합적인 사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처음으로 지난 2001년부터 노인사목을 전담해오고 있는 서울대교구 노인사목 담당 최성균 신부는 노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노인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역설한다.

최신부는 독거노인 비율 등 노인을 중심으로 한 각종 통계가 예상외의 빠른 증가를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노인문제를 등한시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노인문제는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모두가 맞을 문제라는 생각에서다.

『노인문제에 투자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핵가족화와 가정해체 등의 사회문제와 얽히면서 노인문제가 갈수록 복잡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최신부는 전교회적 차원은 물론 각 본당에서도 현실에 맞는 노인사목 방안을 차근차근 마련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넓혀지는 사목의 영역은 그만큼 신앙의 열매를 거둬들일 하느님의 영토도 넓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현실을 일궈 나가는데 밑거름이 될 때입니다』

최신부는 지난해 4월부터 매주 월요일이면 자신이 맡고 있는 종로성당을 노인들에게 개방해 가정문제 상담을 비롯 이.미용 서비스, 무료 건강검진, 취미활동 공간 마련 등 10여가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교회가 지역 노인들에게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노인주간보호시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몸소 실천에 옮기며 노인사목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노인문제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입니다』

노인 단독세대 비율이 급속도로 높아져 50%를 넘어선 현실, 최신부는 노인사목에 대한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