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가정을 찾아서] 울산 성종범-지영신씨네

곽승한 기자
입력일 2003-06-15 수정일 2003-06-15 발행일 2003-06-15 제 2352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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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많은 나무에 바람도 없어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생각대로, 순리에 따라 하나하나 선물을 저에게 내려주셨다』는 성종범-지영신씨 부부와 아이들. 큰 아들은 군복무중이라 함께 하지 못했다.
바닷바람 잔잔하게 불어오는 울산 태화동에서 만난 성종범(토마스 아퀴나스·53·부산교구 울산 복산본당)-지영신(크레센시아.44)씨 가족은 참 특별하면서도 아름다운 가정이었다. 스물 세살 첫 아이부터 다음달 출산을 기다리는 막내아이까지 자녀가 일곱명이나 된다는 것도, 초등학생부터 학원이다 과외다 내몰리는 세상에 무엇보다도 신앙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자녀들에게 그 씨앗을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그랬다. 그들에겐 어쩌면 「세태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이란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가족에게서 묻어나는 따사로운 정과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품처럼 넉넉하고 따뜻하기만 하다. 여덟 식구의 모습에서 진정한 가정의 의미와 소중함을 짚어보게 된다.

성종범씨네 현관을 들어서니 벽 한가운데 걸린 커다란 십자고상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가족 기도방으로 쓰고 있는 아담하고 소박한 거실은 가족사진과 성모상, 갖가지 성가정화가 가득 채우고 있다.

『성가정이라뇨? 부끄럽습니다. 다만 성가정을 본받아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죠. 아이 일곱은 모두 하느님의 선물이자 도구입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인데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태가 안타깝습니다』

당연한 일 이상하게 봐

인사를 끝낸 성씨 부부가 이층을 향해 『얘들아』하고 외치자 곧 거실이 가득 찬다. 띠동갑 동생의 엄마 노릇을 톡톡히 하며 선교사를 꿈꾸는 둘째 아람(마리아·20)이를 비롯해 이 집안의 듬직한 파수꾼 셋째 다윗(다윗·15), 누구보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넷째 유딧(유딧·12), 수녀가 되겠다는 다섯째 사라(사라·11), 그리고 온 집안을 통통 뛰어다니며 그야말로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귀염둥이 막내 한나(한나·8). 하나같이 웃음 가득한 밝은 모습이 보는 이까지도 즐겁게 만든다. 장남 정현(프란치스코·23)씨는 현재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중이란다.

저렇게 아이들이 많으면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 한데, 성씨 부부는 지금껏 살아오며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고 말한다.

『특별히 해준 건 없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히 채워주지도 못했고, 남다른 자녀교육 비결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시고 이끌어주시는 대로 따를 뿐입니다』

처음엔 둘만 낳아…

모든 걸 하느님의 은총이라 강조하며, 그들의 자녀 또한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기뻐하는 성종범씨 부부. 성씨도 처음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 때 우연히 네오까떼꾸메나도(neo-catecumenado, 새로운 신앙여정 운동?초대교회 공동체 운동) 선교사의 「생명」에 대한 강의를 아주 감명 깊게 듣게 되었다. 무릎을 탁 치는 듯한 가르침. 아이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선물이며, 가정은 하느님이 주신 작은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부부는 온전히 자신들을 바쳐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배운 대로 실천하자 곧 다윗이 태어났고, 3년 후 유딧이 태어났다. 네 명이 되자, 좀 많은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두 아이가 더 태어나자 빠듯한 살림에 아이 여섯을 키운다는 것은 성씨 부부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신앙인의 양심으로 잉태된 생명을 지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을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생명의 문을 조건 없이 열었다. 주어지는 대로, 하느님의 뜻대로 그렇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일곱번째 새 생명을 기다릴 수 있게 된 것은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고백하는 성종범씨. 그의 얼굴에는 그 많은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어려움보다는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는 뿌듯함이 배어 있을 뿐이다.

자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해야할 일이 많다는 것과도 통한다. 신발을 사도 여섯 켤레, 택시를 타도 두 대. 성당에 갈때도, 동네 슈퍼에 갈때도 8명 모두가 함께 나선다. 이젠 근방에선 성씨 가족 6남매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

『주위 사람들에게는 구경거리일지도 모르지만, 제게는 가장 큰 행복이자 자랑거리입니다. 우리 아이들 모두 하느님의 넘치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미개인, 원시인 소리도 듣지만 우리 가정엔 행복이 넘쳐난답니다』

주어진 것에 만족

성씨는 『가진 것이 많지는 않아도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아끼고 절약하며 불만 없이 살아간다』며 『큰 욕심이 없고, 세속의 기쁨을 좇지도 않기에 오히려 불평도 없고 가족 사이의 사랑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알뜰살뜰 아끼고 절약하면서 성씨 부부는 최근 2층짜리 단독 주택을 마련했다. 거의 거저다시피 집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이웃의 고마움도 잊을 수가 없다.

『제 힘으로 갖게 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생각대로, 순리에 따라 하나하나 선물을 저에게 내려주셨습니다. 얼마전부터는 마산교구 각 본당 신자들을 대상으로 생명의 소중함과 성가정의 아름다운 모습에 대한 강의를 나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부족한 제게 당신의 뜻을 이웃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기회도 허락해 주셨죠』

인터뷰 도중 성씨네 아이들이 하나둘씩 거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족기도를 바칠 시간이란다. 성씨를 중심으로 손에 손을 잡은 가족이 빙 둘러섰다. 옹기종기 모여든 아이들을 보면서 성씨는 또 하나의 기쁨을 얻는다. 『오늘 기도는 누가 먼저 시작할래?』라는 아빠의 말에 서로 하겠다고 손을 드는 아이들. 사랑이 넘처나는 성씨 가족의 모습에는 「그리스도의 참 생명」이 부활하고 있었다.

갖가지 이유로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거부하는 요즘 사회에서 자신의 안락을 뒤로 한 채 생명수호의 산증인이 되어 살아가는 성종범-지영신씨 가정. 이들 가정은 지난달 24일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로부터 제2회 「가톨릭생명지킴이상」을 받았다.

곽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