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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살리자] (6) 급증하는 이혼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3-05-25 수정일 2003-05-25 발행일 2003-05-25 제 234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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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부부.자녀 모두에게 상처뿐
성격차이로 “도장찍으면 그만”팽배
이혼은 불가피…사목적배려 있어야
TV 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현실에서 부부 사이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드라마로 재구성해 보여주고 화해 조정하는 클리닉 과정을 통해 부부재발견 및 건강한 가정을 위한 공존의 잣대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해마다 최고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하루 평균 840쌍이 결혼하고 398쌍이 이혼한다. 혼인율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혼인 이혼 통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 중에서도 2위의 이혼율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50세 이상의 황혼 이혼율이 크게 늘고 있다. 4년차에서 14년차 이하의 부부 이혼율은 평균적으로 낮아진 반면 결혼 15~19년차 부부의 이혼율은 10년 전에 비해 7배나 상승했다.

이혼은 이제 내 가족, 이웃 등의 생활 깊숙이 번져 있다. 이제는 이혼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논란보다 어떻게 하면 후회없는 이혼을 잘 할 것이냐를 이야기하는 게 옳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정도로 이혼은 흔한 일이 돼 버렸다.

예전과 달리 이혼한 사람은 가족과 사회에 「죄인」으로 치부돼 이혼사실을 감추며 고개숙이고 사는 경향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혼에 대한 신자들의 생각조차도 관대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교구 2002년 신앙생활실태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5.8%가 사정에 따라 이혼이 가능하다고 응답, 이혼은 절대 안된다는 응답자 42.5%를 훨씬 넘어섰다.

이혼율이 급증한 원인으로 우선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성과 자의식, 법적 평등성의 향상을 들 수 있다. 또한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가부장제 인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남성과 양성평등의 사회흐름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는 여성 사이에는 틈이 더욱 커지고 있다. 급증하는 황혼 이혼의 경우에는 경제적 문제가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이혼의 원인으로 성격차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이어 가족간 불화, 경제문제, 배우자 부정 등의 순이다. 하지만 그 성격차의 근원에는 무엇보다 부부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른다는 현실이 존재한다. 교회 내 상담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르면 우리가 단순히 성격차로 치부하는 일들이 사실은 인식의 차이와 의견의 대립이 조정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실제 부부들은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수용하고 대화 등을 통해 의견을 조정하기 위한 노력, 이에 대한 실천방법을 거의 교육받지 못하고 있다.

한 가족심리치료 전문기관에서 수합한 이혼 사례로 서울에 거주하는 맞벌이 28세 동갑부부는 신혼여행을 다녀온지 정확히 10일만에 합의이혼을 했다. 신혼여행후 가족들의 선물을 사면서 의견이 맞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아내는 이렇게 사소한 금전지출까지 간섭하는 남자와는 평생 같이 살 수 없다고 주장했고, 남편도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여자와 살 수 없다고 대응했다. 도장 한번 「꾹」 찍으면 흔한 유행가 가사처럼 「님」이 금세 「남」이 되어버린다. 혼인이 무엇인지, 왜 가정을 이루는 지, 혼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과 이해가 필요한지 크게 간과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혼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개신교회에서 운영하는 한 가정상담기관이 지난해 상담자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71%가 「이혼한 것을 후회한다」고 답했으며, 「이혼 후 행복합니까」에 대한 질문에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이혼이라는 극단 앞에서는 이혼하는 당사자들과 자녀, 주변가족, 그들이 속한 공동체 모두가 안정을 잃고 상처를 입는다. 특히 자녀들에 관한 한 잘못없는 이혼은 없다.

그리스도인은 부부간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그리고 자녀출산과 교육을 위해 혼인한다. 단순히 육체적 정신적 일치만이 아니라 둘이 온전히 하나의 인격을 이루는 혼인은 영속적이며 인간의 힘으로 부부를 갈라놓을 수 없다.

독일이나 여타 선진국에서는 의무적인 혼인교육을 받아야 혼인신고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혼인」이라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교육을 지원하는 곳으로 가톨릭교회가 유일하다. 결혼 전에 「가나강좌」 혹은 「약혼자 주말」을 참여해야만 본당 사목자들은 혼인성사 집전을 허락한다.

기혼자들의 관계 향상을 위해서는 각 교구 및 기관단체별로 실시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자신과 상대방을 내적·외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대화하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MBTI(자기보고식 성격유형지표), 에니어그램, 부부대화법 등의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또한 결혼한 부부들의 더 깊은 사랑과 풍요로운 결혼생활을 돕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ME(Marriage Encounter)와 다양한 부부피정 등이 있다.

그러나 혼인 전과 이혼과정에 있는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일고 있다. 교구별로 미혼젊은이들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돕는 「선택」(Choice)을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있지만 혼인에 관한 직접적인 교육 및 상담 프로그램으로는 부족하다. 결혼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직접적인 프로그램으로는 ME의 전 단계인 약혼자 주말 정도가 있으며 이것도 서울대교구 외에는 간헐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주일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결혼 전까지 교회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또 이혼 과정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교구나 각 기관단체에서 운영하는 상담 정도만이 지원되고 있다.

사제 및 수도자의 혼인생활에 관한 적극적인 의식부족과 재량의 차이로 적극 다가서는 배려가 골고루 이뤄지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교회 내에서 혼인 전?후 교육과 상담 등을 전담할 전문인력 양성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김동춘 신부는 『본당 차원에서 이혼 전 예방교육과 후속프로그램, 상담 등이 적극 실시되는 것은 현 여건상 힘들다』고 지적하며 『일차적으로 예방 차원에서 기존 가정관련 사도직단체나 본당 사도직 안에서 실시하고 있는 가정성화 관련 프로그램들을 적극 활용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신자들의 의식전환과 구체적 노력도 시급히 요구된다. 우리는 대학을 가기 위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수년 혹은 수십년의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가정과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한 노력과 투자는 너무 인색하다. 바쁘고 힘들지만 결단이 필요하다. 결혼했다고 해서 행복이 그냥 밀려오는 것은 아니다.

■ ‘성격차 아니라 의견차’ 인식관계 개선한 강수길-오미호씨 부부

“사랑에도 노력 필요”

7년여 불화, ME 수료후 더욱 신뢰

올해로 결혼 30주년을 맞은 강수길-오미호씨 부부.
올해로 결혼 30주년을 맞은 강수길(그레고리오?60?서울 송파동본당)-오미호(엘리사벳?55)씨는 소문난 잉꼬부부다. 주변 사람들의 표현에 의하면 남편이 부르는 아내 이름이 「사랑해」일 정도라고.

그러나 이들에게도 치열히 싸우던 시절이 있었다. 이들은 다른 가정에 비해 경제적 여유도 있었고, 고부갈등이나 종교적 대립도 없었다. 남편은 좋은 학벌에 언제나 성실, 친절한 소위 일등 신랑감이었고, 아내 또한 소위 말하는 학벌과 외모 집안 좋은 성격을 고루 갖췄다.

그러나 이들은 결혼 3개월부터 근 7년이 넘도록 부딪히면 싸웠다. 민주적인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오씨는 강씨와 생각이 틀릴 때면 자기 의견을 얘기하고 했는데 강씨는 그럴때마다 불같이 화를 냈다. 전형적인 가부장제 안에서 무조건 순종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강씨는 「아내는 무조건 남편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씨가 말할 때마다 『또 덤빈다』라는 말을 일관했으며, 「그따위로 할꺼야」 「돼먹지 않았어」 하는 말들로 고함을 질렀다. 오씨는 매일 이혼을 생각했지만 남들 보기에 창피하고 또 친정부모님께 죄송스러워 힘든 티를 낼 수도 없었다. 게다가 강씨는 아내의 직장생활도 막았으며, 혼자 외출도 못하게 하는 의처증 증세도 보였다. 그래도 강씨는 강씨대로 아내가 너무 사랑스럽고 귀하기 때문에 자신이 희생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행동이 최고인 줄로만 알았다.

부부는 7년을 맹렬히 싸운 끝에 이혼서류를 꾸며 도장을 찍었다.

파경에 이른 이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계기는 ME(Ma rriage Encounter)주말 참가. 주변사람들의 권유로 부부일치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인 ME를 다녀온 부부는 그곳에서 『아 저 사람이 성격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와 의견차이가 있었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의견을 조정하고 인식을 포용하는 대화를 시작했다. 한가지 한가지 행동의 오해가 풀리고 신뢰가 싹텄다. 그 신뢰의 구심점이 신앙이 되자 더욱 탄탄해졌다.

강수길-오미호씨 부부는 ME주말 봉사자로 20여년간 봉사해오고 있다. 또 오씨는 순교자현양위원회 사무총장과 본당 총회장을 맡아 성당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봉사에 나서는 남편의 가장 큰 후원자다.

부부는 지금도 두사람의 성격이 변하거나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한다. 단지 의견차와 인식의 차를 나누고 함께 가치판단을 하며 결정을 한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몸에 완전히 배었다고.

강씨가 어제 퇴근해보니 오씨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보였다. 피곤한 하루일과를 보내고 돌아왔지만 반기지 않는 아내를 보니 순간 화가 나려했지만 그는 『당신 왜 화내는 거야』라고 소리치는 대신 『엘리사벳, 오늘 안좋은 일이 있어나봐요』라고 부드럽게 위로하며 다가섰다.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