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친환경공동체 그 현장을 가다 (2) 경기 고양 해냄공동체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3-05-18 수정일 2003-05-18 발행일 2003-05-18 제 234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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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도 재활용하고 장애우도 돕고
자활위해 98년 시작, 환경살리기 열풍에 한몫
지체장애우·결손가정 아이.노인 등 56명 생활
결식아동 돕기 등 지역민과 나눔에도 솔선
자원봉사자들이 해냄공동체 마당에 쌓여있는 쓰레기들을 분류하고 있다.
지금도 시골에 가보면 「기회자 장삼십, 기분자 장오십(棄灰者 丈三十, 棄糞者 丈五十)」이라는 금표를 찾아 볼 수 있다. 「재를 버리는 자는 곤장이 서른대요, 똥을 버리는 자는 곤장이 쉰대」라는 뜻이다. 재나 똥이 다 논밭에 유용한 거름자원인데 그것을 함부로 버리는 행위를 죄악으로 본 것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모든 자원을 쓰고 재활용하며 자연의 순리대로 땅의 소산은 땅으로 순환시키는 삶을 살아왔다.

현재 우리 국민이 평생을 살며 배출하는 쓰레기는 약 55톤. 쓰레기 종량제 이후 줄긴 했지만 아직도 버려지는 쓰레기 중에는 재활용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이 쓰레기들은 땅 속에 묻혀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지만 재활용하면 무한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갖는 소중한 자원이다.

570여곳 돌며 수거

경기 고양시의 해냄공동체(원장=김태회 도미니코)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5m 높이로 쌓여 있는 거대한 캔 더미였다. 모두 고양시와 서울 시내에 버려진 것을 해냄공동체 식구들이 수거해 온 것이다. 김원장과 공동체 식구들은 매일 저녁 트럭을 몰고 고양, 파주, 서울 일대 노래방과 학교, 건물 및 호텔 570여곳을 돌며 재활용품을 수거한다. 흉물스런 쓰레기로 방치될 뻔한 것들이 이곳에서 분류돼 재활용 업소로 옮겨진다. 여기저기 버려진 장판, 깨진 병, 휴지 조각들이 널려 있어 지저분하고 악취가 코를 찌르지만 공동체 식구들에게는 살림 밑천이나 다름없다.

해냄공동체는 쓰레기 재활용을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지체장애인, 결손가정 아이들과 노인 56명이 생활하는 공동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장애인과 노인들은 대부분 사회복지시설에서도 수용대상이 아니라며 천대받고 내 쫓긴 이들. 몸이 성하지 않아 병원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하는 장애인과 노인들이 대부분이어서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한 달에 천 여 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공동체는 쓰레기 재활용을 통해 얻는 600∼700만원의 수입과 김원장의 사재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공동체의 자활을 위해 98년부터 시작한 쓰레기 재활용이 지역사회에서 환경 살리기 열풍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사회의 울타리 밖에서 맴돌던 공동체 식구들이 시작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열풍이 거세다.

환경·인성교육 한창

지난 5월 10일 오전. 숙소로 사용하는 해냄공동체 거실이 문산종합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김태회 원장의 환경?인성 교육이 한창이다.

김원장은 쓰레기통 안에서 라면봉지, 휴지, 세제통 등을 하나씩 꺼내 보이며 재활용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 화장실에서 나온 이 휴지를 보자. 너희들은 더럽다고 버리지만 우리 식구들은 이것도 다 모아서 재활용하고 있어. 비록 1kg에 몇 백원이지만 우리에겐 큰 재산이야. 지금부터 밖에 나가서 병과 캔 분류작업을 하게 될거야. 여러분들이 아무 생각 없이 버린 것들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꼭 생각하고 함께 작업 했으면 좋겠어』

교육을 마친 학생들은 마당으로 나가 주어진 역할에 따라 병을 음료수병, 양주병, 맥주병 등 종류별로 나눠 컨테이너에 싣고, 다른 조는 쓰레기더미에서 캔만을 수거해 분류하고 있다. 철과 알루미늄 캔을 분류하는 기계는 해냄공동체 장애인이, 캔을 옮기는 작업은 학생들이 맡아 한다.

학생들을 인솔해 음료수병을 분류하고 있는 한 교사는 『환경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고자 공동체를 방문했다』면서 『비록 궂은 일이지만 오늘 하루 작업을 통해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이 얼마나 소중한 자원이 되는지, 그리고 쓰레기를 통한 환경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캔 분류 작업을 하고 있는 김영수(베드로?18)군도 『그저 시간 때우기로만 생각하고 이곳을 찾았는데 산 같이 쌓여 있는 캔들이 자원이 되고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 보탬이 된다는 강의에 마음을 고쳐먹었다』면서 『다음에는 성당 주일학교 학생들과 조를 짜 다시 방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봉사활동 점수를 따기 위한 목적으로 공동체를 방문했던 학생들은 이곳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재활용쓰레기를 분류하며 환경의 중요성과 봉사의 참 의미를 깨닫고 개인적으로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청각 교재와 강의를 통해 환경교육을 받고 쓰레기 재활용 실천을 위해 공동체를 방문하는 초?중?고등학교가 총 32개. 인근 본당의 레지오 단원과, 군인, 회사 동호회원 등을 합치면 연인원 4만 여명이 공동체를 찾는다. 공동체에서 4시간 가량 이뤄지는 환경?인성교육과 실습은 군부대 군기교육?신입사원 면접 프로그램으로도 사용될 정도다.

지역사회 인식 달라져

지난 96년 이곳에 공동체가 자리를 잡을 때는 주위의 반대가 많았다. 장애인 시설이라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멸시하는 사회 풍토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 98년에 쓰레기 재활용을 시작한 후에도 미관상 좋지 않다며 주민들의 냉대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해냄공동체가 지역사회를 위해 쓰레기를 수거하고 재활용하며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애쓰는 모습에 주위의 시선도 차츰 달라졌다. 현재 고양시는 재활용한 후 남은 쓰레기를 버릴 수 있도록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형 아파트 단지의 협조로 재활용품을 손쉽게 수거할 수 있게 됐다. 또 공동체의 위상도 높아져 고양시 환경감시단의 일원으로 참여, 시내 주요 하천 쓰레기 수거, 불법 쓰레기 매립 단속 등의 활동을 자원봉사 온 학생, 군인과 함께 하는 등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환경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경기지역 푸드뱅크(식품의 생산?유통?판매?소비의 각 단계에서 발생하는 남은 먹거리들을 식품제조업체나 개인 등 기탁자들로부터 제공받아 이를 필요로 하는 복지시설이나 개인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식품지원 복지 서비스) 사업에도 참여해 음식물 자원의 낭비를 막고 공동체 식구들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 지역 내 독거 노인과 결식아동을 돕고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과 행동

『4만 명의 방문객들이 모두 우리 공동체 식구입니다. 손으로 냄새나는 캔을 줍고 분류하고 장애인들과 부대끼는 것이 살아있는 환경 교육입니다』

현재 해냄공동체는 교육관 화재로 50여 명 이상의 인원이 교육받을 수 있는 공간이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하지만 김원장은 거액의 후원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재활의지를 가진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눈에 보이는 「환경」 보호와 보존의 차원을 넘어 장애 등 여러 이유로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다른 의미의 「환경」을 만들어 가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 ‘장애우들의 아빠’해냄공동체 김태회 원장

“환경 오염 줄이면 지체장애도 줄 것”

해냄공동체 김태회(도미니코.46.서울대교구 봉일천본당) 원장은 1996년 9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118-1 야산 기슭에 텐트를 세우고 장애인 6명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식구는 계속 늘어 현재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 결손가정 자녀, 지체장애인 등 56명이 생활하고 있다. 김원장 자신도 컨테이너 옆 가건물에서 장애인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기거하고 있다.

『장애인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고 싶었습니다. 쓰레기 재활용은 단순하지만 꾸준히 하면 지체를 극복할 수 있는 재활 프로그램 역할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 98년 선천성 다운증후군에 심장병까지 않고 있던 신생아 「예린」이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시작한 쓰레기 재활용은 해냄공동체 식구들이 무엇을 해야하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준 중대한 계기였다.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너무도 열심히 일하는 식구들을 볼 때마다 가슴 뿌듯합니다. 이제는 자신의 역할을 남에게 시키면 화를 낼 정도예요』

시의 환경감시단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김원장은 『환경오염이 지체장애를 일으키는 한 요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면서 『쓰레기 재활용을 통해 토양 및 수질오염을 줄인다면 지체장애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장애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아빠」로 불리기를 너무도 좋아하는 김원장. 해냄공동체를 통해 환경을 살리고, 장애인들의 버팀목으로 거듭나기 위해 오늘도 김원장은 새벽녘 시내 어딘가에서 쓰레기 더미와 씨름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