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가정을 찾아서] 논산 정연봉-위선희씨네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03-05-11 수정일 2003-05-11 발행일 2003-05-11 제 2347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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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성가정 되길 빌며…
하루 시작을 묵주기도 5단으로
저녁엔 온가족 둘러앉아 성서봉독
6남매 별탈없는 성장 “은총이죠”
정연봉-위선희씨네는 「하느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성가정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하루를 시작한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성모송을 암송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당장 엄마 위선희(리드비나.43.군종교구 삼위일체본당)씨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잠을 쫓기 위해 온 가족이 양팔을 들고 가족기도에 들어갔건만 오늘도 기도 중에 깜빡 졸고만 둘째 해인(효임 골롬바.15)이와 넷째 해미(인덕 마리아.11)는 기도를 마치고 묵주기도 5단을 더 바쳐야 하는 상(?)을 받게 됐다.

『아빠가 계셨으면 용서해주셨을 텐데…』 투덜대면서도 둘은 이내 당연한 것처럼 둘만의 기도시간으로 들어간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반을 조금 넘긴 시간. 정연봉(하상 바오로.47.대령).위선희씨 가정의 하루가 시작되는 모습이다.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떨어져 지내고 있는 아빠 정씨도 보이지는 않지만 같은 시간 「하느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성가정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 터였다. 고등학교 1학년인 첫째 해정(효주 아녜스.16)이와 중학생인 둘째와 셋째 해리(정혜 엘리사벳.14)가 학교에 가고 나면 엄마와 남은 넷째, 다섯째 해진(희순 루시아.7)이, 그리고 막내 해천(요셉.3)이는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어김없이 성당으로 향한다.

『하느님께서 저희들에게 베푸시는 것에 비하면 너무도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저희 가족의 마음이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벌써 몇 년째 이어오고 있는 정씨네 가족의 아침 가족기도는 그 자체로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표징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이들이 글자를 익히면서 저녁때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하는 성서읽기도 아이들로 하여금 신앙의 맛을 들이게 하는데 적잖은 몫을 하고 있다.

3년째 육군 2군사령부 공병부 과장으로 복무 중인 아빠 정씨의 근무지가 대구라 충남 논산에 살고 있는 가족들과는 기껏해야 한달에 한두번 만나는 게 고작이지만 정씨 가족을 어느 가정 못지 않은 아름다운 성가정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기도의 힘이 아니고는 설명하기 힘들 듯했다.

6남매를 키우는 정씨 부부에게 주위에서는 셋째를 낳은 후부터 「야만인」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나 정씨가 한곳에 머물기 쉽지 않은 군인 신분이라 이런 주위의 말은 걱정 이상의 의미를 지닐 때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내조가 절대 필요한 위치임에도 위씨는 아이들에게 매달려있는 시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는 것도 성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혼 전 수도자의 길을 꿈꾸기도 했던 위씨와 정씨의 부부로서의 만남은 또 다른 성소의 길임에 다름 아님을 돌아보게 한다. 군문에 발을 들여놓은 후 13번이나 부대를 옮겨 다니는 가운데서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만큼은 하느님이 맡기신 몫이라는 생각에 아이를 낳을 때마다 잠시도 누구에게 맡긴 적 없이 손수 길러냈다. 이러다 보니 원주에 근무할 때 낳은 첫째를 비롯해 안양에서 본 둘째, 대전에서 난 다섯째 등 아이들이 태어난 곳이 제각각이라 팔도가 아이들의 고향이 되고 말았다.

『계획은 무슨 계획이겠어요. 주시니까 낳는 거지요』

이렇게 말하는 정씨 부부도 고민이 적지 않았음을 털어놓는다. 막내를 낳을 당시 위씨의 나이 마흔, 의사는 기형아일 확률이 높다며 낙태를 권했다. 그러나 기형아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으로 낳아 얻은 아이가 건강하기만 한 해천이였던 것이다.

부인 위씨를 통해 결혼과 함께 신앙에 눈을 뜨기 시작한 정씨는 훈련이나 출장을 가더라도 어떻게든 가장 가까운 성당을 찾아 주일미사를 꼭 드릴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주일미사만 근근히 봉헌하는 「초보 신자」라고 쑥스러워 한다.

아빠 정씨가 외박을 나올 때마다 인근의 성지를 찾아 떠나는 성지순례도 이들 가정을 지키는 든든한 주춧돌이 되어온 지 오래다. 나들이를 성지로 떠나면 아이들의 신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부부의 생각으로 이어오고 있는 이런 순례 덕에 아이들은 거의 안 가본 성지가 없을 정도다. 이러면서도 정씨 부부는 자신들의 가정을 보통보다 조금 더 열심한 「60점짜리 성가정」이라며 부끄러워한다.

이런 부부의 마음씀씀이 때문일까, 이들 부부가 가는 전후방 곳곳에서는 새로운 신앙생활의 모습이 꽃피우곤 했다. 50사단에서 대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군에서 처음으로 「병사 레지오」를 만드는가 하면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본당이나 공소에서 병사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 이들의 신앙생활을 도왔다. 또 군이라는 특성상 위축되기 쉬운 주부 레지오나 성모회 등 단체 활동을 활성화시켜 신자군인들의 신앙생활을 이끌기도 했다.

이런 주위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 때문일까, 정씨 가족을 향하는 사랑의 손길도 적지 않았다. 아이들 유치원비나 학원비를 깎아주는 것은 예사고 위씨가 출산을 하고 나서는 꼬박꼬박 음식을 해 나르며 돕기를 자청하는 신자에, 집안일을 도우려 나서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은인들이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아이들을 키워올 수 있었던 것은 돌아보면 다 하느님의 은총인 것 같습니다』

이들 부부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 가운데서는 입교를 애써 권하지 않았는데도 이들의 신앙생활 모습을 보고 스스로 믿음을 갖게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군인과 군인가족이라는 모습이 하느님께서 특별히 자신들에게 주신 십자가라고 생각하는 정씨 부부의 삶은 자신들도 모르는 새 어느덧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 듯했다.

『저희들의 삶이 잠시도 흐트러짐 없이 하느님을 우선하는 삶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이라는 성소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 있는 정씨 부부의 삶이 아름다움 이상의 감동으로 전해져왔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