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친환경공동체 그 현장을 가다 (1) 청주 가톨릭농민회 청천분회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3-03-30 수정일 2003-03-30 발행일 2003-03-30 제 234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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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농법 실천 의지로 똘똘 뭉쳤지요”
친환경농업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함께 뭉친 청주 가톨릭농민회 청천분회원들이 품앗이에 나섰다.
우리 주위에는 환경오염의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한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환경위기를 극복하고자 실천적 정화활동을 펼치는 공동체들이 있다. 이러한 공동체들의 활동은 친환경적 삶의 방식을 앞당기고 실천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나아가서는 환경공동체 의식을 앙양하는 초석이 되고 있다. 본지는 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고조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흐름에 맞춰 국내 곳곳에서 친환경적 삶을 실천하고 있는 공동체를 찾아 소개한다.

『요즘은 오리쌀이 소비자들에게 더 인기가 있다는데, 우리도 한번 바꿔볼까?』

『맛은 오리쌀이 더 좋을 수 있죠. 물갈퀴로 논바닥을 휘휘 저으면 벼 뿌리도 튼튼해지고 하니. 우렁이는 그저 잡초 제거밖에 못하잖아요』

『그도 그렇지만 오리 농법이 더 많이 알려져서 일거여. TV나 신문에서 오리쌀은 많이 선전해도 우렁이쌀은 보질 못했어』

비닐하우스 골조작업을 하던 농민들이 막 도착한 새참을 앞에 놓고 오리농법과 우렁이농법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렁이농법 쌀을 주로 생산하는 이들에게 오리쌀이 더 인기가 있다는 것은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보쌈 안주에 소주가 돌자 화제가 인근 대야산 석산 개발로 바뀐다. 마침 면에서 나온 산불조심 계도차량이 지나자 이야기에 더욱 열을 올린다. 『멀쩡한 산 깎아 내리는 건 가만히 놓아두면서 무슨 산불조심이야. 아이구 속 터져…』

청주 가톨릭농민회 청천분회원들이 품앗이에 나선 날. 고추 하우스를 짓는 회원을 돕기 위해 10여명의 분회원이 모였다. 회원들은 각자 자기 농사 짓기에 여념이 없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오면 짬을 내 한자리에 모인다.

지난 98년 설립된 청천분회는 청천면 일대에서 생명.유기농법을 하는 농민회원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설립 전부터 이 지역에는 생명농업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많았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유기농을 실험하며 생명 농법을 지속하기에는 정보를 얻거나 노하우를 쌓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고충에 공감한 8명의 젊은 농민들은 정보교환과 유기영농방법 개발 등을 위해 공동체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청천분회를 조직했다.

현재 회원 15명이 출하하고 있는 농산물은 우렁이쌀, 오리쌀을 비롯, 토마토, 고추, 머루, 느타리 버섯, 사과 등이다. 가톨릭농민회 청주교구본부를 통해 대도시 소비자들에게 공급되는 이들 농산물은 모두가 유기농 무농약으로 생산된다.

벼의 경우 종자를 소금물에서 정선한 후 목초액, 효소를 이용하여 육묘 시부터 농약을 쓰지 않으며 화학비료 사용으로 인한 토양의 산성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2년 주기로 규산질 비료를 사용하고 있다. 고추도 왕겨 태운 것, 산흙 등으로 만든 상토에서 90일정도 육묘기간을 거쳐 본밭에 이식하며,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이랑에 종이로 된 사료포대, 검은 비닐 등을 피복하여 재배하고 있다.

이 같은 친환경 농법은 매월 첫째주 열리는 월례회의에서 회원간 토의를 통해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분회는 또한 도시 소비자들을 생산지로 초대해 친환경농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분회를 방문한 서울 우리농 회원 100여명과 함께 저농약 사과를 수확하는 등 도농교류 행사도 열었다.

청천분회가 눈에 띄는 것은 젊은 귀농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분회원 15명중 귀농자가 80%이며 대부분 30∼40대로 농촌에서는 천연기념물과 같은 존재다. 서울, 청주 등 대도시에서 생활하던 이들은 무엇보다 생명농법과 친환경 실천에 대한 의지로 귀농했기에 분회 활동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젊은 귀농자들은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사회의 환경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인근 청천면 삼송리 대야산 인근 채석장 개발저지 활동.

청천분회는 지난 해 2월부터 괴산군 청천면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석산 개발 저지 주민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청천분회를 비롯한 15개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은 석산 개발로 백두대간의 줄기인 대야산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농로가 망가지고 지역주민간 갈등이 조장되는 등 환경문제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개발 저지를 위해 군청 항의방문과 현장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청천분회원들은 시위 도중 회원 세 명이 구속되었다가 석방되는 어려움도 겪었다. 현재도 이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이다.

분회장 김원래씨는 『지역사회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깨인 젊은이들이 있었기에 석산 개발을 중지시킬 수 있었습니다. 노인들만 지키고 있었다면 속수무책으로 큰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청천분회는 이밖에도 괴산군 지역에서 환경파괴 논란을 빚고 있는 괴산댐과 산업폐기장 건설 문제 등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 우리농 회원 100여명과 함께 저농약 사과를 함께 수확하는 등 도농교류 행사도 열었다.

여성분회도 분가 활동

지난 해 청천분회에서 분가한 노나분회는 청천면에 거주하는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노나」는 있는 것을 나누어 쓴다는 의미의 순 우리말. 농촌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이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친환경실천방법을 서로 나눈다는 의미로 이름지어졌다.

노나분회는 가톨릭농민회 산하 분회 중 유일한 여성분회다. 청천분회와 마찬가지로 한 달에 한 번 월례회의를 갖고 가정에서 지켜야 할 환경보호방법, 세제 안 쓰기, 무공해 비누 만들기, 유전자 조작식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청천분회는 친환경농법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농촌에 정착시키고, 환경에 대한 관심을 지역사회 전반에 불러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분회가 풀어야할 문제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역 내 환경문제에 관심을 쏟은 나머지 주업인 농업에 소홀하게 되는 결과를 낳아, 지난 해 석산 개발 반대 시위에 나섰다 구속된 회원들은 한 해 농사를 아예 망쳤다. 농촌인구 감소로 학교가 폐교하면서 자녀 교육도 하나의 문제로 등장했다.

농촌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존하고자 모인 젊은 농민들이 있기에 청천분회의 미래에는 분명 희망이 있다. 이제 단순히 친환경농법에 대한 정보만을 교환하고 상품을 출하하는 조직이 아니라 농촌 회생에 대해 뜻을 함께 하는 공동체로 발돋움하는 길이 이들의 숙제로 남아있다.

■ 청천분회장 김원래씨

“무농약 농산물 도시 소비자가 관심을 가져야”

김원래씨
올 초 청주 가톨릭농민회 청천분회장으로 선출된 김원래(루도비코.45)씨는 귀농자다.

청주에서 개인택시 영업을 하던 김씨가 이곳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사기막리에 자리를 잡은 것은 97년.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며 아내가 반대했지만 김씨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전부터 농업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습니다. 특히 생명농법으로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언젠가는 그들의 삶을 좇아 볼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귀농 초기 김씨는 충격을 받았다. 생산량을 늘리려 농약을 남발하는 이웃 농민들의 모습에 여지껏 자신이 도시소비자일 때 먹었던 과일이며 채소가 농약범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자신만이라도 무농약 농산물을 길러 내겠다고 다짐하며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었다.

현재 김씨는 머루와 채소 등을 재배하고 있다. 특히 유충이 빨리 번지는 머루의 경우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 농약을 칠 때에 비해 열 배 이상 일손이 들어간다. 그때마다 도움을 주는 것은 청천분회원들.

아직도 초보농민이라며 회장 직도 부담이 간다고 말하는 김씨. 하지만 소비자들이 친환경.친생명적인 농산물에 더욱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유기농, 무농약 농산물이 좋긴 한데 비싸다고 기피하는 소비자들이 있답니다. 그럴때면 참 힘들어요. 우리 농민들이 건강하고 깨끗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