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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뉴에이지 문헌 해설 - 뉴에이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성찰 (4) 뉴에이지, 그리스도교와 무엇이 다른가?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03-16 수정일 2003-03-16 발행일 2003-03-16 제 2339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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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은총 배제한 인간 깨달음.노력으로 신격화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인격적 하느님 사랑 전적으로 부정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영지주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인격적 하느님과의 관계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우주적 그리스도는, 그의 지체, 즉 교회의 다양한 구성원들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다.

그들은 비인격적인 우주적 힘이 아니라 인격적 하느님의 사랑을 추구했다. 그들은 우주적 사건의 순환 구조 안에 닫혀 있지 않고 역사적인 예수에 초점을 맞췄다. 성서 안에서 보이는 하느님에 대한 교의는 뉴에이지 사상과 다르다.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은 피조물들이 삼위일체적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열망으로 인간을 창조한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다. 이는 곧 우리들의 하느님 추구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찾아나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에이지는 우주적 그리스도를 많은 사람들 안에서, 시간과 장소에 따라 되풀이될 수 있는 하나의 모범, 전형(pattern)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 그리스도는 전형이 아니라 인성과 신성을 보유하고 역사를 통해 인류에 대한 성부의 사랑의 신비를 계시하는 거룩한 인격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우리와 나누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살아있지만 이러한 생명의 나눔은 자동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도록 초대 받았다.

그리스도교와 뉴에이지의 신비체험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생활은 하느님과의 관계이다. 이는 은총을 통해 점진적으로 깊어지고 그 안에서 이웃들, 우주와의 관계에 빛을 비춘다. 뉴에이지에서 영성은 전체(Whole)와의 조화와 융합의 의식에 대한 경험이다. 그래서 「신비체험(mysticism)」은 충만한 사랑 안에서의 초월적 하느님과의 만남이 아니라 우주와 하나가 되고 거대한 「존재」의 바다에 잠기는 개인적인 체험이다.

뉴에이지와 그리스도교는 신비 체험의 비교를 통해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뉴에이지에서 정화는 불편함과 소외의 깨달음이다. 이는 「전체」 속에 잠김으로 극복된다. 회심을 위해서 사람들은 「조명(illumination)」을 경험하게 해주는 기술을 사용한다.

이런 기술과 방법들은 아래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본질적으로 인간 편에서의 노력으로 신성에로 올라가는 것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는 하느님이 피조물들, 특히 가장 비천한 존재를 향해 내려온다. 물론 배우면 유익한 영적 기술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참된 그리스도교 신비 체험은 기술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다. 그리스도교에서 회심은 성자를 통해, 성령에 순종함으로써 성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기도는 사랑의 대화이며 회심을 통해 「자기」로부터 「너」인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점점 더 하느님의 뜻에 완전하게 굴복하게되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더 깊고 참되게 우리 형제들과의 유대로 나아간다.

내 안의 하느님과 신화(神化)

뉴에이지는 「바깥에(out there)」 신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뉴에이지의 관점에서 문제는 우리 자신의 신성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있다. 이는 지도자의 도움과 우리의 잠재된 (신적인) 잠재력을 일깨워줄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무능력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거짓된 것의 허울을 벗겨냄으로써 우리 안의 무한한 힘을 발견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이 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잠재력이 더 깊이 인식되면 될수록 그 잠재력은 실현된다.

이레네오 성인은 『예수 그리스도는 초월적 사랑을 통해 우리가 됨으로써 우리가 그분과 같이 되도록 하셨다』고 말했다. 여기서 「신화(神化)」, 즉 거룩하게 되는 것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는 그것이 우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서 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불완전하고 죄에 빠져 있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이 아니며 단지 새로운 깨달음의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의 모든 변화를 포함하며 이는 교회의 성사적 생활 참여에 의해 이뤄지는 변화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