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가정을 찾아서] 부산 이우락씨 가정

이옥진 위촉기자
입력일 2003-02-23 수정일 2003-02-23 발행일 2003-02-23 제 2336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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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한마음으로 기도 봉사 나눔 선교…
고령의 부친 뜻 받들어 17세 때 결혼
8명 자녀 두고 지난해 회혼미사 봉헌
평생 교직에 종사 대통령 표창 받기도
2002년 1월 15일 평소 교회에 남다른 공헌을 한 점과 신앙인의 귀감을 감사하는 뜻으로 이우락씨 내외의 회혼미사가 봉헌됐다.
『천주교 신자로서 그분만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분의 일상생활이 곧 복음생활입니다』

『감히 제 2의 예수님이라 할 만큼 특별한 분입니다』

이우락(글레멘스.78.부산교구 남산본당)씨를 칭찬하는 주위의 이야기는 다 옮길 수가 없다.

약속 시간에 맞춰 찾아간 이우락씨의 집은 남산동에 있는 5층짜리 재개발 아파트였다.

『나는 정말 좋은 집에 삽니다』

이씨의 말을 들으며 집안으로 들어섰더니 거동이 불편한 부인 김죽희(안나.79)씨가 따뜻하게 맞아준다.

『성가정이라 하기에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부끄럽습니다』라며 이씨가 말문을 꺼냈다.

『아주 어릴 때였습니다. 가을철에 수수를 꺾어온 나에게 어머니께서 누구 밭에서 가져왔냐고 물었습니다. 남의 밭에서 가져왔다 하니 도로 그 자리에 갖다두고 오라 하셨습니다. 이미 꺾어서 쓸 수가 없다고 하니 실타래를 주시면서 꿰매놓고 오라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말씀을 지금껏 가슴에 담아두고 실천하며 살려고 하는 것 뿐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묵주에, 부친으로부터 건네받은 십자가로 만든 묵주를 가보 1호라고 보여준다.

이씨는 1926년 태어나 안동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6살 때에 견진성사를 받기 위해 30리를 걸었던 것을 시작으로 지금껏 이웃을 위해 신앙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 있다.

부친이 두 아들을 잃고 64세의 늦은 나이에 마지막 하나 얻은 자식을 위해 입교한 덕분에 이씨는 말을 배우면서 기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친의 자식에 대한 살뜰한 사랑이 이씨의 삶을 온전히 주님 안에 들게 한 큰 선물이 되었던 것.

며느리 손에 밥 한 끼 얻어먹고 죽고 싶다는 81세 부친의 말씀을 듣고 순명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17세 때 옆집 처녀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교회법으로 미처 덜 찬 나이 때문에 식만 올리고 별거, 3개월 후에 혼인성사를 올린 다음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이씨의 부친은 넉달 동안 며느리의 손에서 지은 밥을 드시고 돌아가셨는데 가까스로 불효는 면했다고.

자녀는 하느님이 주시는 대로 10명을 얻어 어릴 때 2명을 잃고 6명의 딸과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3일만에 유아세례를 시켰습니다. 아내는 산후라 이웃 신자가 안고 가 세례를 받게 했지요』

이씨의 가족은 1953년까지 50리를 걸어서 공소생활을 했는데 그 기간이 27년. 세상의 어떤 일보다 미사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꼬미시움 단장 시절 묵주기도 100만단 운동을 펼쳤는데 이씨는 최기선 주교에게 『우리 가족은 10명이나 되니 100분의 1인 1만단을 바치겠습니다』고 약속하고는 그를 넘는 1만2750단을 바쳤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본당 내 초등교사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으로 신앙생활의 활성화에 앞장섰다. 피정은 물론 강연회, 성지순례 등의 사업을 전개하여 참 종교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하면 1958년 시작한 레지오 활동은 올해로 40년간 쉬지 않고 있다. 또한 15년간 교리교사로 봉사하면서 17회에 걸쳐 271명의 영세자에게 주님의 자비와 은총을 건네기도 하고, 가톨릭 나사업 연합회에서 15년간 봉사하는 동안 50명의 후원회원을 지속적으로 모집해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나눔의 삶을 실천한 그의 후원회 활동 또한 만만찮다. 중국 탈북자, 군종 후원회, 한 마음 한 몸 운동, 지체장애자 선교회, 노틀담 사회 복지, 양산 정하상 바오로 영성관, 오순절 평화의 마을, SOS어린이 마을, 나사업 연합회 등을 후원하며 이웃을 위해 나누는 삶의 표양을 보여 주고 있다.

평생을 교직에 종사한 이씨는 교육자로서도 모범을 보여 재임 시절 모범공무원 표창(대통령), 국민훈장 동백장(대통령)을 수상하기도 했다.

91년 정년퇴임시 기도 중 응답으로 매일미사를 지금까지 13년째 참례하고 있으며 신구약을 4번째 통독 중이다.

『매일 성체조배를 드리고 9일 기도를 하면 신앙의 기쁨에 절로 감사를 느낍니다. 교회 출판물의 정기독자를 확대해 나가는 것도 복음을 전하는 좋은 길입니다. 친지를 만나거나 가정이나 병원을 방문,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아가씨, 오륜대 수녀원에 미사 갈 때 타는 택시 기사 등 만나는 사람마다 입교 권면을 합니다』면서 『40년 전 불교에 두터운 신심을 가진 대양 중학교 최교감선생님께 육당 최남선의 개종 성명서를 필사하여 일독을 권해 완전히 개종, 성가정을 이루었을 때, 또 혼인 조당을 푼 김선생이 건강을 되찾아 교사의 길을 갔을 때 등 그럴 때마다 주님이 복음 선포의 도구로 나를 써 주신 게 정말 기뻤습니다』며 옛날을 떠올린다.

이씨 가정은 가톨릭신문을 비롯, 경향잡지, 생활성서, 야곱의 우물, 빛, 성모 기사, 그 외 선교 잡지 등 교회 출판물을 엄청나게 구독하지만 그의 서재에는 책이 없다. 읽고 나면 모두 전교용으로 남에게 선물하기 때문.

이씨 내외는 자식들에게 미리 유언을 해 두었다. 자식들이 1달에 2만원씩 1년을 모아 가톨릭대학에 신학생 양성비를 후원하면서 나누는 삶을 사는 것. 작년부터 자식들이 그 뜻을 받아 행해오고 있다.

2002년 1월 15일, 평소 교회에 남다른 공헌을 한 점과 신앙인의 귀감을 감사하는 뜻으로 이우락씨 내외의 회혼 미사가 남산성당에서 봉헌됐다. 18세 때부터 정기구독한 가톨릭신문을 60년 째 구독하고 있는 이씨 가족은 본지 신년호부터 기획시리즈인 「성가정을 찾아서」를 제일 먼저 읽고 스크랩을 한다고.

회혼미사에서 혼인갱신식을 갖고 잇는 이우락-김죽희씨 부부

이옥진 위촉기자